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빌림 Apr 19. 2024

나는 무기력할 때마다
화장실을 청소한다.

수상할 정도로 깔끔함을 유지하는 나의 화장실의 비밀은 '전환점'

수상할 정도로 깔끔함을 유지하는 나의 화장실의 비밀은 '전환점'


무기력함이 언제는 있었냐는듯이 지우는 락스 냄새가 원룸을 에워싼다.

뭔들 락스가 못 지우는 얼룩은 있을까 싶지만. 

비우는게 있으면 채워지는 것도 있는 법이다. 오늘은 무기력함과 더러움을 비울테니 유머로 채워볼까.

'에워싼다라는 동사. 지금 기체 현상이니까 air라는 영어 단어를 써도 되겠다! air(에워)싼다, 풉!'

라는 혼자만의 기발한 언어유희를 발견했다는 사실에 피식 웃으며

노동요인 가수 유라 - 수영해를 틀었다. 도입부부터 흥얼거리며 빳빳한 솔과 분무기를 든다.

그렇게 오늘의 정화가 시작된다.


무기력할 때 화장실을 청소하는 것은 자취를 시작할 때부터 들인 습관이다. 

잠을 너무 많이 잤거나 할 일이 너무 하기 싫을 때, 또는

내가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을 때 청소와 운동은 내게 좋은 회피수단이 된다.


오후 네시가 되어서야 진득하고 축축한 습기로 가득찬 이불을 몸에서 떼어내고 기지개를 피어준다. 

그런 끈끈이를 제거하는데에는 한 잔의 차가운 생수가 도움을 준다. 이후 '하나 둘 셋'을 외치고 화장실로 향한다. 락스와 물을 적당한 비율, 그러니까 대충 감으로 '이정도면 모든 곰팡이가 녹겠지.'라는 비율로 섞은 용액을 분무기에 담는다. 일반 분무기는 락스를 견디지 못해 자주 고장이 나기 때문에 신중을 기울여 선별해야 한다.

 

분무기를 들고 이곳저곳에 뿌려댄다. 무기력도 그렇다. 간지럽고 바깥으로부터의 먼지가 두껍게 묻은

'나' 자신에 대해서도 분무기를 들고 하나씩 비춰보는 것이다. '오늘은 이런 감정을 느꼈어. 하지만 누구나 실수는 하는거야. 내가 용서를 해야 해. 이럴 땐 이렇게 대응해볼까? 평일에 너무 게을렀던 것 같아. 아 도시락을 다시 싸볼까? 메뉴는...' 

비춰본다는 것은 평소에 보지 못했던 부분을 더 집중해서 본다는 뜻. 

역시나 이것도 화장실 청소에 포함된 '내면의 정화' 단계이다.


희석된 락스를 다 뿌려 솔로 쓸어놓고 30분 이상 방치시킨다. 환풍기를 켜고 화장실 문을 닫았다. 

30분간의 기다림은 '인내' 단계이다. 내가 왜 오늘 하려고 했던 일들을 

하기 싫었을까, 어떤 일로 우선순위를 잃었을까?

나의 게으른 내면과 할 일을 오늘 꼭 마무리 해야 한다는 조급함 사이를 30분이 중재한다. 

겨우 중재가 끝나면 방치된 화장실을 물로 씻어내 정화된 화장실에 맘껏 감탄한다. 다음에는 정말 할 일에 

몰입해야 한다. 나만의 엄격한 규칙, 나만의 화해.


혼자 살면서 좋은 것은 스스로의 취향과 성격을 통제할 수 있게 됨에 있다.

기본 욕구를 해결하는 공간을 혼자서 깔끔히 유지한다는 사실, 내가 무기력했지만 청소라도 해냈다는 사실.

이 두가지 사실을 통해 게으름의 밑바닥에서 일어섰다는 자아 효능감을 얻는다.

앞으로도 계속될 일으킴을 위해 정화를 이어간다.




작가의 이전글 시간을 대하는 어색한 태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