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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뜨기 Jun 30. 2020

내 장단점

육체 / 지식 / 관계

육체

내 몸을 살펴보니 키가 눈에 띈다. 작은 키는 단점이다. 누군가는 키 작은 이를 루저라고 지껄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때껏 살아보니 단점이라 하기엔 애매하다. 키가 작아도 직장 구했고 장가도 갔다. 어릴 적엔 눈엣가시처럼 거슬리던 키가 지금은 애당초 있었던 담벼락의 낙서처럼 대수롭지 않게 여겨진다.

다시 몸을 살폈다. 숨은 더께가 드러난다. 이상지질혈증. 나의 LDL 콜레스테롤 수치는 210이 넘는다. 130 미만이 정상인데. 난 10년 넘게 높은 수치를 품고 살았다. 치석을 제거하듯 떼어낼 수도 있었을 텐데 당장 불편함은 없으니 안고 갔다.

내 몸에 이상지질혈증이 있는 것은 운동을 싫어하는 내 성향 탓이다. 이것은 단점이다. 다행스럽게 이상지질혈증과 함께 패거리로 나타나는 고혈압이나 당뇨 같은 깡패는 아직 내 몸에 얼씬거리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장점이다. 


지식

내 가방끈은 짧다. 짧을 뿐만아니라 재질도 형편없다. 가죽이 아니라 헝겊이라고나 할까? 고등학교를 인문계가 아닌 실업계를 나왔다. 작은 키를 깔보듯 실업계를 얕잡아보는 분위기에서 학교를 다녔다. 반에서의 성적순은 내 밑으로는 두세 명이고 위로는 쉰 명이 넘었다.

나이 쉰 무렵 책과 씨름했다. 하루 한 권 책 읽기. 작정하고 읽었다. 작심삼일이 되지 않으려고 오기를 부렸다. 목표 수량을 채우려고 얇은 시집도 읽었고 사진이 절반인 책도 즐겨 봤다. 책의 내용은 콩나물시루에 부은 물처럼 모조리 빠져버려도 장부책에 채워지는 책 목록이 흐뭇했다. 삼 년 동안 천권의 책을 읽었다. 짧은 학력의 단점을 덮고자 늦깎이나마 책 읽는 습관을 들인 장점이 생겼다. 


관계

“아이, 재미없어!”

때때로 날 챙겨주는 동료가 툴툴댔다. 날 두고 하는 말이다. 자기가 보기엔 난 재미없는 사람이다. 같이 식사도 하고 차도 자주 마신다. 난 부르면 간다. 안 부르면 안 간다. 그저 그만일 뿐이다.

그는 촉이 길다. 주변의 얘깃거리가 그의 더듬이에 걸린다. 주변 사람의 관계와 이전의 사건과 앞으로의 어떻게 될 것인가 예측도 한다. 표정만 봐서 심기를 파악하여 위로도 하고 필요한 것을 챙겨준다. 귀신이다. 그의 눈은 내가 보지 못한 것도 보나보다. 내 더듬이는 짧다. 그리고 붙잡지도 않는다. 내게 얘깃거리는 사월의 봄바람이다. 그냥 눈을 감고 느낄 뿐이다. 붙잡지도 않지만 남지도 않는다.

“뭔 재미로 살아?”

그가 생각하기엔 난 정말 재미없게 산다. 주중엔 동료들과 어울려 술자리도 참석하고 주말엔 동호인들과 놀러 가는 것이 재밌게 사는 것인데, 난 아무 것도 안 하고 그냥 집에 있다고 하니 심심해 보인 것이다. 사람은 사람과 부대끼며 삶의 재미를 느끼는 존재다. 나이트클럽 사람들 틈에서 같이 춤추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가? 근데 난 아니다! 사람 무리 속에 있는 것이 거북하다.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는 것은 내 단점이다. 그러다 보니 혼자서도 심심찮게 잘 논다. 이것은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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