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성매매 집결지에서 벌인 수요일팀의 첫 번째 프로젝트
죽여주는 영화제의 시작은 여성인권 티움 활동가들과 함께 성매매 집결지인 중동을 걷는 것이었다.
"여러분이 계신 이곳 중동은 일제 강점기 때부터 이어져온 오래된 성매매집결지입니다. 여성의 인권이 가장 심각하게, 그리고 일상적으로 침해받는 곳이지요.
지금부터 우리는 영화에서만 존재할 것 같았던 그들의 이야기 속으로 직접 들어가 보고자 합니다.
‘원하신다면 진짜로 죽여주는 영화제’를 기획한 <수요일>팀은, 여성의 인권과 성매매가 결코 함께 갈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중동의 풍경 중 ‘성매매’에 포커스를 맞췄습니다.
우리의 활동이 중동의 새로운 ‘수요일’ 그리고 ‘수요’일을 만드는 데에 작은 변화를 만들어내기를 바랍니다.
오늘 함께 해주시는 여러분들께서 작은 움직임에 함께 해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우리와 함께 새로운 의미의 수요일을 맞이하셨으면 합니다."
중동의 분위기를 요약할 수는 없겠지만 번지는 인상으로서 기록해볼 수 있을 것이다.
『 줄곧 침착했다. 완벽하게 위장했기 때문에 결코 날 발견하지 못할 것이라고 믿어왔던 것이다. 나는 주변에 완벽하게 녹아들어 있었다. 그것은 조금 쉬울 때도 있고 어려울 때도 있다. 불규칙한 그 리듬 속에서 그래도 이쯤은 살아있다면 견딜 수 있는 거라 생각했다. 날 알아보지 못하는 이들이 늘어날 때마다 손엔 거울이 들려 있었다. 나를 확인하기 위한 거울. 거울을 비춰봤을 땐 내가 아닌 내가 있었다.
실제로 내가 있는 곳은 위험했다. 내가 있는 자리를 확인하는 방식은 누구라도 나를 못 본 체 하는 것을 알게 되는 일이었다. 내 자리에 켜진 불빛은 어디에도 있을 수 있는 빛깔이었지만 다른 자리엔 없었다. 문을 걸어 잠그고 울타리를 두르는 것보다 나를 숨기기 가장 쉬운 건, 자리의 그 불빛을 켜는 것. 그리고 나를 그곳에 포함시키는 것. 보호색을 켜고 그저 자리에 가만히 누워 있었다. 어차피 지금의 나는 속임수, 내가 아닌 날들이 너무 오래인 것 같다는 불안을 억누르며 속임수가 발견되지만 않는다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물론 단 한 번도 편안하진 않았지만. 』
- ‘수요일’ 권순지作
중동 이야기를 들으며 동네를 걸은 참가자들은, 각자의 상념을 가지고 청춘다락 옥상으로 올라갔다. 가을밤의 쌀쌀함. 중동 공기가 지니고 있는 무게. 그리고 심수봉의 키사스 키사스 키사스. 그런 것들이 한꺼번에 몸속으로 들이닥쳤다.
영화가 시작되었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현실을 본 뒤,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영화를 본 참가자들은
각자 자신의 SNS에 이런 후기를 남겼다.
"박카스가 떠도는 곳에서 박카스 받아보기. 성매매 집결지에서 <죽여주는 여자> 보기. 오늘 경험한 모순의 끝. 모순을 담은 그 묘한 기분은 중동에서 궁동으로 와도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어스름이 질 때쯤 모두 길을 걸었다. 마냥 가볍지만은 않은 발걸음. 조용하게, 그러나 무겁게 나는 규칙적으로 다리를 교차했다. 곧 켠켠히 노을이 쌓이는 걸 청춘 다락의 초록 옥상에서 고스란히 눈에 맺었다. 어둠이 완전히 내려앉을 시각엔 스크린이 온통 가득했다. 나이 든 여자의 가느다란 인생을 실타래처럼 잔뜩 뭉치고 싶었다. 그가 타인의 자살을 돕던 호텔에서 나는 함께 약을 삼키고 누웠다. 기득권이 아닌 한 성별의 시린 인생이 여기 있다. 문제점을 인식한 후, 우린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을까? 어디까지 나아가야만 할까."
"심수봉의 키싸스가 중동에 울려 퍼졌다. 다락 넘어 누군가는 들었을 노래. 그렇게 긴장되는 산책길은 처음이었고, 장소와 영화와 날씨가 정말 어울렸습니다."
"이 감정이 식기 전에 후기를 써두고 싶어서 얼른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중동? 이름도 처음 들어봤다. 대전에 '성매매집결지'가 있는 줄도 몰랐다. 아니, 사실 '죽여주는 여자'라는 영화가 나온 줄도 몰랐다. 도대체 나는 얼마나 많은 걸 모르고 살아온 걸까. 영화를 관람하면서 나는 화가 정말 너무 많이 났다. 화가 나서 울어본 적은 난생처음이었다. 영화를 계속 보기도 어려웠다. (...) 동시에 자리를 피하고 싶진 않았다. 온갖 처음 느끼는 감정들을, 태어나서 처음 겪어보는 불편함 들을 요즈음의 나는 겪어내고 있다."
"어제의 보이지 않는 힘은 생각보다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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