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for myself 1. 산타를 기다리는 커다란 양말
어느 날 인생이 재미없다고 느껴졌다.
열심히 책임감 있게 어느 때보다 꿈을 향해 노력하고 있는데 왜 재미가 없지? 머리를 싸매고 이유를 고민해보진 않았는데 애들이 노는 걸 지켜보다 보니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첫째는 몇 시간이고 아무렇게나 이야기를 만들며 인형놀이를 하고 종이에 색깔 테이프를 칭칭 동여매서 엄마도 만들고 옷도 만들고 한다. 그리고 자랑스럽게 자신의 창조물들을 내 앞에 늘어놓는다. 나는 노는 법을, 순수한 창작의 기쁨을 잊어버렸다.
트리장식 하나를 만들 때도 핀터레스트로 레퍼런스를 찾아봤다. 내 안의 아이디어가 현실이 되는 기쁨이 조립설명서를 순서대로 따라 하며 누군가 만든 그럴듯한 이미지를 완성해 내는 것으로 대체되었다. 인테리어를 할 때도 오늘의 집에서 유행하는 감성이 선택의 기준이 되었고, 요리를 할 때도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올라도 네이버에 그게 정말 있는 음식인지 찾아보고 이미 존재하는 레시피라는 걸 알게 되면 안도했다. 레퍼런스가 없으면, 누군가 검증한 것이 아니면, 사람들이 좋아해 주지 않으면 나의 창작물이 가치가 없다고 은연중에 생각해 왔던 것이다. 나름대로 예뻐 보이는 릴스 만들기에 열중하며 어디선가 본 듯한 이미지로 나를 치장하고 싶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내가 되고 싶었다.
중학교 때 가장 동경했던 사람은 미란다줄라이라는 영화감독 겸 행위예술가였다. 어른 사이즈의 토끼우주복을 만드는 프로젝트에 영감을 받아 실제로 내가 입을 수 있는 토끼우주복을 만들기도 했다. 고등학교 때는 학급에서 1등을 놓치지 않던 모범생이지만 털실을 주렁주렁 단 직접 만든 가방을 메고 다녀서 사차원소리를 들었다. 나는 예술이 좋았다. 말도 안 되고 이해할 수 없는 아이디어를 현실 위에 만들어내는 마법이 나를 흥분시켰다. 나는 늘 예술가였다. 하지만 나는 인정받고 유명해져야만 예술가가 될 수 있다는 압박감에 시달렸다. 내 안에서 뛰놀던 아이는 작아지고 작아지다 사라져 버렸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올 때쯤 산타의 선물을 기다리는 아이들의 머리맡에 둘 커다란 양말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영감은 늘 완성된 이미지로 내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러나 나는 그걸 현실에 옮기지 못하고 미적거리고 있었다. 다이소에 가면 부직포로된 커다란 양말주머니를 싼값에 살 수 있고, 바느질을 할 시간이 없고, 천도 마땅치 않다. 내가 양말을 직접 만들어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나 오늘 저녁엔 이상하게 그걸 해야만 할 것 같았다. 남편의 낡은 옷 중에서 크리스마스에 어울릴만한 빨간 줄무늬 티셔츠를 찾아냈다. 재봉을 배우다 지쳐 적성에 안 맞는다며 처박아둔 재봉도구박스에서 보헤미안 스타일의 수술을 찾았다. 여기를 막을까 저기를 막을까 이리저리 돌려보다 결정을 내린다. 선택은 내 손에 달렸다. 그다음부턴 일사천리다. 홈질, 박음질, 공그르기... 알고 있는 모든 기법이 총동원된다. 완벽할 필요가 없으니 온전히 자유로워진다. 수술을 달 때는 양면테이프를 동원한다. 충분히 잘 붙는다. 재봉과 마찬가지로 적성에 안 맞아서 처박아둔 뜨개질꾸러미에서 그래니스퀘어 두 조각을 찾아낸다. 그것도 양면테이프로 붙인다. 아이들 방에 쌓여있는 인형들로 주머니를 채운다. 두 돌 둘째가 들어가도 될 만큼 커다란 주머니가 완성되었다.
이렇게 뭔가에 몰입해 본 게 정말 오랜만이었다. 한치의 잡념이 끼어들 틈도 없이 나의 감각에만 의지해 창작을 하는 과정은 명상 그 자체였다. 그것도 정말 재미있는 명상말이다. 이 우스꽝스럽고 사랑스러운 주머니를 만드는 한 시간이 오늘 저녁 나에게 일으킨 변화는 엄청나다. 내가 몰입하니 아이들도 자신들의 놀이에 몰입했다. 내가 재미있으니 일찍 잠든 남편에게 일어나 집안일을 도우란 잔소리를 하지 않았다. 푹 자고 일어난 남편은 스스로 설거지를 했다. 말랑해진 마음으로 이빨을 닦자 하니 도망가기 바쁘던 둘째가 순순히 입을 벌린다. 완벽주의와 인정욕구를 내려놓고 그저 재미를 위해 뭔가를 만드는 순수한 창작의 시간을 통해 영혼은 휴식을 취한다. 푹 쉰 영혼이 우리의 삶에 활기찬 숨을 불어넣는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을 다른 사람도 좋아해 줄지 그런 창작물이 쌓여 위대한 예술가가 될 수 있을지 그런 것은 나의 영역이 아니다. 그런 생각만 하다가 아무것도 만들지 못하던 세월이 길었다. 당신이 좋아하는 걸 하지 말고 남들이 필요한 걸 해야 팔린다는 말도 많이 들어보았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없다 해도 괜찮다. 그것을 만드는 동안 나는 살아있다는 반짝이는 느낌으로 충만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