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의 침묵 1

아이들이 사는 마을에 아스콘 공장 인허가가 '추진'중이다

by 보시시

2025. 12.17

동곗날이었다. 누가 보냈는지 마을회관 앞에는 커다란 과일박스들이 산처럼 쌓여있었다.

이장은 동계가 끝날 무렵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동네 아스콘 공장에서 사람들이 왔는데 뭐 설명할 게 있다니 동계 끝나고 나서 이 삼 분 정도 들어보는 거 어떻겠습니까."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어떤 일이 시작되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이런저런 마을 일에 대한 얘기들이 오갔고 선거철을 앞두고 동계 방문을 못하게 되었다며 군수와 영상통화하는 시간도 마련되었다. 아주머니들은 전, 나물, 불고기, 떡.... 상다리 부러지게 음식을 차려내고 부녀회관은 잔칫날처럼 시끌벅적했다. 아이 둘까지 데리고 갔던 나는 정신없으니 빨리 먹고 나가라는 말에 얼른 옷을 챙겨 입히고 부녀회관을 나섰다. 부녀회관 앞에는 양복을 빤질하게 차려입은 중년 남자 하나, 좀 더 젊어 보이는 작업복 차림의 남자 하나가 서있었다. 그들은 우리에게 'J아스콘 공장 설명회'라고 적힌 종이 한 뭉치를 건넸다. 나는 비굴한 웃음을 짓는 몸집이 작은 남자에게 말했다.

"전 반대예요."

남자는 말했다.

"저도 아이들 세명 키우고 있어서 부모마음이 어떨지는 잘 압니다. 근데 이거 자동차 매연보다 몸에 덜 나쁘데요. "

불안해진 나는 부녀회관으로 돌아갔다.

"아스콘 공장이 재가동한다는데 무슨 말이에요?"

발을 동동 구르며 묻는 나에게 부녀회장은 말했다.

"공장 절대로 안 돌아가. 이장님이 다 알아서 하실 거야. 걱정하지 마."

마을 사람들은 공장 사람들을 아예 들이지 못하게 막았다.

"그거 가져온 거 그냥 먹지그래."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는 것을 나중에야 듣게 되었다.

뭔가 느낌이 싸했다. 바로 검색창에 J공장 이름을 쳐 넣었다. 2025년 6월. 그러니까 올해 여름에 이미 사업자허가를 새로 신청했고, 네이버지도에는 영업 중이라는 표시가 떴다. 군청에 전화를 거니 경제과로 연결이 되었다. 공무원을 말했다. "예전 공장이랑 다른 공장이 들어서는 거예요." 같은 일을 하는 공장이 들어서는데 사업자가 다르니 상관없다는 게 무슨 이야기일까? 주민들이 반대하고 있는데 어떻게 된 거냐는 질문에는 '주민 반대는 참고사항일 뿐이며 뭄붙이며 살아야 되기 때문에 주민들과 잘 협의하라고 전했다.'는 답변만이 돌아왔다. 과일박스와 설명회 쪽지는 어차피 허가날 상황에 대한 형식적 '협의' 절차였을 뿐이었다.

그날 밤,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새벽 세시까지 챗 지티피를 붙들고 국민신문고에 올릴 민원을 작성하고 군수에게 줄 호소장을 썼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남편과 나 아무것도 모르는 두 사람은 여기저기를 들쑤시기 시작했다.



2025.12.18

동네에 살고 있는 군의원과 포럼에서 알게 되었던 군의원에게 연락을 했고, 군의회 앞에 찾아가 의원들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회의는 한참 전에 끝났다고 했다. 나는 무작정 군청으로 향했다. 마침 점심시간이었던 지라 알록달록한 이름표를 붙인 S군수가 계단으로 내려왔다. 나는 미친년처럼 군수한테 뛰어갔다.

"군수님 이것 좀 봐주세요!" 군수는 나에게 악수를 청했고 곁눈질로 슬쩍 훑어보더니 옆에 있는 비서실장에게 호소문을 넘겼다. 그는 나를 어딘가로 불렀다. 교장실처럼 보이는 공간에서 그는 내 호소문을 훑어보았다.

그는 '행정에 대한 불신' 같은 말을 꼬투리 잡아 나의 주장을 반박하기 시작했다. 국민신문고에 올리고 매스컴에도 제보하겠다는 힘없는 자의 협박 따위가 통할 리가 없었다.

"하려면 하세요. 근데 군청 잘못이라고는 하지 마시고요."

그래도 이렇게 찾아온 내가 불쌍한지 경제과 과장한테 직접 전화를 걸어주었지만, '이미 개발된 부지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군계획위원회도 필요 없고 환경영향평가도 안 해도 된다.'는 절망적인 이야기만 돌아올 뿐이었다. 참았던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돌아오는 길에 옆집 아저씨네 집에 들렀다. 아저씨는 이 동네의 역사에 대해 말해주었다.

"우리 처음 왔을 때는 난리도 아니었어. 석산에서 발파하는 소리가 쾅쾅 나고 그랬지. 우리가 그거 막으려고 얼마나 애썼는지 몰라. 피켓 들고 가서 시위도 하고 들어가는 입구를 막았다고 경찰한테 고발도 당하고...... 그렇게 10년을 애써서 석산은 막은 거야. 근데 어땠는지 알아? 어디서 굴러들어 온 것들이 동네 시끄럽게 만든다고 얼마나 욕을 먹었는지 몰라. 그러니까 너무 나서지들 말어. 사실 이쪽으론 바람이 안 올라와서 크게 영향 없어. 좌우로 사는 사람들이 더 피해가 가지. 그리고 여기 이거 있는 것도 모르고 들어온 것도 잘못한 거 아니야?"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소리 내 봤자 욕먹을 뿐이니 조용히 있으라는 얘기였다. 그래도 그럴 수는 없었다. 아저씨는 반대를 심하게 한다는 사람들을 알려주었고 우리는 그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그들은 우리가 불편한 눈치였다.

"당신들은 반대야 찬성이야? 근데 당신들 의견이 다른 사람들 의견이랑 다르면 당신들은 이 동네에 섞여 살기 힘들 거야."

딱 까놓고 말하지 않고 은근슬쩍 돌려 말하는 충청도식 화법인 걸까? 같이 결사반대를 외칠 동지를 찾아 헤매던 우리는 망연자실했다. 그날 밤 큰 아이가 심하게 울었다. 나의 불안을 누구보다 잘 느끼는 존재이기에, 아이도 오늘 하루가 버겁고 힘들었을 것이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내가 무너져선 안된다. 가까스로 지켜낸 나의 집. 나의 안식처를 또 잃게 될지 모른다는 것에 대한 절망감이 나를 무너뜨렸지만, 내 마음과 몸을 다치는 일보다 더 나쁜 일은 없다는 것을 지난 어둠을 통해 알게 되었다. 밤 새 눈을 감고 명상을 했다. 그리고 기도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나를 잃어버리지는 않게 하소서. 당신 뜻 대로 하소서. 나를 죽이는 길이 나를 살리는 길이었음을 압니다. 그 길을 펼쳐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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