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턴에 가게 된 이야기
나는 드디어 샌프란시스코로 가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왠지 설레었다.
꿈의 도시, 실리콘 밸리가 있고 태양의 도시라고 불리지 않는가?
게다가 한국과도 아주 가깝다.
동부에만 있다가 서부로 간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었다.
두 개의 샌프란시스코 회사와 한 개의 보스턴 회사
이렇게 세 개의 회사로부터 오퍼를 손에 쥔 남편은 꽤 오랫동안 결정 장애가 있는 사람처럼 결정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실 내가 보기에 이 결정은 너무나 쉬운 것이었다. 그냥 가장 오퍼를 많이 준 샌프란시스코의 비상장회사로 가는 것이다. 혹시 비상장회사가 좀 부담스럽다면 그다음으로 오퍼를 많이 준 샌프란시스코의 나스닥 상장사도 있다.
샌프란시스코 회사들의 사이닝 보너스 (Signing bonus)는 보스턴 회사보다 몇만 불이 높았고 401(k)도 훨씬 좋은 조건이었다.
어차피 답은 정해져 있었다.
‘샌~프란시스코~~!!’
이렇게 이미 좋은 오퍼를 가지고 있는데, 대체 뭘 고민을 한다는 말인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임 박사는 보스턴 회사가 뉴클레오사이드 신약개발을 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남편의 말로는 보스턴 회사인 N사는 이미 뉴클레오사이드 B형 간염 신약을 상용화했고 이번엔 C형 간염 신약이 임상 2상과 1상에 진행 중인데, 이것들도 모두 뉴클레오사이드 신약이라는 것이었다. 이외에도 더 많은 뉴클레오사이드 신약을 IND 할 계획이라고 했다. 이 점이 남편의 관심을 끈 것 같았다. 남편은 KAIST에서 뉴클레오사이드 신약개발에 꽂힌 다음부터 언제든지 이것을 커리어의 주요 목표로 정했었다. 대기업 S사에 입사했을 때도 뉴클레오사이드 신약개발을 하던 노오사 박사팀으로 간 것이었고 지금 있는 Y대학교 RNA 연구실에 오게 된 이유도 바로 뉴클레오사이드 신약개발이라는 목표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었다.
샌프란시스코 회사들의 경우에는 다른 분자들을 이용한 바이오 기술을 개발하는 회사들이었다. 특히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두 회사에서 만난 직원들 모두 스톡옵션에 대한 기대감에 열중하던 모습은 임 박사를 불안하게 만들었던 모양이었다.
처음에 반대하던 나도 사실 완전히 샌프란시스코가 마음에 드는 건 아니었다.
두 가지가 좀 꺼려졌는데 하나는 아이 교육 문제였다.
아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샌프란시스코에서는 공립학교보다는 학원에서 따로 배우는 게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집값이 너무나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높았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웬만한 집을 얻으려면 $1 Million 이상은 필요했다. 반면에 보스턴에서는 그 절반 가격으로도 우리 네 식구 살기에 충분히 괜찮은 집을 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 나의 고민과 남편의 뉴클레오사이드 신약개발에 대한 이정표가 결국 하나로 모아져서 N사에 네고를 시도하게 되었다. 그러나, 보스는 네고를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다만, 오퍼를 그대로 받아주었으면 한다고 말할 뿐이었다.
결국 남편은 최저 오퍼인 보스턴 회사에 사인을 하게 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샌프란시스코 회사의 HR은 당장 남편에게 전화를 해서 물었다.
“무엇이 문제예요? 샐러리가 적은가요? 맞춰줄 수 있어요. 원하는 금액을 말해 봐요. 맞추어 볼 테니.”
그러나, 임 박사는 꿈쩍하지 않았다. 이미 마음을 정한 이상 돈은 그의 관심사가 아니었던 것이다.
두 개의 오퍼를 모두 거절하고 N사의 오퍼레터에 사인을 한 지 얼마 안 있어서...
N사의 주가가 크게 떨어졌다.
뉴클레오사이드 신약 중 가장 선두에 있던 임상결과가 좋지 않아 약물을 중단하며 이에 따라 300여 명의 임직원 중 100여 명을 감원한다고 발표를 한 것이었다.
남편은 깜짝 놀라 보스에게 바로 이메일을 보냈다.
그런데, 보스의 말로는 자기 팀은 아무런 문제가 없고 다들 잘 다니고 있으니 괜찮다고 걱정하지 말라는 답장을 보낸 것이다.
아직까지 회사를 바꿀 여지는 남아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남편은 뜻을 꺽지 않았다. 그냥 보스턴 N사에서 뉴클레오사이드 신약개발에 투신하겠다고 생각했고 열의가 대단했다.
남편은 오퍼레터를 쓰고 지도교수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지도교수는 크게 기뻐하며 며칠 후에 열린 랩미팅에서 임 박사가 레드삭스 시티로 간다고 농담을 던지더란다. 메이저리그 보스턴 레드삭스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남편은 겉으로는 웃고 있었지만 지도교수의 오버가 마음에 걸렸다고 했다. 자신이 쫓겨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원해서 나가는 것처럼 포장하려는 지도교수의 생각을 읽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남편은 지도교수에 대해 원망하지는 않았다.
지도교수가 4년 전에 오퍼를 준 덕분에 임 박사는 다시 연구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결과도 좋았다. 이제 6번째 논문이 승인된 상태였다. 2년 전에 고작 1편이었던 걸 생각하면 실로 후반 2년간 5편이나 되는 논문을 얻은 것이다.
이 정도 실적이면 교수직 지원도 아무 문제가 없으련만 이제 교수직 지원은 이미 물 건너 간 상태였다. 남부 포스닥이 이미 지원을 하기 시작했는데 벌써 서너 군데의 메이저 급 대학에서 인터뷰가 잡혔다는 얘기를 들었다.
임 박사는 마음이 씁쓸하더란다.
그야 당연하겠지만.
난 남편을 위로했다.
“괜찮아. 이렇게 당신이 원하는 뉴클레오사이드 신약개발 회사에 들어가게 됐잖아? 나도 보스턴에 한번 살아 보고 싶었는데 얼마나 잘됐어?”
에볼라, 지카, C형 간염, mRNA 그리고 서브프라임 모기지
2007년에 두 개의 새로운 RNA 바이러스가 출현했다.
그중 하나는 에볼라(Ebola) 바이러스였다.
2007년 콩고민주공화국과 우간다에서 에볼라 바이러스가 발생해 수백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며 아프리카 지역에 위기감이 조성되었다.
또 하나는 지카(Zika) 바이러스였다.
2007년 오세아니아 연방인 미크로네시아 야프섬에서 지카 바이러스가 처음으로 대규모 유행하며 전 인구의 약 75%가 감염하며 전 세계 보건당국이 이 바이러스를 주목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들 두 개의 바이러스는 H5N1 조류독감 바이러스나 SARS-코로나 바이러스와 같은 RNA 바이러스 들이었다. 점차 RNA 바이러스들의 신종, 변종에 대한 대응법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기 시작했다.
2005~2007년, 이 시기에는 **국제 보건 기구(WHO)**와 각국의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C형 간염을 퇴치해야 할 주요 질병으로 규정하고 집중 관리하기 시작했다.
인터페론과 리바비린 (Ribavirin)이라는 두 가지 약물이 쓰이고는 있었지만 C형 간염 자체로 인한 통증보다 이들 약물로 인한 부작용이 훨씬 심했으며 치료 효과도 40-60% 정도로 낮아서 새로운 신약개발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었다.
카탈린 카리코 (Katalin Kariko) 박사와 드루 와이즈만 (Drew Weissmann) 박사는 향후 mRNA 백신의 전기가 되는 변형 mRNA 논문을 Infinity 논문에 발표하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 반응은 매우 차가웠다.
또 하나 서브 프라임 모기지 문제가 서서히 불거지기 시작했다.
2001년 9월 11일 9/11 사태로 인한 경제적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연준은 이자율을 3.5%에서 점차 낮추기 시작하여 1.0%까지 초저금리로 낮추었다. 돈은 온통 부동산으로 몰려갔다. 위기를 감지한 연준이 2004년부터 다시 금리를 올리기 시작해서 2006년이 되면 5.25%까지 이르게 된다. 이에 대출 이자를 감당하지 못한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결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원인이 되었다.
몇 주 전에 보스턴에서 쌍둥이네가 이사를 왔다.
건축 전공인 쌍둥이네 아빠는 남편보다 2살 위인 분이신데 남편이 보스턴에 있는 회사로 가게 되었다고 하자. 이렇게 물었다.
“혹시 과학자이신가요?”
남편이 그렇다고 말하자, 보스턴에 가면 모두 과학자들밖에 없다고 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보스턴 자랑을 아주 늘어지게 해 주어서 결국 말을 끊어야 할 지경이었다.
그 해 10월에 오퍼에 사인을 하고 11월 첫 번째 월요일부터 N사에서 일을 시작한 남편은 한동안 주말마다 보스턴과 Y대학 집을 오가는 주말부부를 해야 했다.
그리고 그해 12월에 우리는 보스턴의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