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 박사가 교수직을 포기하게 된 이유
남편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힘이 하나도 없어 보였고 정신이 반쯤 나간 것 같이 보였다. 집에 와서도 한동안 그는 달리 말을 하지 못한 채 방으로 들어가 한참 동안 방문을 걸어 잠근채 나오지 않았다.
무슨 일인가 하고 처음에 걱정이 되기는 했지만 별일 아니겠지 하고는 큰딸이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노는 걸 보러 갓난아기인 막내를 안고 포스닥 연구원 아파트 중간에 있는 놀이터에 나가서 포스닥 부인들과 평소처럼 이런저런 수다를 떨며 저녁시간까지 한참을 놀았다.
저녁을 먹을 시간이 되어서 다들 하나씩 집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돌아가야 했기에 나도 큰딸과 막내를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까지도 남편은 여전히 방안에 혼자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어제 해놓은 밥과 새로 점심에 만들어 놓은 반찬과 남편이 좋아하는 김치찌개를 끓여서 차려 놓고 큰딸에게 방에 가서 아빠를 데려 오라고 보냈다.
처음에는 큰딸도 아빠가 없는 것 같다고 말을 했지만 나는 남편이 방안에 있는 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다시 방문 쪽으로 가서 이번에는 내가 방문을 두드리며 남편을 불렀다.
한참을 부르니 처음에는 아무 소리가 없다가 방문이 열리고 정신 나간 사람처럼 희연 멀 건 해진 남편이 문밖으로 나오며 혼잣말을 하는 것이었다.
“바비가 잡혀갔어. 내….대….신….잡.혀.갔.어.”
“바비? 바비가 왜? 오늘 바비랑 점심 같이 막지 않았어?”
“아…. 니…. 바…. 비…. 가…. 아냐…. 뉴욕으로 끌려갔어….”
이런 알 수 없는 말을 중얼중얼 거리는 것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아이들을 먼저 밥을 먹이고 큰 아이는 자기 방으로 가고 막내는 내 품에 안긴 채 모유 수유를 하는데, 그제야 정신이 좀 나는지 남편이 나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나…. 너무…. 무서워…. 이곳이… 오늘 바비가…. 시큐리티 요원 둘에게….. 잡혀 갔어…. 아침에… 교수님이 그러시더라고…. 인베스티게이션을 했데…. 바비랑…. 나…를…
그런데, 바비가… 프로드 (fraud)라고 그러더라고….. 나는…. 괜찮고…”
이렇게 어렵게 말을 하나씩 하는데, 먼저 밥을 좀 먹게 하려고 식은 국을 다시 끓이고 남편에게 억지로 국과 밥을 먹였다. 평소보다 3분의 1 정도나 간신히 먹었을까? 괜찮다며 더 이상 먹지는 않았다.
그 대신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 자초지종을 들을 수 있었다.
남편은 바비가 자기 대신 끌려갔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것도 그럴 것이 황우석 교수가 한국인이 아닌가? 아마도 실험실에서 유일한 한국인인 남편만 조사를 하자면 표적조사가 돼서 한 명을 더 하게 되었는데 재수 없이 남편과 베프였던 바비가 끼어지게 된 것인 모양이었다.
남편의 말로는 두 명의 건장하고 키가 아주 큰 시큐리티 요원이 오른쪽에서 저벅저벅 왼쪽 복도 끝에 있는 바비 방으로 가더란다. 그리고 조금 있으니까 다시 이들이 양쪽에 서고 바비가 그 사이에 있었고 다시 왼쪽 복도 끝에서 나타났는데 양쪽에 선 시큐리티들이 얼마나 건장했는지 덩치가 아주 큰 바비가 보이지 않더란다. 바비도 순순히 따라 가더란다. 그 모습을 팀미팅하는 방에서 창너머로 목을 빼고 쳐다보는데 마치 자기 대신 끌려가는 것 같더란다. 모든 일이 아주 삽시간에 전광석화같이 일어나더란다. 너무 무서워서 남편은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었다고 한다.
그날 남편과 나는 함께 술을 마셨다. 그리고 많은 얘기를 했다. 막내아기가 중간에 깨어나면 재우느라 애를 먹기는 했지만 그날만큼은 남편이 아기를 나눠서 봐줄 입장이 아니었다.
다행히 그날 밤은 어찌어찌해서 지나갔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면서 남편이 그럭저럭 다시 실험실에 나가기 시작했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 아무리 큰 충격도 자기 일이 아니면 금세 잊히기 마련이니까.
그리고 몇 주가 지났을까?
이번에는 남편이 흥분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이날은 일찍 실험실에 간 것이 아니고 평소처럼 아침 식사하고 잘 다녀온다고 갔는데,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씩씩거리면서 집으로 들어오는 거였다. 지난번 바비 일도 있고 해서 무슨 일인가 걱정이 된 나는 큰애가 여전히 친구들과 노는 걸 함께 보고 있던 한국인 포스닥 부인에게 잠시 막내아기를 맡기고 남편을 따라 들어왔다.
네이처 지에 이번에 논문을 투고하기로 해서 남부 포스닥과 논문을 쓰는 문제를 상의한 적이 있었는데 남부 포스닥이 자기가 영어가 좀 더 나으니 자기가 써도 되냐고 했단다. 그래서 임 박사도 좋은 생각이라고 남부 포스닥에게 맡겼는데 오늘 보니 자기가 세 번째 저자가 되어 있더란다. 남부 포스닥이 제일저자이고 중국인 여자 포스닥이 둘째 저자, 그다음이 자기 더란다.
너무 화가 난 남편은 곧바로 교수방으로 직진했단다. 이건 평소 같지 않은 남편의 행동이었다.
흥분한 남편을 본 교수는 남편을 진정시키며 자기가 알아서 할 테니 며칠만 진정하라고 했단다. 너무 화가 났던 남편은 교수의 방을 나오자 그대로 집으로 온 것이었다.
그리고 1주일 후, 결국 남편의 논문의 저자 문제가 결론지어졌단다.
순서는 그대로이고 대신 세 명이 공동 제일저자가 되었단다. 그러니까 사실상 변한 건 없는 거였다. 남편은 그날 왠지 크게 흥분하거나 화를 내거나 하지 않았다.
실험실에서. 그런데 이런 음성이 있더란다. 논문이 너의 미래를 결정하는 게 아니고 하나님인 내가 너의 미래를 결정한다고.
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싶었지만, 어쨌든 그 음성인지를 들으며 마음이 차분해지더란다.
그 논문은 결국 투고되었고 몇 달이 지나 받아들여져서 온라인으로 출간이 되었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교수는 남부 포스닥과 다른 네이처 퍼스펙티브를 하나 더 썼다고 한다. 두 명 이서만. RNA 스위치를 메커니즘으로 하는 항생제 개발 가능성에 대한 리뷰 형식의 논문이었는데 세 페이지 정도 되는 짧은 것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몇 주 후부터 남부 포스닥과 교수가 여러 기사에 대서특필되기 시작했다. 이제 남편의 이름은 온 데 간 데 없었고 중국인 여자포스닥도 이름이 언급되지 않았으며 오로지 남부 포스닥이 모든 일을 다 한 것처럼 도배되고 있다고 했다. 나는 남편이 얼마나 지난 4년간 이 논문이 나오기를 기다렸는지 잘 알고 있었다.
사실 나도 이 논문을 오랫동안 기다려왔다.
포스닥을 남편으로 둔 아내들은 모일 때마다 남편들의 논문이 어떻게 되어 가는지에 대해 아주 자세히 얘기하곤 했다. 그만큼 논문이 중요했다. 남편처럼 네이처에 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공동제일저자로 낸다고 했더니 다들 축하한다고 진심으로 축하를 해 주었다. 우리 남편만 축하를 받을 기분이 아니었을 뿐이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생각을 하기 시작했는데, 내가 굳이 미리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논문이 나오고 남부 포스닥이 유명세를 타고 하던 일이 5월을 넘어 6월에 접어들었는데, 교수가 다시 남편을 불렀다고 했다.
교수가 최근에 HHMI 교수가 되었기 때문에 펀딩은 풍족했다. 그러나, 교수가 내보내겠다고 하니 어쩔 도리는 없었다. 너무 촉박한 시기에 그것도 여름휴가가 시작하는 시기에 어디서 잡을 알아본다는 건지 모르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남편은 다시 연구실에도 나가지 않고 집에서 잡서치를 하기 시작했다.
내가 남편에게 일단 세컨드 포스닥을 알아보자고 얘기했다. 어차피 한국에 돌아갈 이유도 없으니 세컨드 포스닥을 해도 괜찮다고… 다시 시작해도 좋고 시간을 번 다음에 잡을 잡자고.
다행히 영주권 서류가 1차 통과는 되어서 워크퍼밋이 나온 상태였다. 그래서 더 이상 H-1B 비자가 필요하지는 않았는데 여름휴가 기간이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회사에 지원을 해도 인터뷰를 잡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함께 버지니아에 다녀왔는데, 그곳에 있는 한국인 대학원생을 미리 연락해서 함께 얘기를 했는데 다들 한 목소리로 굳이 여기로 왜 오느냐고 하는 것이었다. 남의 속도 모르고…
8월이 되어 이제 버지니아로 세컨드 포스닥을 가야겠구나.라고 생각하고 어떻게 집을 정리하고 이사를 갈지 포스닥 부인들에게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남편이 연구실에 오랜만에 나갔다가 오면서 갑자기 전화가 와서 받아보니 폰 인터뷰였다고 하는 거였다. 보스턴에서 온 전화였는데, 첫 질문이 아주 웃기다면서 남편이 희한하다는 표정을 보였다.
“화학 좋아해? (Do you like Chemistry?”
이게 질문이었단다. 그래서 그랬는지 전화 인터뷰는 그리 어렵지 않게 되었고 그 회사가 뉴클레오사이드를 한다고 해서 남편이 관심이 간다고 얘기를 하는데 느낌이 나쁘지는 않았다.
그리고 며칠 후 남편이 다시 집에 일찍 왔다. 그날도 또 교수가 불렀다고 해서 난 사실 좀 개운치가 않았다. 더 일찍 쫓아낼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결과는 반대였다.
교수가 잡서치 상황이 어떻게 되느냐고 조심스럽게 묻더란다. 그래서 남편은 솔직하게 지금 버지니아 대학교에 세컨드 포스닥은 자리를 잡아 놨고 보스턴에서 폰 인터뷰를 며칠 전에 받았다고 했다고 한다. 그랬더니 웬일인지
는 것이었다.
이건 또 뭔가 싶었다.
병 주고 약 주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며칠 후에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나스닥 상장회사와 폰 인터뷰가 잡혔다. 남편은 이번 회사와도 폰 인터뷰가 잘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다음 주에 다른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어떤 비상장 회사에서 다시 폰인터뷰를 했다.
그러는 중에 보스턴 회사에서 온사이트 인터뷰가 잡혔다. 남편은 보스턴 회사에 8시부터 11시까지 인터뷰가 잡혔다고 하면서 1시간짜리 프레젠테이션을 만들고 이력서를 프린트 한 다음에 보스턴으로 떠났다.
보스턴에 올라가기 위해 차를 운전해서 가는 남편을 열심히 응원하며 보냈지만,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이번에 교수 채용 시즌이 되면 미국 교수직을 지원할 수 있다고 의기양양하던 남편이 이제는 세컨드 포스닥을 가야 할지도 모르는 몰린 상황에서 예상에도 없던 회사에 지원을 해서 다시 온사이트 인터뷰까지 멀리 간다고 하니 마음이 짠 하였다.
다행히 남편의 보스턴 면접은 잘된 모양이었다. 원래는 11시에 끝이 나야 했는데, 갑자기 하이어링 매니저가 나타나더니 실험실을 구경시켜 주겠다고 해서 한 30분 함께 실험실을 봤는데 킬로랩 공정화학 실험실이 장비가 너무 잘되어 있어서 놀랐단다. 그리고 나오자 이번엔 점심 먹을 수 있냐고 하더니 데리고 나가서 함께 점심을 먹는데 말을 하는 투가 오퍼를 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지금 당장 뉴클레오사이드 생산을 해야 해서 빨리 사람을 뽑아야 한다고 하면서 남편이 메커니즘을 아주 능숙하게 그리더라고 칭찬을 하더란다.
‘한 시름 놓았네,’
다음날 남편은 집으로 몇 시간을 운전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며칠이 있으니 이번에는 처음에 연락이 온 샌프란시스코의 나스닥 상장사에서 온사이트 인터뷰를 하러 오라고 했다. 그래서 다시 남편은 비행기를 타고 이번에는 샌프란시스코로 가게 되었다. 샌프란시스코 회사로 가기 전에
샌프란시스코로 인터뷰를 보러 간 남편은 이번엔 좀 더 생기가 도는 목소리였다. 아침 일찍 인터뷰를 하러 호텔 셔틀 서비스를 이용했는데, 그 운전수가 회사를 매각한 전직 CEO라고 자기를 소개했단다. 소일거리 삼아 셔틀버스 운전을 한다면서 남편이 어떻게 인터뷰하면 좋은지 코칭을 해 주더란다. 남편이 그대로 인터뷰를 했는데 일단 보스턴 오퍼를 받은 상태니까 질문을 받는 것보다 질문을 더 많이 했다고 했다. 특히 가족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등에 대해 얘기를 많이 했다고 했다. 모두들 매우 좋았고 CSO까지 인터뷰를 했는데 CSO는 남편에게 새로운 프로젝트까지 제안을 해서 남편을 놀라게 했다.
그렇게 해서 다시 남편은 샌프란시스코에서 비행기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온 지 며칠 안되어 다시
보스턴 회사보다 셀러리는 조금 높게 주었고 베네핏이 보스턴 회사에 비해 월등히 좋았다. 그날 우리는 보스턴에 갈까 샌프란시스코에 갈까 행복한 고민을 하며 하루를 보냈다. 그런데 그다음 날 다시 샌프란시스코의 비상장회사에서 연락을 받았다. HR에게 오퍼를 받았다고 보냈는데 HR이 놀래서 전화를 한 것이었다. 사실 가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남편이 욕심을 내었다. 그래서 다시 샌프란시스코의 비상장회사로 온사이트 인터뷰를 하러 가게 되었다.
인터뷰는 이제 훨씬 쉬웠다. 두 군데 회사의 오퍼가 있었고 보스턴의 오퍼레터가 집으로 배달된 상태였다. 오퍼 내용은 구두오퍼 내용과 같았다. 그리고 샌프란시스코 회사의 구두오퍼가 있고 1-2일 후에 레터가 온다고 했다. 남편은 아주 편한 마음으로 인터뷰를 했는데, 오퍼를 두 개 받은 걸 그 회사 인터뷰어들이 아는 상태여서 자기 회사를 PR 하기 바쁘더란다. 그런데 좀 그 내용이 별로였다고 한다. 모두들 하는 말이 곧 회사가 나스닥에 상장할 예정인데 그러면 대박 난다면서 돈 얘기뿐이고 과학에 대한 얘기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교통 상황도 여유 있게 체크하며 전화를 했는데 남편 말로는 고속도로가 완전히 꽉 막혀서 도무지 이렇게 어떻게 출퇴근을 할지 엄두가 안 난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남편이 다시 집으로 비행기를 타고 오기 무섭게 샌프란시스코 두 개 회사의 오퍼가 거의 동시에 도착했다. 결국 남편은 세 개의 회사 오퍼를 손에 쥐었다. 가장 나중에 받은 오퍼가 가장 높았고 역시 다른 샌프란시스코 회사의 오퍼가 그다음으로 높았으며 가장 먼저 받은 보스턴의 오퍼가 가장 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