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윤리 조사

황우석 사태의 나비효과

by 보스턴임박사

포스닥을 시작한 지 2년째 접어들었을 때 임 박사는 다시 40일 기도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돌이켜 보니, K대학 1학년 때 40일 금식기도를 한 후 그의 인생이 전혀 예상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렀고 그 모든 과정이 결과적으로 좋았으며, 이제 돌아갈 곳을 정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임 박사는 한인교회의 새벽기도를 40일간 금식하며 다니게 되었다.

그가 40일 금식을 마친 지 얼마 후 그는 혼자 성경을 읽던 중 요셉에 관한 말씀을 읽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곧 잊었다고 한다.

그런데, 바로 그 주 일요일 예배 때, 목사님이 똑같은 본문으로 설교를 하셨는데, 임 박사는 이것이 너무나 신기했다고 한다.


‘이상하다’


사실 임 박사는 월요일에 지도교수에게 이제 한국으로 돌아갈 예정이라고 연말 계획을 얘기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똑같은 본문을 두 번을 받게 되자, 그는 확인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단다.

그래서 교수에게 가기 전에 이렇게 기도하고 떠났다고 한다.


‘주님, 저는 오늘 한국으로 가겠다는 말을 하려고 합니다. 주님의 뜻을 알려주세요.’


그리고 지도교수를 만나러 갔다. 지도교수는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 아니었고, 임 박사 스스로 느끼기에 지난 2년 반동안 고작 논문 한 편 쓴 게 다여서 떠나겠다는 말을 듣는 지도교수는 당연히 좋아할 것이라 여겼다.

그런데, 교수의 반응이 상상을 초월했다고 한다.


“자네가 미국에서 제약 산업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네.

내가 자네의 미래를 책임질 테니 계속 일하게.

승진도 시켜주고 자네 프로젝트에 새로운 포스닥을 뽑아주겠네.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어디든 얘기하게.

대학교수도 좋고 회사도 좋고 어디든 좋아.

내가 아주 환상적인 추천서를 써줄 거야.”


임 박사는 교수가 말하는 동안, 이건 분명한 하나님의 뜻이라 여겼단다.


‘분명히 미국에 남기를 바라신다.’


2번의 요셉의 말씀과 1번의 지도교수의 확고한 말은


‘너는 요셉이다’


라는 음성으로 임 박사는 들었다고 했다.

나는 당시 둘째를 임신한 상태였는데 복직을 하려면, 12월 31일까지 귀국을 해야 했다. 난 남편에게 그렇다면 당신은 더 있다가 오고 나는 딸과 귀국을 하겠다고 했다.

문제는 임신한 나의 건강문제였다. 산부인과 의사가 비행기를 절대 타면 안 된다고 했다.

결국 나와 남편 모두 미국에 남게 되었다.


지도교수의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연봉을 인상해 주었고 다른 연구원의 프로젝트에도 참여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고 한다. 이전에는 다른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것을 막고 있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임 박사의 프로젝트를 돕기 위해 두 명의 포스닥을 새로 채용했다.


이건 정말 의외였다고 한다.


한 명은 중국 유학생으로 이제 막 박사학위를 마치고 포스닥을 오는 것이었고, 또 한 명은 미국 남부 출신 미국인으로 서부에서 포스닥을 한 번 하고 Y대로 오게 된 세컨드 포스닥이었다.

그 외에도 수많은 포스닥이 들어와서 연구실은 매우 활기차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크리스라는 미국인이 박사학위를 마치고 포스닥으로 왔고, 동유럽 출신으로 독일에서 박사학위를 한 바비도 이 시기에 포스닥으로 들어왔다. 바비는 러시아 병정 같은 친구였는데 바이오인포마틱스 (Bioinformatics)를 전공한 친구였다.


임 박사는 바비와 특히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


새로운 포스닥들이 들어오자, 임 박사의 연구에도 새로운 모멘텀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한다.

연구실은 이제 임 박사의 놀이터가 되었다.

임 박사는 이전과 달리 전체 미팅에서 곧잘 자기의 의견을 얘기했다고 한다.

특히 연구실의 주제 테마 중 하나가 새로운 RNA 스위치 메커니즘을 어떻게 신약개발에 적용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는데, 그것은 임 박사가 맡은 프로젝트이기도 했고 그에 대해 그는 신약개발 경험을 토대로 어떠한 접근방법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현실적인 조언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렇게 연구실이 커지고 좋은 사람들이 많이 들어오고 나니 갑자기 연구실은 활기를 내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전보다 더 많은 결과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임 박사에게도 공동연구의 기회들이 찾아들었다고 한다. 사실 임 박사가 처음부터 공동연구를 하고 싶다고 지도교수에게 수차례 다른 연구원들의 과제에 참여할 수 있게 해 달라고 했지만 번번이 퇴짜를 받았었단다. 그런데 미국에 남으라고 한 그날 이후로는 공동연구를 제안할 때마다 항상 흔쾌히 승낙을 받아서 세월무상의 느낌마저 들게 되었다고 한다.


임 박사는 영주권 지원도 하게 되었는데 이 과정에서도 비자를 변경하거나 추천서를 받아야 하는 중요한 과정이 있었고, 이때에도 교수님은 항상 적극적으로 자기 일처럼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고 항상 자신이 하는 말에는 경청해 주셨다고 했다. 그리고 발표 기회도 많이 만들어 주셔서 임 박사의 부족했던 영어 프레젠테이션 능력도 점차 향상되어 갔다고 한다.

임 박사의 연구결과도 마치 날개를 단 것처럼 좋은 결과들이 속속 나오게 되었다.


처음 2년간 고작 1편을 내었던 것과 달리 이미 3편의 논문들이 더해졌고 그 외에도 새로 2-3편의 논문을 더 낼 수 있는 새로운 프로젝트들이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었다고 한다.


절친인 바비도 좋은 결과를 내기 시작했다고 한다.


최상의 저널인 네이처 논문에 교수님과 자신만의 이름으로 턱 하니 투고해서 논문이 나오게 된 것이었다.


아마 연구실의 모든 사람들도 이러한 바비를 시기했으리라.


공동연구를 하기 꺼려하는 바비였지만 임 박사에게만은 그러지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바비는 그에게 먼저 제안을 해서 임 박사를 놀라게 하더란다.

당연히 교수님은 이번에도 흔쾌히 승낙을 하셨다고 한다.

그러니 이제 두 명의 포스닥에 더해서 버비까지 임 박사의 연구를 함께할 동료가 세 명으로 늘어난 셈이었다.


임 박사는 박사 후 연구원으로 있는 동안 한국인 포스닥 연구원들이나 박사과정 학생들과도 가깝게 지냈는데,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겪은 미국연구생활의 고충을 듣고 있자면 마치 임 박사 자신은 딴 세상에 와 있는 게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한다. 임 박사는 그처럼 자존감이 아주 많이 올라와 있었고 한국인 동료들이 말하는 그런 일은 그에게만은 결코 일어날 수 없다고 마음속으로 생각하며 이렇게 교수님의 든든한 지원 속에 좋은 결과를 내고 있는 자신이 한껏 자랑스럽게 생각되었다고 한다.


남으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지도 2년이 지나가고 있었다.


언제까지 신선놀음만 하고 있을 수는 없을 노릇이었다.

무언가 이제는 결과를 내야만 했다.

그 결과는 중요한 논문, 즉 사이언스, 셀, 네이처 같은 중심저널에 그의 이름이 제일저자가 되거나 교신저자가 되는 정도의 업적을 내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3명의 박사들이 함께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지금과 같은 엄청난 지원을 받고 있는 현재의 상황에서 가장 실현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그동안의 결과가 점차 가시권에 들어오기 시작해서 이제는 적어도 네이처에는 낼 수 있는 수준은 되었다고 스스로 생각했다고 한다. 이제 결과를 잘 정리해서 논문을 투고하는 일만이 남은 상황이라고 여겨지고 몇 가지 추가 실험만 잘 마무리하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언제부터인지 남부출신 포스닥의 표정과 반응이 좀 미온적이었다고 한다.


두 번째 박사 후 연구원을 하고 있는 케이지로서도 그만의 한방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그런 그가 보기에 임 박사라는 외국인 연구원의 보조자처럼 일을 한다는 것이 어쩌면 처음부터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임 박사는 그의 반응을 그리 마음에 두지 않았다고 한다.

어차피 임 박사도 연구를 마무리 짓고 다른 자리를 잡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케이지가 이 연구를 이어 나가면 될 거라고 생각했단다. 임 박사는 이렇게 다른 사람에 대한 생각이나 배려를 하기에는 본인 자신이 결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감에 매우 몰리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교수의 지원이 지금까지도 꾸준히 지속되고 있지 않았는가.


이 모든 일에 임 박사가 주도권을 가지고 연구를 여기까지 진행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교수의 이런 전폭적인 지원하에서만 가능한 것이었다. 다행히 연구는 물 흐르듯이 진행되었고 교수도 특별히 임 박사에게 미팅을 요청하거나 하지 않았고 먼저 물어오는 법이 없었다고 한다.


특허 출원


몇 개월 즈음 흘렀을까? 교수는 임 박사의 연구 결과를 몇 건의 특허로 출원하려고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임 박사로서도 마다할 이유가 없어서 흔쾌히 동의했다고 한다.

아니 동의라기보다는 감사하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제 논문뿐만 아니라 특허까지 출원을 한다니.

그렇게 특허 출원을 마치고 얼마 후 교수님은 뜻밖의 제안을 하셨다.


“임 박사, 지금 하는 연구결과를 가지고 창업을 하려고 하는데 자네가 중심적으로 일했으면 하네.

자네 생각은 어떤가?”


창업?


임 박사는 한때 벤처캐피탈리스트로 스타트업에 투자자로 일한 적이 있었다. 그가 보기에 바이오 스타트업은 쉽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가 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아직까지 어떤 회사도 해보지 않은 표적이었다.

그러니까 실패할 수 있는 위험요소가 아주 큰 것이었다.

반면에 그 시장은 너무 협소한 항생제 시장이었다.


임 박사는 이 과제에는 매우 흥미가 높았으나 항생제라는 시장에 흥미가 적었다고 한다. 그는 항생제의 낮은 가격과 1-2주만 먹는 단기 복용 등 때문에 투자자의 관심을 끌기에는 어려울 것이라고 여겼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이 연구과제를 항바이러스제나 항암제에도 적용할 수 있는지 개인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그에 대해 차차 준비를 하고 있는 상태였다고 한다. 이런 연구주제로 나중에 그만의 연구실을 가지면 좋겠다는 막연한 꿈을 키워오고 있었던 것이다.


임 박사에게 있어서 교수의 새로운 제안은 쉽게 거절하기 쉽지 않은 것이었다고 한다. 교수의 연구실에 들어온 이후로 받아온 전폭적인 지원이 없었다면 연구가 이렇게 수편의 논문과 특허까지 얻을 정도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고 아버지의 사업실패 경험으로 트라우마를 가지고 살아온 임 박사로서는 교수와 함께 시작하는 것일지언정 스타트업 창업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그가 느끼기에 이 창업은 성공가능성이 그리 높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오랜 고민 끝에 임 박사는 교수에게 창업은 어렵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교수는 달리 더 말하지 않았지만 크게 실망하는 기색을 감추지는 못하더란다.

그렇다고 교수가 스타트업의 꿈을 접은 것은 아니었다고.

결국 남부출신 포스닥이 교수와 스타트업을 창업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이후부터 교수와 남부 포스닥이 함께 얘기하는 시간이 늘어갔고 반면에 임 박사와의 대화 시간은 상대적으로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와 함께 교수와 임 박사의 관계도 점차 시들해져 갔다고 한다.


황우석 교수 게이트가 터졌다.


임 박사는 몇 개월 전에 사이언스에 게재된 황우석 교수의 논문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 바로 그 논문의 데이터 사진 조작을 제보받은 어떤 방송사의 탐사보도팀이 이 사건을 보도하기 시작했다. 이 사건은 한국 내에서 뿐만 아니라 미국까지 보도되기 시작되었다. 특히 사이언스 논문이 미국 학회지였기 때문에 이 사건은 미국학계에서도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황우석 교수 게이트를 듣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연구실에서도 무언지 모를 새로운 분위기가 일기 시작했다고 한다. 임 박사는 종종 한국에서 온 연구원들과 삼삼오오 모여 앉아 황교수 게이트의 일을 얘기하곤 했는데 주로 각자가 알게 된 어떤 내용과 진행 상황 등에 대한 이야기였다.

수많은 새로운 일을 알게 되었는데...

예를 들면,

황우석 교수 연구실이 어떤 분위기였는지,

누가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

연구가 교수의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았을 때 강압적인 무언의 압력이 있었다는 등의 이야기였다.

이런 건 사실 임 박사에게도 그리 이상한 이야기는 아니었다고 한다.

그다음이 좀 충격적이었단다.

이건 황교수의 개인적인 야망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그가 사실 대통령을 꿈꾸었다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뭔가 가시적인 성과가 필요했고 정부에서는 그가 노벨상을 받을 수 있도록 추진하자는 얘기도 있었다는 믿기 어려운 이야기도 나왔다.

그리고 보다 놀라웠던 사실은 같은 팀에서 연구를 했다는 의사 연구원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들이 몇 차례 황교수의 연구에 대해 반론을 했다는 이야기가 있었고, 묵살되었으며 황우석 교수는 어떤 걷지 못하는 소년의 임상시험을 하기로 이미 그 부모와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었다고 했다.


이 임상시험이 제보의 발단이 된 것 같았다.


의사였던 연구원들은 이 문제에 대해 황우석 교수에게 반론을 제기했지만 보기좋게 묵살당했다고 한다.

자신들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앉자 결국 언론에 제보하게 된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 제보내용 중에 이 논문이 조작되었다는 충격적인 내용이 있었기 때문에 이 문제는 묻히지 못하고 결국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이었다.


임 박사에게 황교수 게이트를 처음으로 물어온 동료는 역시 바비였다고 한다.


뉴스를 통해 알게 되었다면서 어떻게 된 건지 임 박사가 아는 것이 있느냐며 물어왔다고 한다. 그냥 친한 친구로서 우정의 표현이었다. 임 박사는 솔직히 일어난 일에 대해 자신이 아는 만큼 얘기해 주었다.

바비는 사실 그 사건에 대한 관심보다는 임 박사가 지난 몇 주간 한국에 가족을 만나러 잠시 방문하는 동안 연구실 팀미팅에서 있었던 일이라며, 그에게 임 박사가 모르는 연구실의 분위기를 알려주었다고 한다.

내용은 정말 충격적이었단다.


“임 박사, 네가 없는 동안 남부 포스닥과 중국인 포스닥이 함께 너의 연구 프로젝트에 대해 말을 했는데 너의 실험태도에 대해 성토하는 내용이었어. 그들의 말에 가장 오래 있었던 인도인 연구원도 동조하더라. 이건 네가 알고 있는 게 좋을 것 같아.”


인도인 포스닥은 가장 오래된 포스닥이었는데, 평소 임 박사와 격의 없이 지냈을 뿐만 아니라 같은 포스닥 연구원 아파트에 살아서 가족끼리도 잘 아는 동료였다. 그가 임 박사가 없는 동안 뒤통수를 쳤다는 말에 임 박사는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무언지 모르지만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만은 곰처럼 무심한 임 박사조차도 인지할 수 있었다고 했다.

임 박사가 한국에 다녀오자마자 남부 포스닥에게 다가가 오랜만에 만나서 반갑다고 일상적인 인사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가 너무나 퉁명하게 대했다고 한다.

케이지가 귀찮으니 저리 가라는 식으로 말을 받아서 기분이 좀 상한 상태였다고.

평소와 많이 달랐던 그의 태도에도 좀 의아했지만 그것이 임 박사와 관계있는 일 때문일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크리스가 갑자기 임 박사가 하던 실험을 좀 배우고 싶다고 했다고 한다.


크리스가 임 박사의 곁에 와서 임 박사가 했던 유기화학반응을 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손이 서툴러서 잘 못 만드는 눈치였다고 한다. 그래서 임 박사가 다가가서 그에게 이것저것 가르쳐 주었더니 이내 합성법을 곧잘 따라 하며 결과를 내기 시작했다고 한다. 크리스는 박사학위 과정을 하면서 몇 차례 유기화학합성을 한 적이 있다고 했지만 임 박사가 보기에는 아주 초보적인 수준에 불과했다고 한다. 그 이후에도 몇 차례 크리스를 도와서 임 박사의 실험 내용을 가르쳐 주었고 임 박사는 그것을 가르쳐 주는 걸 하나의 소소한 행복쯤으로 여겼다고 한다. 마치 그가 미래의 교수로서 학생에게 화학실험을 가르치는 그런 마음이 되어서 한편으로는 내심 기쁘고 설레기까지 하였단다.


크리스에게도 임 박사가 귀국 인사를 했는데 남부 포스닥과 달리 크리스는 여전히 반갑게 맞이해 주었고, 실험이 어떻게 되고 있느냐는 임 박사의 물음에 이제는 그 실험은 하지 않고 새로운 일을 시작했노라고 대답을 했다고 한다. 크리스가 특별히 다른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둔감한 임 박사가 느끼기에 그 또한 임 박사가 한국에 가기 전과 후에 무언가 변화가 감지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런 일이 있은지 얼마 즈음 지났을까.


어느 날 갑자기 교수의 호출이 있었다고 한다


의외로 새벽 이른 시간에 자신의 사무실로 올 수 있겠느냐는 짧은 메시지를 받았다.

한동안 교수와 소원하게 지냈고 영주권 추천서를 부탁했었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교수기 써주겠다는 말과 달리 결국 추천서를 써 주시지 않아서 궁금하기도 했다고 한다.

시간은 지났고 지도교수 추천서 없이도 다른 분들로부터 좋은 추천서를 충분히 받았기 때문에 영주권 서류 접수는 이미 마쳤지만 그래도 지도교수의 추천서가 있었으면 좋았겠다는 마음은 좀 남아 있었다고 한다.


임 박사는 교수의 부름이 한편으로는 반가웠다고 한다.

그렇지 않아도 이제 논문만 쓰면 될 정도로 결과도 다 모아졌고 교수와 이 논문을 좀 좋은 곳에 투고하고 싶은 욕심이 나기도 했다고 한다.

이 논문이 임 박사가 새로운 교수직에 지원할 때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여겼다고 한다.

다음 교수직 지원 시즌이 시작할 때 가장 좋은 지원 패키지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그는 더욱 마음이 부풀었다고 한다.

또한 교수의 스타트업에 참여는 하지 않기로 했지만 내심 미안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참여여부와 관계없이 도움만은 드리고 싶었고 새로운 신약후보물질을 설계하거나 시도하는 등에 대해서도 회사 참여 여부와 관계없이 도와 드리리라고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이런 모든 것을 이번 기회에 한번 말씀드려서 그동안 교수와 소원해진 관계를 좀 회복해 보고 싶다는 기대를 가지고 교수 사무실의 방문을 두드리게 되었다고 한다.

아직 교수의 비서도 출근하기 전이고 다른 연구원들도 출근 전이어서 연구실이 있는 6층 복도는 모두 불이 꺼진 상태였고 교수 사무실 방에만 빛이 하얗게 스며져 나왔다고 한다.

교수 방에 들어가 앉으며 임 박사는 웃으며 미소를 지으며 찾아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렸다고 한다.

교수는 다소 무심하게 한국에 간 일은 어땠는지 물었고 임 박사는 잘 다녀왔다 보내 주셔서 감사하다고 다시 감사의 말씀을 전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가 생각했던 얘기를 하려는 찰나

교수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 고개를 숙였다가 들고는 천천히 임 박사에게 말을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임 박사,

그동안 우리가 자네와 바비에 대해서 연구윤리 조사를 진행했고 그 결과가 나왔네.

그 결과 자네의 연구는 괜찮은 걸로 나왔고 반면에 바비의 연구는 조작으로 결론을 지었네.

오늘 오전에 바비를 제외하고 모든 연구실 팀원들에게 팀미팅 공지가 갈 거야.

팀미팅을 하는 그 시간에 경비 요원들이 들어와서 바비를 데리고 나갈 거야

경비 요원들이 바비를 뉴욕까지 데리고 가서 출국시킬 것이고 바비는 10년간 미국에 다시 들어올 수 없네.

그동안 자네가 바비와 공동연구를 한 걸 알고 있는데 혹시 그로부터 받아야 할 연구자료가 있으면 오늘 들은 얘기는 비밀로 하고 그걸 챙기도록 하게.

절대 바비에게 이 일에 대해 비밀을 지켜 주어야 해.

만약 그가 알게 된다면 그때는 바로 나에게 얘기해 줘.

이제 돌아가도 좋아.”


교수는 본인이 할 말만 한 채 임 박사의 다음 말을 들으려 하지 않더란다.

교수의 모습은 침통해 보였고 왠지 쓸쓸해 보였다고 한다.

방문을 닫고 나가 달라고 말했고 인사하지 않았으며 방문이 스르르 닫히는데 문틈으로 보이는 교수의 모습은 즉시 일어나서 어딘가로 전화를 거는 것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임 박사의 머릿속이 온통 하얘지더란다.


그는 충격과 두려움에 휩싸였다고 한다. 임 박사는 교수가 했던 말을 다시 반복해서 스스로 재생해 보았다고 한다.


‘가만있자. 조사가 있었다고 하셨었지.

아니 조사를 하셨다고 했었나?

우리가 조사를 했다고 했는데?

여기서 우리는 누구를 말하는 거지?

누가 내 연구 내용을 조사하고 누가 바비의 연구 내용을 조사했다는 건가?

그런데 왜 우리 둘이 조사를 받게 된 거지?

30명이 넘는 연구실 팀원 중에서 둘을 콕 찍어서 조사를 했다니?

왜 우리 두 사람이 조사를 받도록 결정된 걸까?

오늘 바비가 쫓겨난다고?

아!

바비!!

그에게 마지막으로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이렇게 헤어져야 한다는 건가?

나랑 가장 친했던 좋은 친구였는데 그가 연구를 조작했다니 믿을 수가 없어!

도대체 어떤 돌팔이 같은 놈들이 바비의 연구결과를 조사했길래 그걸 재현하지 못했단 말인가?

이 멍청한 녀석들 같으니라고!’


그 순간부터 다른 동료들이 들어오기까지 아직 한 시간여의 공백이 있었는데 그동안 임 박사는 자신의 자리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자신이 받은 충격과 공포를 삭히려 애쓰고 있었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서 동료들이 한 명씩 두 명씩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임 박사가 실험실에 먼저 온 것을 보고 좀 의아하다는 듯이 쳐다보았지만 특별히 말을 걸거나 하지는 않고 저쪽으로 가서 서로 얘기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렇게 한두 시간쯤 지났을까?


교수가 임 박사에게 다시 와서 바비가 왔다고

그에게 가서 연구결과를 찾되 그 이상은 얘기하지 말라고 다시 신신당부하면서 임 박사에게 재촉을 하더란다.


사실 임 박사의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어쩌랴.

이미 그들의 계획 속에 일이 그들이 원하는 대로 착착 각본대로 진행되어야 하는 것이거늘.

임 박사는 단지 그들의 각본 속의 등장인물 중 하나인 피고 1이었고

바비는 피고 2였던 것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잠시 마음을 가다듬고 임 박사는 서서히 바비의 방 쪽으로 서서히 걸어갔다고 한다. 그 방을 향해 걸어가는 임 박사의 발걸음이 그렇게 무겁고 그 방이 그토록 멀게 느껴진 적은 정말 처음이었다고 한다.


'이 길을 그동안 얼마나 즐겁게 종종걸음으로 걸어 다녀왔던가?'


그런데 그날만은 그리 즐겁지도 가볍지도 못했고 너무나 싸늘한 시체실을 향하는 듯 임 박사는 마치 사형수가 마지막 죽음을 위한 형틀로 향하듯이 힘겹게 바비의 방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짧게 인사했다고 한다.

바비는 평소와 달리 무언가 자신의 책상에서 찾는지 매우 분주했고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임 박사에게 물었다고 한다.


“임 박사, 너 혹시 무슨 얘기 들은 것 없어?”


임 박사는 바비의 말을 듣고 마치 도둑질을 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범인처럼 몸이 굳어져 버려 입을 열 수가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대답은 해야 했단다.


“아니, 별다른 얘기 없는데. 무슨 일이 있어?”

“그럼 됐어. 누군가 내 방을 뒤진 것 같아. 혹시 무슨 얘기 듣게 되면 내게 알려줘!”

“알았어. 그럼 나중에 밥 같이 먹자.”


이것이 바비에게 한 마지막 인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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