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기업에서 배운 것

by 보스턴임박사

운이 좋게도 첫 직장을 한국의 대기업에서 일했는데 내가 다닐 때보다 지금은 훨씬 큰 기업이 되었다. 그 회사는 내가 인생을 설계하는 데 있어서 좋은 이정표를 만들어 준 고마운 직장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그리운 고향과 같은 곳이기도 하다. 한국 대기업에서 배운 것에 대해 얘기해 보려고 한다.


첫째는 퇴직관리다.


처음 신입사원 연수할 때 여러 가지 교육을 받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이 말이 나왔다.


“퇴직관리”

“직원은 일정 기간 기여를 하고 회사를 떠난다.”


이 말에 흥분해서 언성을 높이기도 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오히려 이걸 가르쳐 준 그 회사에 감사하게 생각한다.

직장인에게 떠나는 날이 온다는 것을 알고 일을 하면 경제적 자유를 일찍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는 수펙스 (Supex – Super Excellence의 합성어)라는 걸 배웠다.


이것은 무엇이냐 하면 미래의 최고 절정의 나 (이데아의 나)를 기준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면 굉장히 높은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는 거다. 원래 이 개념은 기업이 선도업체를 따라잡고자 할 때 보통의 경우에는 그 선도업체를 벤치마킹을 해서 따라가려고 하는데. 그렇게 하면 결코 그 선도업체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거다. 그 선도업체를 넘은 어떤 가상적인 최고의 회사를 상상하고 그 회사를 이기려고 덤벼야 선도업체를 뛰어넘을 수 있다는 개념이었는데, 이 개념을 지금도 몸에 배어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항상 현실의 누구 혹은 어떤 자리 혹은 어떤 회사를 벤치마킹하기보다는 이루어야 할 목표의 절대적인 기준을 두고 그것을 이루려고 노력해 온 것이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셋째는 투자에 대한 개념을 잡게 된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왜 대기업이 소기업에 따라 잡힐 수 있느냐? 를 너무 잘 배운 것 같다. 대기업은 회사의 규모 때문에 장기적으로 신규사업에 투자를 할 수 없는 구조라는 것이었다. 나는 일개 연구원이었지만 신규사업부 소속이었기 때문에 사장님이 계시는 임원보고에 간 적이 있다 우리가 보고하기 전에 큰 규모의 기존 사업부 보고가 있었다고 들었다. 우리 팀은 신규사업이니까 당연히 사업규모가 작았지만 이익률은 높았는데 임원님들의 마음에는 이미 없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그때 깨달았다.


새로운 기술은 새로운 회사에서 해야 한다!” 벤처캐피털에 가고 스타트업을 전전하는 이유가 되었다.


넷째는 좀 생뚱맞은 것인데 5년이라는 시간의 의미다.


내가 그 회사를 5년을 다니고 나왔는데. 5년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 안에 다 이룰 수 있는 것은 이룰 수 있고 그 이후부터는 그동안 심은 노력을 따먹는 기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덤인 것이다. 결국 5년 정도 투자해서 그 이후부터는 그 결실을 따 먹으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을 했다. 또 회사가 크든지 작든지 간에 어떤 결과가 나오려면 적어도 5년은 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그 기간이 지나면 결과가 나오기 시작한다. 꼭 한국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미국에서 회사를 다닐 때에도 5년이 지나면 서서히 노력하고 애쓴 결과가 나오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이후로 5년을 항상 나의 기준점으로 생각했다.

5년간은 투자기간, 그 이후는 열매를 거두는 기간” 이렇게.

그래서 어디에 갈지 신중하게 결정하고 일단 결정하면 5년은 일단 버틴다.


다섯째는 글로벌화 (Globalization)에 대한 것이다.


대기업 신입사원연수 프로그램이 3개월간 진행이 되었다. 그중 한 달은 일본어 학원을 다녀서 책 한 권을 떼는 것이었다 그 기간 동안 2명이 한 팀 씩 일본연수계획을 짰다. 일본연수계획은 우리 마음대로 짜면 되었다. 1인당 14만 엔씩 2명이면 28만 엔을 1주일간 일본에서 사용할 수 있어서 자금은 충분했다. 30년이 지난 요즘도 이 돈이면 일본 직장인 한 달 월급에 맞먹는다.


이 일본 연수 기간 동안 나는 오사카대학, 교토대학 그리고 도쿄대학교를 다니면서 한국에 대한 설문조사를 했는데 그 기간 동안 여러 가지를 배울 수 있었다. 대부분은 객관식이었는데 마지막 문제는 주관식으로 한국에 대해 아는 것을 쓰라고 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북한에 대한 것을 쓰는 것이었다. 일본에서는 남한과 북한 모두에 대한 뉴스가 매일 나온다. 신칸센을 타고 다니는 내내 뉴스에서 한국, 북한 뉴스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이 경험을 통해서 느꼈던 것은 기업이 글로벌화하려면 해외로 반드시 나가는 길 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나가서 직접 그들을 만나면 뭔가 새로운 것을 배우게 된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그것이 계기가 된 걸까? 난 결국 외국에 살고 있다.


여섯째는 직장 입사 동기에 대한 생각이다.


당시는 모든 게 공채였다. 그래서 동기라는 유대감이 생겼는데 그게 나중에 자신의 네트워크이자 힘이 된다. 그런데 먼저 내 동기들에게 미안하다. 내가 회사를 퇴사하고 나니까 입사 동기들과 만날 일이 없었다. 결국은 대부분 남이더라. 그래서 직장 동료는 그냥 있을 때에만 동료이지 꼭 중요한 나의 인생의 동반자는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직장 동료는 떠나면 어차피 남이고 잊히기 때문에 적당히 잘 지내다가 헤어진다고 생각하는 것이 편하다고 생각한다. 나만 이런 생각이기를 바란다.


일곱 번째는 결정에 대한 생각이다.


살다 보면 여러 가지 결정을 하게 된다. 그런데 그 결정의 결과는 당장 나타나지 않고 보통은 꽤 시간이 흘러야만 진정한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 같다. 대부분은 수십 년이 지나야 그 결과를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결정은 반드시 스스로 해야 하고 그 결정에 대해 스스로 믿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고. 조언은 구하되 결정은 본인이 하고 밀고 나가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너무 당연한가?


여덟 번째는 첫 직장이 주는 고마운 마음이다.


내가 이런 좋은 기업에서 첫 직장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참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첫 직장을 통해서 인생의 중요한 커리어를 쌓게 되었고, 결혼자금 마련을 통해서 가정을 이루게 되었고 그리고 미래를 꿈꿀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래서 첫 직장은 항상 내게 중요한 곳이다. 지금도 그 고마운 마음은 변함이 없다.


아홉 번째는 대기업이라는 곳에 대한 생각이다.


회사를 다닐 때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이라는 곳이 되게 크게 느껴졌다. 신입사원 시절부터 대리까지 있었으니까 뭐 당연하다. 그런데 이제 돌이켜보니 그저 작게만 느껴진다. 마치 어릴 때 초등학교 운동장이 굉장히 크다고 느끼다가 나중에 커서 가보면 한없이 작은 운동장을 마주하는 느낌이랄까? 아마 그만큼 내가 커졌기 때문이겠지만. 영원히 큰 존재는 없겠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대기업을 너무 크게 볼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마지막 열 번째는 경영자의 철학과 삶에 대한 생각이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내가 다녔던 대기업의 경영자이신 오너께서는 경영에 대한 철학이 확고하신 분이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모든 직원들이 공부하도록 경영원칙 교재를 만드셔서 우리가 그걸 외우고 공부하고 토론하게 하셨다. 경영자의 철학과 삶은 직원들의 철학과 삶에도 큰 영향을 준다고 생각했다. 좋은 경영자와 함께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그만큼 큰 복인 것 같다. 미국에서도 직원들 중에서 과거에 좋은 경영자와 함께 일한 찬란했던 과거를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얘기하는 걸 듣는다. 그만큼 좋은 경영자의 철학과 삶은 직원들의 삶에 평생 남게 되는 것 같다.


대기업에서의 바이오텍 경험


난 대기업 5년 중 2년간 신약개발팀에서 일했고 3년간 공정개발팀에서 일했다. 굴지의 대기업이었고 총수이신 오너의 전적인 지원을 받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개발하는 신약은 혁신 신약과 거리가 멀다고 느꼈다. 당시에는 그랬다. 대기업이 이 정도라면 글로벌 기업과 차이가 꽤 크다고 느꼈다. 일본 제약회사에서 배우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더 궁금해졌던 것 같다. 글로벌 바이오텍은 대체 얼마나 우리와 차이가 나고 무엇이 그 차이를 만들어 내는지. 그에 대한 궁금증이 결국 지금의 나를 있게 했다.


이렇게 적다 보니 10가지나 되었다. 내가 이렇게 성장할 수 있는 거름이 되어주고 가정을 꾸릴 수 있게 해 주고 지금의 나를 있게 해 준 첫 직장에 고마움을 전한다. 그리고 화이팅!! 을 외친다. 그 회사에게….

매거진의 이전글2030 바이오 전공자에게 하고 싶은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