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딩북 써보겠다고 이리 쿵 저리 쿵
서로의 온기가 느껴질 정도로 사람들이 가득 찬 공간에서 내 몸도 제대로 못 가두며 종이책을 들고 서 있을 엄두가 나지 않아, 한 손으로 지하철 손잡이를 쟁취하고 나머지 한 손으로 아이폰 8을 겨우겨우 지탱하며 손가락을 톡톡 페이지를 넘긴다. 종이책과 달리 작은 페이지에 글씨가 가득하다 보니 종이책보다 빠르게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만큼 혹사되고 있는 내 눈 어쩔;;; 이틀에 한 권 꼴로 이북을 읽다 보면, 지금 내 눈의 침침함이 이북 탓인가 나이 탓인가 그런데 침침한 건 사실 헛소리를 중얼거리고 만다.
그러면 바로 들어야지 싶어 앱을 깔았으나 한 달 무료 체험을 하려고만 하면 뜨는 아이폰 결재 수단 인증 신용카드 부분에서 자꾸 문제가 생겨서 몇 번을 실패하고 그 후 아이폰 결제로 새롭게 등장한 휴대폰 결제로 무료 결제에 성공하였으나 흠. 분명 아이폰 결제 항목에는 구독 중으로 날짜까지 버젓이 찍여 있지만 <밀리의 서재> 앱에는 나는 구독 정보가 없다는 서글픈 메시지만 덩그러니. 구독 정보가 보이지 않으면 누르라는 하단의 '구독 권한 복원하기' 버튼을 열심히 눌러보았으나 로딩만 되고 아무런 변화가 없는 걸 몇 번 겪었고, 지쳐서 구글에 '밀리의 서재 구독 권한 복원하기' 검색 (검색 결과 없음, 나만 이런 거야?! ㅠㅠ ), FAQ 검색 (또 없네, 역시 나만 그런가 봐;) 슬퍼하며 앱을 포기하고 PC로 접속. 아이폰 정기구독 결제를 마치고도 구독 권한이 없다며 듣지도 못하는 와중에 아래 로그인 화면을 보고 감동하고 말았으니.
SNS 로그인 버튼을 제공하며 '최근 로그인'한 SNS 정보를 보여주는 친절함이라니. 저 3개 SNS에 구글 로그인까지 온갖 SNS로 다계정 생성하며 정신없는 로그인 일상을 보내는 내게, 감동의 순간이었지만 왜인지 저 기능은 PC에만 제공되고 모바일 웹에는 제공되고 있지 않았다. 게다가 아이폰과 PC는 구독 가격도 다르다는 것을, PC 로그인을 하며 알게 되었다. 두둥.
100원 200원도 아니고 아이폰 앱에서는 12000원 PC에서는 9900원. 앱스토어 결제 수수료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건 알겠지만 그렇다면 결제 순간에 그런 정보는 표기해주면 좋으련만. 아쉬워하며 드디어 PC에서 다시 또 신용카드로 정기구독 결제를 성공하고 퇴근시간만 기다렸다.
안 그래도 읽고 싶던 책을 리딩북으로 만나볼 수 있다니 신이 나서 발걸음도 가벼웠다. 퇴근길의 2호선은 역시나 줄이 벽에 닿을 듯 길어서 지하철엔 오르지도 못했는데 줄 설 곳도 없었지만 나는 이제 지하철 손잡이에 매달려서 화면을 톡톡 하지 않아도 돼. 귀로 책을 읽을 거야! 기대에 가득 차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지나치게 순진하게 책을 통으로 읽어주리라고 기대하고 있던 나는 ㅋㅋㅋㅋㅋㅋ 뜬금없이 이야기를 하며 책과 자신의 이야기를 함께 풀어놓는 구성에 당황했다. 아 저기요 선생님. 저는 레이 크록의 문장과 생각이 궁금할 뿐인데 그냥 책만 읽어주시면 안 될까요?라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지하철 출퇴근 시간에 읽기 속도를 조절해서 빠르게 듣고자 했던 것이 나의 원대한 꿈이었는데 생각과 조금 다른 전개에 당황. 그리고 아마도 와이파이 상태였기 때문이겠지만 한참 열심히 읽어주던 리딩북이 멈춰서, 플레이를 다시 누르면 이북 자체가 아직 예전 페이지로 되어있어서 방금 다 들은 부분을 다시 읽어주는 걸 몇 번이나 당하며 리딩북은 LTE에서만 들어야 하는 가보다 학습하기도 했다.
이후 선택한 책은 <취향의 선택>이었는데, 이 책은 전문 성우님이 문장만 읽어주시는 방식이라 책 문장에 온전히 더 집중할 수 있었고 (물론 이 책도 리딩은 이미 저만치 가있는데 이북 페이지는 더 뒤에 있다가, 갑자기 리딩이 멈추고 이전 페이지부터 다시 읽어주는 현상이 몇 번 나타나긴 했다) 지하철에서 내려 길을 거닐면서 전문 성우님이 읽어주는 책을 듣는 것은 선선한 가을바람과 어우러져 퇴근길인데도 산책길 인양 좋은 기분도 선사해줬다.
첫 리딩북이 당황스러웠던 것은 온전히 책 속 문장에 기대어 생각을 하고 저자와 달콤한 시간을 보내고 싶었는데 그 자리에 누군가가 들어와서 '나도 의견 좀 내 볼게' 하는 기분이 들어서였다. 독서도 참으로 내성적으로 행하는 나로선 전문 성우님이 문장만 읽어주는 정도는 로봇이 읽어주는 것과 별반 다름없이;; 저자님과 다정한 ㅋㅋㅋㅋ시간이 될 수 있었지만 의견을 내는 분이 등장하는 순간 이것은 그야말로 삼자대면 (응?;;). 그렇게라도 책에 대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좋았지만 네. 저의 개취는 역시 책은 은밀히. -_-;; 저자와 단둘이 가 좋네요.
하지만 오히려 이렇게 삼자대면을 즐기며(??) 여러 의견을 들으며 책 읽기를 즐기는 분들도 많을 테고 무엇보다 타임 푸어 시대에 책 읽어주는 콘텐츠라니. 감사할 뿐입니다. 그러고 보니 제가 원한 것은 오디오북이었네요. <밀리의 서재> 서비스는 리딩북이었;;;; 전체를 읽어주고 의견 없는 오디오북을 찾아, 저는 다시 떠납니다 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