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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보통 Oct 18. 2022

실패율 제로, 제육덮밥

-[아침 먹는 보통네 집 1]이 브런치 북으로 묶여 발행되었습니다. 참고 부탁드리며, 아침 밥상 시리즈는 [아침 먹는 보통네 집 2] 매거진으로 연재를 이어갈 예정입니다^^-



남편이 제일 좋아하는 제 음식 중 하나가 바로 제육볶음이에요. 실패율 제로의 요리랄까요?

삼시세끼 어느 시간대에 해줘도 늘 맛있게 먹어주는 음식입니다.

평일 아침에는 출근 앞두고 입맛이 없다며 적게 먹기 일쑤인 그도 제육 덮밥을 해주는 날은 주말 아침 마냥 잘 먹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아침에는 맵지 않게 양념해 이렇게 덮밥으로 즐기고, 점심에는 메인 요리로 내고, 저녁에는 술안주로도 잘 어울리는 요리가 '제육볶음'아닐까 싶습니다.

제육볶음의 ‘제육’은 한자어 ‘저육猪肉’에서 유래된 말로, 돼지고기를 뜻합니다. 제육볶음은 양념한 돼지고기를 볶아 만든 음식이고, 제육볶음을 밥 위에 얹어 먹는 것이 바로 '제육 덮밥'이지요.

제육용 고기는 삼겹살에 비해 비교적 저렴한 돼지고기 앞다리나 뒷다리 살을 얇게 저민 불고기용으로 사용하는 것이 대부분이고, 목살이나 삼겹살을 사용해 만들기도 합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빨간 양념 입은 지금의 제육볶음과는 달리, 옛날에는 제육볶음을 만들 때 고추장과 고춧가루를 넣지 않고, 간장이나 새우젓 양념으로 맛을 내 만들었다고 해요.

이 같은 사실은 일제강점기 시절 학자이자 요리연구가로 활동하셨던 방신영 선생의 저술서를 통해서도 엿볼 수 있어요.

제육볶음에 고추장이나 고추, 고춧가루 등의 매운 양념을 사용하는 것은 1940년대 이후의 조리서에서 나타난다. 방신영은 1934년 『조선요리 제법』에서 간장을 사용한 제육볶음 조리법을 기술한 것과 달리 1946년 『조선 음식 만드는 법』에서 고추장과 고추를 넣은 제육볶음 조리법을 소개하였다. 『조선 음식 만드는 법』의 제육볶음은 간장, 고추장, 파, 마늘, 생강으로 양념하며 볶는데, 다 될 때쯤 볶은 고추를 이겨서(으깨서) 넣고 잠깐 뜸을 들인다고 하였다. 다 된 제육볶음은 접시에 담아 채친 알고명(달걀지단)을 얹어서 낸다. -전통문화 포털 사이트 참고
만능 맛간장을 만들어두면 제육 양념에도 유용하게 쓸 수 있어요.

이전에는 새우젓이나 간장으로만 맛을 내던 제육이 1940년대에 이르러서 빨갛게 맛을 내기 시작했다고 하니, 남편과 제가 몇십 년만 더 일찍 태어났어도 이 맛을 모를 뻔했습니다.

제육볶음과 두루치기, 고추장 불고기는 맛과 생김새가 비슷해 같은 음식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엄밀히 따지면 불고기는 미리 양념을 버무려 재웠다가 불에 볶아내는 음식이고, 제육볶음은 재우지 않고 양념해서 바로 볶아 만드는데 차이가 있어요. 또, 고추장 불고기에 비해 야채의 양이 많다는 것이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육볶음과 흡사하지만, 볶다가 물과 양념을 추가해 자박하게 졸여 먹는 것이 두루치기이지요.

물론, 재워 먹던 바로 먹던 하나같이 맛있는 음식임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저는 제육 요리를 할 때, 주로 앞다리살이나 불고기용 목살을 사용해요. 삼겹살에 비해 지방이 적고, 고기가 얇아서 덮밥으로 즐기기 좋은 부위입니다.

제육 양념을 할 때는 집에서 만든 만능 맛간장을 사용하고 있어요. 레몬과 사과향을 입은 향긋한 맛간장이 풍미를 올려 줄 뿐만 아니라, 간장을 달일 때 생강의 향이 첨가돼서 누린내를 잡아주는 효과도 있습니다. (조만간 맛간장 레시피도 공유해볼게요.)

물론, 맛간장이 없어도 충분히 맛있는 제육 양념을 만들 수 있어요. 그럴 때는 생강즙이나 다진 생강을 소량 넣어 주면 잡내도 잡아주고, 풍미도 업그레이드된답니다?

아침으로 제육을 양념할 때는 고추장과 고춧가루의 양을 조금 줄이고 간장 양을 늘려 간을 합니다. 첫끼부터 너무 매운 음식을 먹으면 위에 부담이 갈 수 있기 때문이지요.  혹은 쌈을 싸서 함께 먹거나, 들어가는 야채의 양을 늘려 수분감 있게 볶아내는 방법도 있습니다. 제육볶음은 맵고 짠 음식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맵지 않게 만들어 밥과 함께 먹으면 아침 첫끼로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어요.  

제육덮밥 만들기. 아침에도 인덕션은 열심히 일을 합니다.

제육 양념은 청주 또는 소주를 소량 넣고 참기름을 제외한 나머지 양념 재료를 모두 넣어 버무린 다음, 센 불에서 볶다가 중불로 줄여 속까지 잘 익혀줍니다. 야채는 고기가 거의 다 익어갈 때쯤 당근, 양파, 대파를 순서대로 넣어 볶아요. 참기름은 불을 끄고 마지막에 조금만 넣어주면 됩니다. 센 불에서만 볶아 익히면 양념한 고기가 타버리고, 속 까지 익지 않을 수 있어요. 이렇게 불을 조절해서 볶아내면, 완전히 익힐 수 있을뿐더러 고기 야채 익으면서 국물이 조금 생기기 때문에 덮밥으로 즐기기 더 좋다지요. 취향에 따라 양배추를 같이 볶아도 맛있습니다.

현미밥과 함께 제육 덮밥으로 차려낸 아침 식사
밑반찬과 얼갈이 된장국, 황금향을 곁들였어요.
남편의 취향 저격 아침 메뉴에 맛있게 먹는 모습.


제육 덮밥을 먹은 아침에는 현미밥 한 공기에 제육볶음을 담아 먹음직스러운 덮밥을 완성하고, 멸치 육수 진하게 우려 만든 얼갈이 된장국과 함께 아침을 차렸어요. 음식한 사람이 가장 보람을 느낄 때가 먹는 이들이 남김없이 잘 먹어 줄 때가 아닐까 싶습니다. 언제나 그랬듯, 이번에도 제육 덮밥은 패율 제로.

첫끼부터 든든히 잘 먹어주는 모습에 차려낸 보람이 느껴지는 뿌듯한 아침입니다.

제육덮밥

돼지고기 앞다리살 (혹은 불고기용 고기 부위), 양파, 당근, 대파
다진 마늘, 다진 생강 또는 생강즙, 청주, 간장, 고추장, 고춧가루, 설탕, 올리고당, 후추, 참기름
1. 양파는 2등분 해 채 썰고, 당근은 비스듬히 편 썰어 2등분 한다. 대파는 어슷 썰어 준비한다.
2. 고기에 참기름을 제외한 나머지 양념을 모두 넣어 버무린다.
3. 팬에 소량의 기름을 두르고 양념한 고기를 센 불에 타지 않게 볶다가 중불로 줄여 속까지 익힌다.
4. 고기의 핏기가 사라지면 당근, 양파, 대파 순으로 넣어 볶는다.
5. 불을 끄고 참기름을 조금 둘러준다.
6. 그릇에 밥을 퍼 담고, 그 위에 제육볶음을 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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