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통찰스케치 019] 이익을 넘어 가치를 경영하라

안병민의 [통찰을 스케치하다]

‘초일류기업의 조건’이라 했다. 오늘 강연 주제 말이다. 주인공은 카톨릭대학교 이동현 교수다. 그가 안내하는 초일류기업의 경영을 스케치했다.


▶ 20세기 초반, 경영의 씨앗이 싹트다


강의를 여는 슬라이드는 1, 2차 세계대전을 거쳐 대공황, 석유 파동, 그리고 최근의 금융위기에 이르기까지 세계 경제를 뒤흔들었던 굵직한 사건들로 가득 차 있었다. 세계 경제 판도를 뒤흔들었던 역사적 이슈들이다. 미국의 자동차 회사인 포드사가 설립된 게 1903년이고 하버드비즈니스스쿨이 문을 연 것도 1908년이니 사실 현대 경영이나 경영학의 역사는 그다지 길지 않다. 게다가 20세기 전반부는 이토록 전쟁과 혼돈의 시대. 그 거대한 역사적 사건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기업들의 존재감은 아직 미약할 따름이었다. 


그러나 그 와중에서도 주요 기업들의 경영혁신 사례들이 나타났는데, GE, 듀폰, P&G가 대표적이다. GE는 1900년에 세계 최초로 기업 내 연구실을 설치했다. 이른바 R&D에 대한 투자다. 지금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과학자들이 뭔가를 연구하게 함으로써 새로운 제품을 개발한다는 이 아이디어는 GE의 성장을 견인했다. 듀폰의 사례도 신선하다. 화약 사업으로 많은 돈을 번 듀폰은 외부로부터 새로운 사업 제안을 많이 받곤 했다. 그래서 늘 고민했던 게 ‘자본의 배분’ 이슈였다. 1903년 듀폰은 세계 최초로 ‘투자수익률 (ROI)’ 개념을 만들어 내부 통제 기법으로 활용한다. P&G는 널리 알려진 대로 ‘브랜드 경영’을 처음 시작한 회사다. 무형자산의 중요성을 처음 발견한 회사인 셈이다. ‘과학기술경영’, ‘자본경영’, ‘브랜드경영’이란 혁신적 경영 개념들이 20세기 초에 이렇게 싹을 틔우며 그 찬란한 미래를 준비하고 있었다.


▶ 신(新) 자유주의, 승자 독식 시대의 막이 오르다


“20세기 후반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1, 2차 석유 파동이 발생합니다. 수정 자본주의의 한계를 보인 셈이라고나 할까요? 그러면서 80년대 신(新)자유주의가 새롭게 부상하지요. 영국의 대처 총리,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이 주도했던 신자유주의는 탈규제화, 민영화, 세계화, 초경쟁이란 특성을 보이면서 세계 경제를 재편하기 시작합니다.” 

이 교수의 설명이 이어졌다. 


신 자유주의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었다.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면서 최고수준의 제품을 최적의 조건으로 공급하는 1등 기업에게는 무한한 기회가 제공되는 반면 2등 기업의 입지는 더욱 좁아진 것이다. 공급자에서 소비자로 자본주의 권력의 중심이 이동하면서 브랜드파워가 중요해졌고, 기업의 글로벌화가 가속되면서 시장의 글로벌 1등에게는 더 많은 기회가 주어졌다. 1등이 모든 걸 다 누리는 ‘승자 독식’의 세상이 온 것이다. 1등 기업은 확고한 시장 지배력을 통해 불황기에도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성과를 창출했다. 위기는 ‘위’가 아니라 ‘아래’로부터 찾아왔다. GE가 전설적인 성장을 한 시기도 바로 이 때였다. 잭 웰치는 시장점유율 1등 또는 2등이 아니면 의미가 없다고 선언하고 기업 가치를 획기적으로 증가시켰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1등, 최고에 대한 사람들의 열망은 더욱 강해졌다. 예전의 1등은, 하면 좋은 혹은 할 수 있으면 좋은 것이었다면 이제 1등은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해야 할 지상 최고의 목표가 되어 버렸다. 승자가 모든 걸 다 가지는 세상이 되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지사다.


▶ 성공 기업의 비밀-전략이 아니라 실행이다


그러던 그 때, 초일류 기업에 대한 최초의 연구 분석 작업이 이루어진다. 톰 피터스와 로버트 워터만이 맥킨지의 스폰서십을 받아 출판한 책 <초우량 기업의 조건(In Search of Excellence)>이 대표적인 결과물이다. 


“이 연구는 다양한 경영자, 컨설턴트, 경제저널리스트, 경영학자 등으로부터 추천을 받은 후보기업들 중에서 우수기업 62개를 추리고, 또 이중에서 1961년부터 1980년까지 초일류성과(excellent performance) 기준을 충족시킨 기업 43개를 선정해 진행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연구결과가 당시 학계를 지배하던 합리주의, 분석주의와는 다소 상치되는, 어떻게 보면 이단적인 내용들이었습니다.” 

이동현 교수의 목소리가 살짝 높아졌다.


당시만 해도 미국의 기업들은 전략이나 조직구조, 시스템과 같은 경영의 하드웨어적인 측면에 매몰되어 있었고, 그로 인해 ‘전략의 수립’과 ‘전략의 실천’을 동일시하는 함정에 빠짐으로써 수립한 전략을 제대로 실행조차 못하는 실수를 반복하고 있었다. 이 책은 시스템과 분석에만 빠져 있던 미국 기업들에게 일침을 가하며, 자유, 열정, 실행력, 창조성과 같은 소프트웨어적 가치를 강조했다. 경영의 하드(Hard)한 측면보다는 고객과 종업원, 실천과 시행착오, 공유가치와 규율 등 경영의 소프트웨어적인 측면을 강조한 그들의 주장은, 그래서 아주 혁신적이라는 찬사와 함께 이단이란 손가락질도 동시에 받아야 했다.


이동현 교수는 ‘현장 경영’의 사례들을 추가로 소개하며 강의를 이어나갔다. 휴렛패커드는 ‘MBWA (Management By Wandering Around)•사무실에만 있지 말고 현장을 적극적으로 돌아다니라’고 임직원을 독려한다. P&G의 ‘원페이지 보고’도 같은 맥락이다. 보여주기 식의 보고가 아니라 명확한 이해를 통한 핵심정리로 상시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계획’이 아닌 ‘실행’, ‘책상’이 아닌 ‘현장’에 집중하자는 이야기다. 초우량기업은 구조, 전략, 시스템 등의 하드한 요소가 아니라 실행 등 소프트한 요소에 의해 좌우된다는 걸 우리에게 알려 준 이 책은, 그래서 이단이었다.


▶ 이윤이 아니라 핵심 이념이 비전 기업을 만들다


“그런데 1995년에 또 한 권의 책이 나옵니다. 짐 콜린스가 쓴 <Built to Last>란 책인데요. 우리나라엔 <성공하는 기업의 8가지 습관>이라고 번역이 되었지요. 스탠포드대 특별연구팀이 지속적으로 정상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18개의 ‘비전기업’을 또 다른 18개의 비교기업들과 6년 동안 비교, 분석하여 찾아낸 기업경영의 원칙이 담겨 있는데요. 이 책 또한 초일류기업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깨는 이야기들로 가득합니다.” 


GE, HP, 필립 모리스, 디즈니 등 18개의 비전 기업을 조사해본 결과, 그 동안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믿고 있었던 기업경영과 관련된 여러 가지 신화들이 사실과는 전혀 달랐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즉 '비전기업에는 카리스마 넘치는 비전있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성공하는 회사는 이익 극대화를 최우선으로 여긴다' 등 추호도 의심해 본 적 없던 이러한 신화들이 사실과 전혀 달랐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조사를 토대로 잘못된 신화들을 짚어내어 새롭게 세워진 진실에 집중하라고 말한다. 그 진실이란 예컨대, ‘이윤을 넘어서는 핵심이념’, ‘크고 위험하고 담대한 목표’, ‘가치있는 기업문화’ 같은 것들이었다.


지금이야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 당시만 해도 기업의 목표는 두말할 것 없이 이윤 추구였다. 그런데 이윤 추구를 넘어서는 핵심 이념이 기업 성공의 비밀이라니, 이 역시 당시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이단적 연구 결과였던 셈이다. 비전기업에게 사업은 단순히 돈 버는 수단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사람이 살려면 먹어야 한다. 하지만 먹으려고 사는 것은 아니듯 기업이 성장하고 영속하려면 이윤을 내야 하지만 그렇다고 단지 이윤을 내기 위해서 기업이 존재하는 건 아니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기업은 왜 존재하는가? 기업의 목적은 무엇인가? 이런 경영 이념과 철학에 대한 전사적 공감대가 기업 성공의 전제 조건이라고 이 책은 역설한다.


▶ 조직에서 탈출하는 프리 에이전트의 행렬이 이어지다


“이 대목에서 GE의 성공으로 다시 한번 돌아가 보지요. 신자유주의 물결의 대표기업으로서 불과 이십 년 새 엄청난 성장을 구가했던 GE의 각종 지표들을 톺아보면 문제되는 부분이 보입니다. 네, 바로 직원 수 항목입니다. 종업원 수가 81년에는 40만 명에서 2000년에는 34만 명으로 6만 명이 줄어들었습니다. 요즘 시각으로 보면 전형적인 ‘고용 없는 성장’의 사례입니다. 과로사, 피로사회, ‘월화수목금금금’으로 이어지는 직장인의 팍팍한 삶 등등 많은 기업들이 맞닥뜨리고 있는 작금의 문제들이 사실 여기 다 녹아 있습니다.”


지금까지 경영학에서 바라보는 인간에 대한 관점의 큰 흐름은 맥그리거가 주창한 X이론에 기반한다. 알다시피 X이론은 쉽게 비유하자면 성악설에 기반한 내용이다. 이에 반해 Y이론은 성선설과 닿아있다. 종업원들을 X이론 관점으로 바라보는 조직은 권위에 기반한(Authority-Based) 관리방식을 택하고, Y이론 관점으로 바라보는 조직은 자율에 기반한(Autonomy-Based) 관리방식을 택할 것이다.


기업 경영에 있어 전략은 결국 실행의 문제로 이어지고 이는 또한 사람의 문제로 귀결된다. 결국 경영은 리더십의 문제다. 어떻게 하면 직원들로 하여금 즐겁게 자발적으로 열정을 가지고 일하게 할 것이냐가 사실은 경영의 핵심이다. X이론의 한계가 여기서 드러난다. 이교수는 <프리에이전트의 시대>란 책을 통해 ‘임금 노예’와 ‘프리에이전트’ 개념을 비교하며 설명을 덧붙였다. 


프리에이전트란, 거대조직체가 만든 틀에서 벗어나 자유를 바탕으로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책임지는 사람을 의미한다. 직업의 안정성을 누리던 샐러리맨들은 조직의 논리에 의해 자신의 창의성과 자발성을 억압받으면서 일방적인 지시와 통제에 의해 움직이는 임금노예로 전락했다. 조직을 벗어나 자신만의 새로운 삶을 꿈꾸는 프리에이전트의 등장은 조직 내 많은 문제가 있다는 방증인 셈이다.


▶ 이익 중심의 기업을 넘어 가치 중심의 기업으로 


바야흐로 자본주의 4.0 시대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미덕이었던 매출과 이익의 극대화, 이의 한계를 이제 우리는 직시해야 한다. 세상은 매출이 크고 이익이 많은 기업을 더 이상 존경하지 않는다.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가치를 추구하는 기업이 존경받고, 또 그런 기업이 성장하는 세상이다. 오늘 이동현 교수의 강의는 ‘매출이나 수익 등 주주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무얼 어떻게 해야 할까’가 아니라 ‘초일류기업의 본질’에 대해 곱씹어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결론은, 구성원들의 몰입을 이끌어 내고 고객의 사랑을 받는 기업이 이젠 진정한 초일류기업이라는 것이다. 넥스트 게임에서 승리할 초일류 기업의 모습은 이제, 아니 이미 달라지고 있다. 혁신 또 혁신할 일이다.


“기업이란 의미를 보다 폭넓게 정의하면 우리는 자본주의의 테두리 안에서도 지금껏 풀 수 없었던 사회, 경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 기업의 목적을 이윤 극대화뿐만 아니라 사람들과 세상을 위한 가치 창출의 개념까지 포함해 생각할 필요가 바로 여기 있다.” 2006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그라민 은행 유누스 총재의 수상 연설문에 나오는 말이다. ⓒ보통마케터안병민


*글쓴이 안병민 대표(fb.com/minoppa)는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헬싱키경제대학교 MBA를 마쳤다. (주)대홍기획 마케팅전략연구소, (주)다음커뮤니케이션과 다음다이렉트손해보험(주) 마케팅본부를 거쳐 (주)휴넷의 마케팅이사(CMO)로 고객행복 경영에 열정을 쏟았다. 지금은 열린비즈랩 대표로 경영혁신•마케팅•리더십에 대한 연구•강의와 자문•집필 활동에 열심이다. 저서로 <마케팅리스타트>, <경영일탈-정답은많다>, <그래서 캐주얼>, 감수서로 <샤오미처럼>이 있다. 다양한 칼럼과 강의를 통해 "경영은 내 일의 목적과 내 삶의 이유를 진정성 있게 실천해 나가는 도전의 과정"이라 강조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통찰스케치 018] 특명! 창의적 인재를 확보하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