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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23 당신은 브랜드입니까?

제1회 의료공감 세미나 행사 스케치

과연 진짜 있는 건지 그 존재여부를 알 수 없는, 외계의 누군가에게 무작정 신호를 보내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요? 처음엔 정말 그랬습니다. 이번 행사에 대한 기획회의를 하며 제가 처음 얘기를 꺼냈을 때만 해도 대부분 "그런 이야기들에 사람들이 돈을 내고 올까요?", "평범하기 짝이 없는 제 스토리에 사람들이 관심이 있을까요?"라며 반신반의하셨습니다. 의료계에 계신 분들은 지금 당장 실무에 도움이 되는 강의가 아니면 안 움직인다라는 이야기였습니다. 보잘 것 없는 내 개인적 이야기가 무슨 가치가 있을까 하는 반응이었습니다. 예컨대 '환자를 부르는 상담기법' 등 뭔가 손에 뚜렷이 잡히는 내용이어야 먹힐 수 있다는 얘기였습니다.


하지만 전 생각이 조금 달랐습니다. 모 그룹의 퇴임임원 교육을 정기적으로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수십 년간 몸 담고있던 조직을 나서면 결국 내가 의지하고 살 것은 나의 나력(裸力·벗은 힘), 즉 '내 브랜드'의 힘이라는 걸 다시금 절감했던 시간이었습니다. '평생직장' 개념은 무너진 지 이미 오래입니다. 많은 미래학자들은 이제 중산층의 미래를 '대기업 직장인'이 아니라 '자급자족형 장인'으로 전망합니다. 이제는 스스로 특정가치를 만들어 팔아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다시 말해 각자 나라는 브랜드에 대한 세일즈맨이자 마케터이자 CEO가 되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게다가 또 다른 번뜩임이 하나 있었습니다. 최근 몇 년새 기업이나 대학뿐만 아니라 의료계에서도 강의 요청을 많이 받았습니다. 병원이나 각종 협회, 컨퍼런스 등에서의 경영마케팅 특강들입니다. 그렇게 의료계에서의 강의들을 진행하다 보니 새롭게 제 눈에 들어오는 게 있었습니다. 일반 기업에서는 직원도 열심히 하면 나중에 사장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병원에서는 스탭이 아무리 열심히 해도 의사가 될 수는 없습니다. 원장이 될 수도 없습니다. 업무와 역할이 이미 정해져 있는, 뚫을 수 없는 천정이 있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 많은 스탭 분들이 그저 시키는 일만 하면 된다, 스스로를 상자에 가두어 버립니다. 일이 재미 있을 수도, 보람 있을 리도 없습니다. 단지 월급을 받기 위한 영혼 없는 노동이 이어집니다. 이직이나 퇴직이 잦은 이유입니다. 참 안타까웠습니다. 무엇보다도 행복하지가 않은 겁니다.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병원 스탭 모든 분들이 각자의 브랜드로 스스로를 마케팅하며 파워브랜드로 성장하는 것. 이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무척이나 귀하고 소중한 일이라는 걸 일깨워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기획한 프로그램이 금번 '의료 공감' 세미나 <당신은 브랜드입니까?>였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어제의 행사는 자~~알 끝났습니다. 어차피 매출이 주목적이 아니었습니다. 내심 40명으로 정한 신청정원을 훌쩍 넘겨 50명이 넘는 분들이 본 세미나를 찾아주셨습니다. 일요일 오후, 무려 다섯 시간을 빼야하는 일정임에도 다들 밝은 얼굴로 찾아주셨습니다.


첫 순서는 저였습니다. 이번 세미나의 기획배경에 대해 잠깐 말씀을 드린 후 본격적으로 <당신은 브랜드입니까?>라는 주제의 특강을 진행했습니다. 브랜드로 산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말씀드렸습니다. 파워브랜드가 되려면 어떤 요소들을 갖추어야 하는지 데이비드 아커 교수의 모델을 빌어 말씀드렸습니다. 결국 '차별화'가 관건임을 말씀드렸습니다.


"브랜드로 산다는 건 결국 차별화의 이슈다. 차별화는 포기다. 무엇을 더 할까가 아니라 무엇을 안 할까 결정해야 한다. 그게 바로 선택과 집중이다. 차별화는 용기다.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야 한다. 미친 척 할 필요가 있다. 아니, 미쳐야 한다. 차별화는 존재이유다. 이 일을 왜 하고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그게 고객이 나를 선택해야 하는 이유다. 차별화는 자기인식이다. 다른 사람의 정답이 내게도 정답일 수 없다. 내 답은 내가 찾는 거다. 관건은 몰입과 재미. 나다움을 찾아 나답게 살아야 한다. 나답게 살 때 가장 창의적이고 나답게 살 때 가장 행복하다. 그게 바로 나라는 브랜드를 통해 내 일과 삶의 고객과 행복하게 상생하는 길이다!" 제 강의의 요지입니다.


다음 순서는 '환자행복 디자이너' 이든치과의 최명희 매니저님이었습니다. 사회생활 초기, 치과위생사가 싫다며 방황하다 낮은 자존감을 극복하기 위해 힘겹게 노력했던 삶의 스토리들을 담담하게 풀어주셨습니다. 주어진 환경에 매몰되지 않고 새로운 변화의 스토리를 끈기있게 써내려갔던 이야기들입니다. 수동적인 일상에서 벗어나 능동적으로 열정적으로 살기 위해 노력했지만 찬사와 박수만 있었던 건 아니었습니다. "쟨 왜 저렇게 나대?", "가만 좀 있지, 저 사람은 왜 자꾸 일을 만들지?", "스탭이 의사한테 감히?" 상처를 받는 순간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스스로를 다독여나갔습니다. 그렇게 그녀는 자신이 일하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기억하며 조금씩 더 단단해졌습니다.


어느 새 병원생활 15년차의 그녀입니다. 돌아보면 꽤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그녀가 바꾸어 낸 것도 많습니다. 그녀가 생각한 건 오로지 하나였습니다. '환자행복'과 '병원 스탭으로서의 자존감' 제고였습니다. 그런 그녀를 보며 제가 말했던 적이 있습니다. "최명희 매니저님은 옛날 독립운동 했던 독립군 같아요. 누가 알아주든 아니든 이런 노력들이 후배들이 조금 더 나은 환경에서 일하게 되는 데 큰 힘이 될 겁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그녀의 프레젠테이션은 그렇게 감동이었습니다.


'지금 고객 메이커' 서울척병원의 임자영 팀장님은 이번 의료공감 세미나의 세 번째 순서였습니다. 늘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해주는 두 아이의 엄마입니다. 하지만 그녀의 스토리는 웃음으로만 가득한 건 이니었습니다. 밝은 에너지에 가려 잘 안 보였던 내밀한 아픔을 그녀는 한 시간 동안 애써 밝게 풀어내었습니다. 어려운 가정사정 상 학교를 다닐 때부터 돈을 벌어야 할 수 밖에 없었던 시절, 무려 스무 가지가 넘는 알바를 뛰면서 조금씩 세상을 알게 되었던 시간들.


그녀는 그런 좌충우돌 시행착오의 시간들을 거치며 알게 됩니다. "사람이 있는 시간, 그리고 사람이 있는 공간." 우리의 모든 시공 안에는 결국 '사람'이 있더라는 깨달음이었습니다. 그런 그녀에게 고객은 단지 내 물건이나 서비스를 팔아야 하는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고객은 곧, 함께 마음을 나누는 친구였습니다. <마켓3.0>에서 코틀러 형님이 이야기하는 진정성, 바로 그 이야기였습니다. "영업하지 마라, 그저 도우라"는 그녀의 말은 그래서 울림이 큽니다. 그녀가 그 자그마한 몸으로 직접 부대끼며 살아내어 얻어낸 교훈이라서입니다. 그녀는 그런 야생의 마케터였습니다. 스스로 그런 브랜드를 만들어가는 지난했던 과정의 이야기들에 청중들은 감동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마지막은 '한줄정보 디자이너' 하이치과의 노경만 실장님의 순서였습니다. 목포에 계시면서 서울에 좋은 강의가 있다면 몇 시간씩의 운전도 마다않고 장거리 공부를 하며 열정을 불태웠던 분입니다. 원래 단순함의 미학을 추구하던 그는 '의료 정보도 환자들에게 좀 더 쉽고 직관적으로 전달할 순 없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무기는 파워포인트였습니다. 난삽한 정보들에서 그는 매의 눈으로 핵심정보들을 추려냅니다. 그 정보들을 그는 텍스트로 남겨두지 않습니다. 직관적인 이미지로 바꾸어 줍니다. 복잡한 내용들이 그의 손을 거치면 마법처럼 한 눈에 쏙 들어옵니다. 냉철한 이성에 따뜻한 감성이 함께 해야 가능한 작업입니다. 교회오빠 이미지의 따뜻한 그는 그렇게 또 분석적입니다.


"저는 디자인을 전공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많은 분들이 저를 정보디자이너라 불러줍니다. 중요한 건 결과물이지 그런 학위가 아니라 생각합니다." 백종원 대표가 요리사 자격증을 많이 따서 외식업계의 대부가 된 건 아닙니다. 같은 맥락입니다. 그러던 와중, 작업의 결과물들이 하나하나 쌓이자 그는 그걸 공유할 생각을 합니다. 블로그를 개설하여 그동안의 작업물들을 올려놓고 필요한 병원들에선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오픈했습니다. 브랜드는 그렇게 만들어졌습니다. 내 거라고 꽁꽁 싸매고 있는 건 구석기 시대 사고방식입니다. 내 걸 열어놓음으로써 나라는 브랜드는 더 커지는 겁니다. 소셜 등으로 대표되는 '연결' 메커니즘때문입니다. "나라는 존재(P)에  상대(You)와의 관계를 더하니 브랜드(B)가 되더라"는 그의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의도했든 아니든 한 분 한 분이 브랜드이고자 노력하고 계셨던 이 분들의 프레젠테이션에 청중들은 마구마구 공감해주셨습니다. 단순한 지식을 전달하기 위한 자리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렇게 노력해서 성공했으니 너도 열심히 해라"를 얘기했던 게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나도 힘들었고 지금도 힘들다. 하지만 나의 시간들을 행복하게 빚어내려 애쓰고 있다"라는,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우리의 얘기를 나누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결코 쉽지 않았을 삶의 이야기들을 비슷한 처지에 있는 분들과 눈을 맞추며 함께 나누니 그 울림이 더욱 컸을 겁니다. 의료공감 세미나라 해서 '공감'에 방점을 찍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저를 포함한 네 사람이 각각 한 시간씩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시간! 모든 연자분들을 무대 위로 모셔놓고 청중들과 자유로운 대화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행사 내내 제가 전체 진행 및 사회를 함께 보았는데 마지막 시간은 또 다른 의미에서 압권이었습니다. 단편적인 질문들을 하시는 게 아닙니다. 오늘 들은 이야기들에 대한 따뜻한 공감과 함께 본인의 이야기들을 해주셨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쉽지 않을 수 있는 이야기들입니다. 하지만 우린 그 시공간에서 하나였습니다. 그래서 가능했을 질문과 대답들, 그리고 많은 대화들이 자유롭게, 그리고 뜨겁게 오갔습니다. 일반적인 세미나에서는 볼 수 없는 광경이었습니다. 마지막 Q&A 시간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청중들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제 행사는 달랐습니다. 무대라는 경계 없이 끝까지 우리는 함께였습니다. 일방향적 주입식 강의가 아니라 쌍방향으로 오고가는 그런 대화들에 우리 모두가 목말랐다는 방증입니다.


오후 1시에 시작한 행사가 6시반이 되어어야 마무리되었습니다. 참석하신 모든 분들이 한결같이 이야기해주셨습니다. 어떻게 시간이 가는지 모르고 몰입해서 들었다고 말입니다. 너무나 유익한 시간이었다고 말입니다. 자리를 정리하고 함께 해주셨던 강연정류장 팀 그리고 세 분의 연사들과 조촐한 뒷풀이 식사를 하였습니다. 이번 행사를 통해 다들 한 뼘씩은 더 성장한 듯 하다 말씀하셨습니다. 귀한 시간 쪼개어 와주신 청중 한 분 한 분이 감사하다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전체 행사를 기획했던 제 입장에서는 하나같이 감사한 분들입니다. 좋은 분들과 함께 하니 이렇게 든든할 수가 없습니다. 제 복에 연신 감사했습니다. 그럼에도 오히려 제게 고맙다고들 말씀하셨습니다. 2017년 가을의 훈훈한 밤풍경에 행복이 넘쳐났습니다.


그 작은 행복의 순간을 잊지 않고자 이렇게 개발괴발 기록으로 남깁니다. 제1회 의료공감 세미나 <당신은 브랜드입니까?>,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출발로 생각하겠습니다. 더 큰 울림의 이야기들로 다음에 다시 뵐 것을 약속드립니다. 고맙습니다. ⓒ보통마케터안병민    


*글쓴이 안병민 대표는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헬싱키경제대학원 MBA를 마쳤다. (주)대홍기획 마케팅전략연구소, (주)다음커뮤니케이션과 다음다이렉트손해보험(주) 마케팅본부를 거쳐 (주)휴넷의 마케팅이사(CMO)로 고객행복 관리에 열정을 쏟았다. 지금은 열린비즈랩 대표로 경영혁신•마케팅•리더십에 대한 연구•강의와 자문•집필 활동에 열심이다. 저서로 <마케팅리스타트>, <경영일탈-정답은많다>, 감수서로 <샤오미처럼>이 있다. <열린마케팅스쿨>과 <혁신리더 노자스쿨>도 운영 중이다. fb.com/minop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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