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국제신문 칼럼 06] 개방의 몽골, 세계를 삼키다

[국제신문 연재] 안병민의 세상읽기

국제신문 2019년 10월 28자 26면에 실린 <세상읽기> 연재칼럼입니다.


몽골 제국이 유럽을 침공한 건 1241년 가을이었다. 첫 번째 제물은 헝가리였다. 헝가리 군은 전멸했다. 다음 제물은 누가 될까, 유럽 전역이 공포에 떨었다. 우리를 비켜간 걸 신의 가호로 여길 정도로 당시 유럽인들에게 몽골은 공포 그 자체였다.


몽골군은 모두 기병이었다. 활과 칼로 최대한 가볍게 무장을 했다. 압도적인 기동성을 무기로 적을 한 지역에 몰아넣어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흩어지는 적을 칼로 공격하며 백병전을 펼쳤다.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작전이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무기가 가벼우니 적진을 정면 돌파하는 게 불가능했다. 적군이 마차 같은 견고한 장애물로 방어진을 펼치면 치고 들어갈 수가 없었던 거다.


하지만 몽골군은 지혜로웠다. 우리가 못하는 건 남에게 맡기면 된다. 정면 돌파의 임무는 퉁구스계에게 맡겼다. 만주족이라 불렸던 퉁구스계 민족은 경장기병을 운용했던 몽골계와 달리 중장기병을 운용했다. 중세 유럽 기사들의 육중한 갑옷과 투구를 떠올리면 쉽다. 이들의 특기는 정면 돌파였다. 요즘으로 치면 ‘탱크’ 역할이다. 중무장을 한 기사들이 적진을 향해 뛰어드는 거다. 다가 아니다. 세 마리의 말을 밧줄로 묶어 돌파력을 배가시켰다. 이런 중장기병들에게 장애물이란 없었다. 물론 방향을 바꾸는 게 쉽지 않아 상황 변화에 따른 탄력적 대응이 힘들다는 약점이 있었다. 그럼에도 몽골군은 그들의 약점보다는 장점에 주목했다. 몽골군은 퉁구스 기병을 자체 병력으로 편입시켰다. 각 군의 강점에 따라 역할을 배정했다. 퉁구스 기병들의 저돌적 돌파에 이은 몽골 기병들의 날렵한 공격이 적군의 혼을 쏙 빼놓았다. 환상의 조합이었다.


몽골군의 또 다른 강점은 공병대였다. 공병대는 유목민족에게는 있을 수 없는 조직이다. 여기저기 거처를 옮겨 다니는 유목민족에게 성을 쌓고 다리를 만드는 일은 딴 세상 일이었다. 하지만 몽골군의 위대함은 여기서도 나타난다. 중장기병 운용에 이민족을 활용했던 것처럼 농경 정주민족에게 공병대 역할을 맡긴 것이다.


빛의 속도로 전 세계를 제패했던 몽골의 비결이 여기에 있다. ‘개방’이었다. 몽골은 혼자서 전 세계를 정복한 게 아니었다. 다른 민족을 우리 편으로 끌어들였던 거다. 몽골의 중장기병이나 공병 조직도 그런 개방의 연장선상에 있다.


당시 사람들은 몽골군이 강대한 성벽으로 방어진을 치고 있던 유럽군을 결코 뚫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예상은 빗나갔다. 중앙아시아나 유럽의 성들은 몽골군의 공격을 한 달도 채 견디지 못했다. 속속 무너지고 뻥뻥 뚫렸다. 기병대만으로 이룰 수 있는 성과가 아니었다. 이질적인 병기와 전술의 융복합을 통해 몽골군은 가는 곳마다 승리했다. 이질의 문화를 유연하게 받아들였던, 몽골군의 개방성 덕분이다. 이런 개방을 통해 몽골은 불과 50년 만에 첨단기술로 무장한, 전 세계를 아우르는 군대로 변모했다.


몽골의 개방에서 혁신을 읽는다. '나와 다름'을 받아들이는 개방이 전제되지 않으면 혁신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더해지는 키워드가 ‘관용’이다. ‘톨레랑스(Tolerance)’ 말이다. 톨레랑스는 사랑이나 자비 같은 도덕적 개념이 아니다. 타인과의 차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거다. 나만 맞고 다른 이는 틀렸다는 아집을 버리는 거다. 다름의 포용이다. 불편한 일이다. 그래서 관용은, 참는 거다. 견디는 거다. 불편하지만 참고 견디는 거다. 실용적 가치 때문이다. 요컨대, 관용은 곧 실용적 개방이며, 이런 개방이 혁신으로 이어진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잡으면 된다. 몽골이 모든 고양이에게 문을 활짝 열었던 이유다. 그런 열린 자세를 통해 몽골은 세계를 내달렸다. 몽골이 세계를 제패할 수 있었던 비결은 결국 관용이었다.


색깔로 구분되어야 하는 것은 세탁물 말고는 없다(Laundry is the only thing that should be separated by color). 인종차별을 경계하는 은유다. 맞고 틀림이 아니다. 그저 다를 뿐이다. 세상만사 다 그렇다. 작위적 이념과 틀에 매몰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다. 비우고 내려놓아야 한다. 끌어안고 포용해야 한다. 몽골이 그랬다. 나를 버리니 개방이고 상대를 품으니 관용이다. 혁신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보통마케터안병민



*국제신문 2019년 10월 28일자 26면 <세상읽기> 연재칼럼 http://bit.ly/2BMb1hJ


*글쓴이 안병민 대표(fb.com/minoppa)는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헬싱키경제대학원 MBA를 마쳤다. (주)대홍기획 마케팅전략연구소, (주)다음커뮤니케이션과 다음다이렉트손해보험(주) 마케팅본부를 거쳐 (주)휴넷의 마케팅이사(CMO)로 고객행복 관리에 열정을 쏟았다. 지금은 열린비즈랩 대표로 경영혁신•마케팅•리더십에 대한 연구•강의와 자문•집필 활동에 열심이다. 저서로 <마케팅리스타트>, <경영일탈-정답은많다>, <그래서 캐주얼>, 감수서로 <샤오미처럼>이 있다. 다양한 칼럼과 강의를 통해 "경영은 내 일의 목적과 내 삶의 이유를 진정성 있게 실천해 나가는 도전의 과정"이라 강조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부일CEO아카데미 스케치 기사] 뿌리혁신-안병민 특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