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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춘코리아 038] 예술가와 혁신가

[포춘코리아 연재] 안병민의 경영수다

*포춘코리아 2019년도 12월호에 실린 연재기획 <안병민의 경영수다> 칼럼입니다.

 

낡은 것을 바꾸거나 고쳐서 아주 새롭게 함. 혁신의 정의입니다. ‘가죽 혁(革)’자에 ‘새로울 신(新)’자이니 오래 된 가죽을 벗겨내는 작업입니다. 그만큼 혁신은 고통스럽습니다. 그럼에도 해야 하는 게 혁신입니다. 지금까지의 경영방식이 더 이상 먹히지 않는 세상이라서입니다. 여름에는 반팔 옷을 입다 겨울이 오면 두꺼운 외투를 꺼내 입듯 세상이 변하면 우리의 패러다임도 달라져야 합니다. 이른바 ‘전략적 유연성’입니다. 이게 없으면 여름엔 더 덥고 겨울엔 더 추울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 변화에 맞춤하여 부단히 혁신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혁신은 ‘전복(顚覆)’과 ‘파괴(破壞)’를 수반합니다. 기존의 방식을 무비판적으로 따르고 이어가는 것은 답습(踏襲)일 뿐입니다. 그래서 혁신은, 넘어뜨리고 뒤집고 깨뜨리고 무너뜨리는 과정의 축적입니다. 이런 파괴와 전복의 혁신적 삶을 살다 간 예술가들이 있습니다. 그들로부터 배우는 혁신의 용기.

 

먼저 파블로 피카소(1881-1973)입니다. 피카소는 ‘입체주의’라 불리는 ‘큐비즘’의 태두입니다. 입체주의는 하나의 관점으로만 표현되던 회화의 틀을 산산이 깨부숩니다. 캔버스에 여러 개의 시점을 녹여 넣은 겁니다. 피카소가 처음부터 이런 그림을 그린 건 아니었습니다. 그의 초기작품들은 푸른 색을 주로 썼다는 걸 제외하고는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그림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는 도전하고 일탈하였습니다. 그림에서 우리가 보는 대상은 한 쪽 면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피카소는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화폭에 담으려 했습니다. 다양한 시점이 하나의 그림에 동시에 들어가게 된 배경입니다. 이를테면 인물의 정면과 옆면을 동시에 보여주는 식입니다. 마치 입방체를 펼쳐놓은 평면도 느낌입니다. 그러니 원근법과 명암법 등 기존의 화풍을 주도하던 커다란 원칙이 피카소의 그림에서는 여지없이 무너져 내립니다.  

 

<아비뇽의 아가씨들>이란 작품이 대표적입니다. 이 그림에는 발가벗은 다섯 명의 여인이 나옵니다. 하지만 전통적 누드화와 달리 아름답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로테스크합니다. 피카소가 적용한 ‘복수(複數) 시점’ 때문입니다. 하나가 아닌, 여러 개의 시점에서 보이는 장면들을 2차원의 캔버스에 펼쳐 놓았으니 당시로서는 기괴하기 짝이 없는 그림이었을 겁니다. 아니나다를까 여인들의 모습은 뾰족하고 삐죽합니다. 마치 이런저런 도형들의 조합 같습니다. “피카소는 모든 것을 파괴했다. 여성의 고전적인 우아함과 아름다움을, 자연적인 상식과 비율을. 그는 르네상스 이후의 모든 미술에 대항하고자 했다”는 평이 나온 건 그래서입니다.

 

바실리 칸딘스키(1866-1944) 역시 피카소 못지않은 예술계의 혁명가입니다. 칸딘스키는 현대 순수 추상회화의 선구자입니다. 당시만 해도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충실히 구현하는 게 회화의 존재이유였습니다. 하지만 칸딘스키는 ‘대상의 사실적인 재현’이라는 관행에서 이탈합니다. 그림은 눈에 보이는 세상을 모방하기보다는 작가의 감정을 나타내는 수단이어야 한다,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색채와 선, 면 등 순수한 조형 요소만으로도 감동을 줄 수 있다 믿었기 때문입니다. 칸딘스키의 그림에서 대상의 형태가 사라진 이유입니다. 기존의 낡은 질서를 거부하고 파괴한 겁니다.

 

대표작 <콤포지션(composition)>은 이런 추상의 개념들을 직관적으로 보여줍니다. 선과 면, 원과 삼각 등 도형적 요소와 색채가 가득한 그림입니다. 역동적인 도약의 느낌은 있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표현한 건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는 특히 소리와 색채 간의 상징적 관계를 통한 새로운 예술적 경험에 천착했습니다. 쉽게 말해, 소리를 그리는 겁니다. “나는 음악을 들을 때 마음 속에서 온갖 색깔을 보았고, 그림도 음악과 같은 힘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추상미술이 우리에게 주는 감동을 음악에 비유한 칸딘스키의 말입니다.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악기들은 선의 성격을 갖고 있다는 게 칸딘스키의 생각이었습니다. 각각의 악기들이 갖는 고유한 음높이가 선의 폭과 일치한다는 겁니다. 높은 음역대의 악기들은 가는 선, 낮은 음역대의 악기들은 굵은 선. 그렇게 소리는 선이 되고 면이 됩니다. 그의 그림을 볼 때, 음악을 듣는 듯한 느낌을 받는 건 그래서입니다. 소리를 색과 선으로 치환한 겁니다. 칸딘스키의 시선은 그만큼 도전적이고 전복적이었습니다.

 

피카소와 칸딘스키의 이런 혁신은 ‘독립(獨立)’에서 비롯합니다. 독립은 홀로 서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오로지 나의 힘으로 서 있는 겁니다. 그래서 독립한 사람은 세상의 관습에, 세인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습니다. 스스로 질문하며, 스스로 생각합니다. 기존에 없었던 나의 정답을 그렇게 찾아갑니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을 되뇌며 나의 길을 갑니다. 그러니 혁신을 하려면 기존의 관념과 단절해야 합니다.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야 합니다. 혼자라는 외로움을 이겨내야 합니다. 과거의 답습을 끊어내야 합니다. 필요한 건 용기와 도전입니다. 다름 아닌 ‘기업가정신’입니다.

 

피카소와 칸딘스키는 일생을 통해 이런 기업가정신을 보여준 예술가입니다. 내 일과 내 삶을 경영하는 데 있어 단순한 ‘개선’에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관행을 거부했고, 상식을 뛰어넘었습니다. 다른 이의 평가와 상관없이 나만의 예술을 창조했습니다. 다양한 시점에서의 세상을 한 화면에 담았고, 귀로만 듣던 소리를 그림으로 표현했습니다. 기존의 조형질서를 파괴함으로써 전에 없던 새로운 개념을 만든 겁니다. 미술과 예술, 더 나아가 세상이란 페이지에 혁신의 한 획을 뚜렷하게 그은 겁니다. 예술가였던 그들은 다름 아닌 혁신가였던 겁니다.


지난 여름이었습니다. ‘록의 대부’ 신중현이 새로운 앨범을 발표하고 공연을 했습니다. 14년 만의 새로운 앨범입니다. 하지만 그는 완성된 연주실력을 뽐내는 데 그치지 않았습니다. 새로운 주법에 도전했습니다. 창법도 바꾸었습니다. 배에서 나는 소리와 머리에서 나는 소리가 다른 것처럼 눈이나 다리에서 나오는 소리도 다르다는 게 그의 말입니다. 고수는 같은 일을 오래 한 사람이 아닙니다. 매번 새로운 시도를 통해 끊임없이 성장하는 사람입니다. 단순한 시간의 누적을 넘어, 새로운 도전의 축적이 고수를 만듭니다. 나이 여든을 훌쩍 넘긴 거장은 이렇게 또 ‘어제의 나’와 결별하며 오늘도 새로운 세상을 빚어냅니다.

 

시행착오를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예전 방식의 반복은 혁신의 장애물입니다. 대답이 아니라 질문해야 합니다. “왜 이렇게 해야 하지? 다른 방법은 없을까?” 객체로서의 수동적인 대답을 넘어 주체로서의 비판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 이것이 혁신의 출발점입니다. 피카소가 그랬고, 칸딘스키가 그랬고, 신중현이 그랬습니다. 예술을 통해 혁신을 하고, 혁신을 통해 예술을 했던 그들입니다. 그들을 보며 다시 기업가정신을 생각합니다. ⓒ혁신가이드안병민


*포춘코리아 2019. 12월호 해당칼럼 보기 http://bit.ly/2SAWi2H


*글쓴이 안병민 대표(fb.com/minoppa)는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헬싱키경제대학교 MBA를 마쳤다. (주)대홍기획 마케팅전략연구소, (주)다음커뮤니케이션과 다음다이렉트손해보험(주) 마케팅본부를 거쳐 (주)휴넷의 마케팅이사(CMO)로 '고객행복경영'에 열정을 쏟았다. 지금은 열린비즈랩 대표로 경영혁신•마케팅•리더십에 대한 연구•강의와 자문•집필 활동에 열심이다. 저서로 <마케팅리스타트>, <경영일탈-정답은많다>, <그래서 캐주얼>, 감수서로 <샤오미처럼>이 있다. 다양한 칼럼과 강의를 통해 "경영은 내 일의 목적과 내 삶의 이유를 진정성 있게 실천해 나가는 도전의 과정"이라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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