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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007] 캐주얼경영-넥타이를 풀어라

조선일보 [실전MBA] 연재칼럼

*조선일보에 실린 연재기획 <안병민의 실전MBA> 칼럼입니다.


메이저 여행사로 성장한 '여행박사'
- 팀장급 이상 직원 투표로 뽑고 아예 출퇴근 시간 폐지 추진

항공사 1위 '사우스웨스트'
- 모든 평가 부문서 부동의 1위
유머러스한 기내 방송 등 일을 놀이로 만드는 파격 경영



'운도남' 열풍이란다. '운도남'은 운동화를 신고 출퇴근하는 도시 남자의 줄임말이다. '운도남'뿐만 아니라 '운도녀'까지 가세해 봄을 맞은 거리는 그야말로 운동화 물결이다. 딱딱한 격식을 갖추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편하게 옷을 입는 것이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게 된 지금, 이른바 '캐주얼'이 대세다.


◇목표보다 일하는 과정을 중시하는 캐주얼 코드

'캐주얼' 코드가 나타난 배경은 '피로 사회에 대한 거부감'과 '목표 없는 성공'이다. 베스트셀러 '피로사회'의 저자인 한병철 교수는 작금의 시대를 '성과 사회'이자 '자기 착취 시대'라고 규정했다. 도처에 만연한 '난 할 수 있다'는 과도한 긍정성이 자신도 모르는 새 스스로에 대한 착취를 심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무한 경쟁의 피로 사회 속에서 눈길을 끄는 또 다른 키워드가 '목표 없는 성공'이다. 뚜렷한 목표와 비전을 가지고 10년 후, 20년 후의 성공을 위해 오늘의 시간을 쪼개어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것. 우리에게 익숙한 '성공학'의 뼈대다. 하지만 실제 성공한 많은 사람이 '지금의 이 일을 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제 사람들은 '목표'가 아니라 '과정'에 방점을 찍고, '어디로 갈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갈 것인가'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런 사회상은 이제 '캐주얼'이란 화두로 연결되어 기업 경영 현장을 바꾸어 놓고 있다.


◇죽기 살기로 100억 벌기보다 재밌게 20억 벌겠다는 여행사


정상으로 향하는 길은 오직 하나인 줄 알았던 기업들도 이젠 여러 경로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른바 창의 경영, 펀(Fun) 경영 등 기존 경영 상식을 뛰어넘는 파격적인 실험들이 진행되고 있다. 최근 많은 기업이 '비즈니스 캐주얼'이란 명분으로 직원들 목에서 넥타이를 벗겨 주었다. 광고나 디자인 같은 업종에서나 볼 수 있던 청바지에 운동화 차림도 창의적인 전문가 그룹과 함께 많은 직장인의 새로운 근무 패션으로 자리 잡았다.


단순한 자유 복장을 떠나 '캐주얼' 자체가 문화인 기업도 있다. 바로 여행박사다. 일본 전문 여행사로 출발한 여행박사는 지금은 1500억원대 매출을 올리는 중견 여행사가 됐다. 비결은 일반 회사와 전혀 다른 기업 문화였다. 여행박사는 팀장급 이상 중간 간부를 직원 투표로 뽑는다. 대표이사도 마찬가지다. 95%에 육박하는 지지율로 대표이사 자리를 지키고 있는 신창연 대표. 그는 80% 이상 표를 얻지 못하면 물러나겠다고 한다. 그가 주창하는 경영의 핵심 요소 중 하나가 바로 펀(Fun), 재미다. 신 대표는 대표이사 직무 대행까지 따로 두고 스스로는 '어떻게 하면 직원들이 재미있게 일하도록 만들 수 있을까'에만 골몰한다. 심지어 출퇴근 시간도 조만간 폐지하겠다고 말한다. 대표이사 스스로가 넥타이 매기를 죽기만큼 싫어하니 회사 분위기도 캐주얼하다. 그래도 회사는 잘 돌아간다. 여행박사는 팀별 독립채산제를 통해 직원 모두를 사장으로 만든다. 팀마다 일정 금액을 회사에 내면, 나머지 수익은 모두 팀원들에게 돌아가는 구조다. 성과가 좋으면 자기 몫이 늘어나니 누가 시키지 않아도 다들 열심이다. 이건 '캐주얼 경영' 수준이 아니라 아예 '거꾸로 경영'이다. 죽기 살기로 100억 버느니 재미있게 20억을 벌겠다는 신창연 대표의 말은 '캐주얼 시대'를 살아가는 고객과 함께 호흡하는, '캐주얼 경영'의 표본이다.

◇'일도 즐거워야 한다'는 세계 최고 항공사

외국 기업에서도 이런 사례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사우스웨스트항공이 대표적인 회사다. 1971년에 설립된 저비용 항공사인 이 회사는 항공기 보유 대수나 승객 수 등 여러 부문에서 최고 수준이다. 놀라운 것은 지금껏 단 한 번도 적자를 낸 적이 없다는 것. 그뿐만 아니라 수하물 처리 속도, 정시 발착, 고객 불평 건수 등 거의 모든 항공사 평가 부문에서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게다가 포천지가 선정하는 '미국에서 가장 일하기 좋은 100대 기업'에도 해마다 꼽힌다. 비결이 뭘까? 해답은 바로 재미다.


사우스웨스트의 창업자 허브 켈러허는 '일도 즐거워야 한다'는 모토로 회사를 경영했다. 일을 놀이로 만드는 파격 경영은 사우스웨스트 항공만의 핵심 문화로 자리 잡았다. 세계적 경영 구루 톰 피터스는, 사우스웨스트항공을 '지구 상에서 가장 멋진 항공 쇼' 같은 회사라고 이야기한다. 딱딱한 다른 항공사 직원들과 달리 사우스웨스트의 직원들은 늘 캐주얼하다. 직원들이 편안하니 고객도 즐겁다. 사우스웨스트 항공 특유의 익살스러운 기내 방송은 이제 그다지 놀라운 일도 아니다. '기내에서는 흡연이 금지되어 있지만 꼭 피우고 싶은 승객을 위해서 비행가 바깥쪽 날개 윗자리를 준비해 두었다'는 식이다. 도착지에 착륙해서도 잊으신 물건 없이 잘 챙겨가라는 안내 방송에 제발 아이들과 배우자는 놓고 가지는 말라는 유머가 덧붙는다. 이런 사우스웨스트를 이용한 고객의 경험담은 한결같다. 정말 즐겁고 재미있었다고 입을 모은다. 사우스웨스트 항공은 직원들이 자신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직원들이 일을 일이라 생각하지 않고 재미난 놀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다. 넥타이를 매고 딱딱한 정장 차림으로 일하는 엄격한 회사에서는 결코 허용되지 않는 진취적인 모험 정신이 사우스웨스트의 직원들에게는 충만하다. 그러니 회사 일을 내 일처럼 여기는 태도가 회사 구석구석까지 스며들어 있다는 톰 피터스의 진단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많은 것이 우리 몸을 옥죄고 있는 지금의 초경쟁 사회에서 '캐주얼'이란 화두는 개인에게나 기업에나 창의, 혁신이란 측면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청바지에 운동화, 목 부분이 긴 터틀넥 셔츠 차림의 프레젠테이션으로 늘 세상을 깜작 놀라게 했던 스티브 잡스. 그는 어쩌면 누구보다도 먼저 이런 '캐주얼'이란 경영 화두를 치열하게 안고 살았던 경영자가 아니었을까? ⓒ보통마케터안병민


*글쓴이 안병민 대표(fb.com/minoppa)는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헬싱키경제대학원 MBA를 마쳤다. (주)대홍기획 마케팅전략연구소, (주)다음커뮤니케이션과 다음다이렉트손해보험(주) 마케팅본부를 거쳐 (주)휴넷의 마케팅이사(CMO)로 고객행복 관리에 열정을 쏟았다. 지금은 열린비즈랩 대표로 경영혁신•마케팅•리더십에 대한 연구•강의와 자문•집필 활동에 열심이다. 저서로 <마케팅리스타트>, <경영일탈-정답은많다>, <그래서 캐주얼>, 감수서로 <샤오미처럼>이 있다. 다양한 칼럼과 강의를 통해 "경영은 내 일의 목적과 내 삶의 이유를 진정성 있게 실천해 나가는 도전의 과정"이라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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