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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찰스케치 048] 호랑이 또는 고양이, 그 선택은?

안병민의 [통찰을 스케치하다]

어느 샌가 날이 쌀쌀해졌다. 겨울이다. 해바뀜의 시간. 올 해를 정리해야 할 시간이 코 앞이란 얘기다. 새로운 한해를 준비해야 할 시점이란 얘기다. 그래서 다시 트렌드를 살핀다. 연례행사다.


해마다 트렌드 키워드를 발표하는 김난도 교수팀. 2007년부터 시작이니 벌써 16년째다. 당해 연도의 띠동물로 문장을 만들어 발표한다. 올해도 변함없다. 2022년 호랑이해를 맞아 발표한 트렌드 문구는 ‘Tiger or Cat’이다.


올 한해를 돌아보면 ‘코로나 팬데믹’을 빼고는 어떠한 명제도 존재할 수 없다. 그만큼 절대적인 영향을 우리 사회에 끼쳤다. 새해를 맞으며 가져보는 희망 섞인 기대는 독감처럼 또 하나의 풍토병(endemic)으로 전세계적 전염병(pandemic)으로서의 치명적 전염성이 완화되었으면 하는 것. 그래서 갖게 되는 첫 번째 질문이 이거다. 2022년 소비는 팬데믹 이전으로 복귀할까? 거시적 관점에서는 산업의 재편 방향이 될 것이고, 미시적 관점에서는 사람들의 소비 행동 변화가 될 것이다.


아마도 수혜산업과 피해산업의 명암은 크게 엇갈릴 것이다. 동일 산업 내에서도 승자 독식 경향은 더욱 강해질 것이다. 보복소비는 일부 있겠지만 결코 코로나 이전만큼은 아닐 것이다. 자영업 기반은 위축될 것이다. 


유학이나 이민을 갔다고 가정해보자. 모국에 있을 때와는 모든 게 다르다. 변화에 적응하느라 받게되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이내 괜찮아진다. 코비드 사태도 마찬가지다. 코로나가 빚어낸 새로운 문화에 적응해야 했던 상황. 어느 새 2년을 지내며 이제는 나름의 길을 찾아가고 있다. 코로나가 끝나도 계속 마스크를 쓰고 다니겠냐는 질문에 대한 동의율이 30%에 육박한다. 적응이란, 그만큼 무섭다. 화장을 하느니 마스크를 잠깐 쓸 수도 있는 법. 이미 익숙해져버린 새로운 문화, 한동안 이어질 것이다. 게다가 코로나로 인한 변화가 마냥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편리함이라는 보상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온라인 강의, 재택근무 같은 것들이다. 


백화점에 친구랑 놀러갔다가 한참을 둘러 본 후 근처 카페에 앉아 휴식 중. 그러다 폰으로 쇼핑을 하면 이건 온라인 쇼핑인가? 아니면 오프라인 쇼핑인가? 고객은 더 이상 온오프 구분에 관심이 없다. 코로나의 영향을 대면-비대면으로만 인식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핵심은 ‘트렌드 대응 능력’이다.


2022년의 소비 트렌드?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 같은 트렌드가 계속되지도 않을 것이다. 코로나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위드코로나 시대의 원년이다. 2022년은 그래서 새로운 변화의 첫 시작점이 될 것이다. 그만큼 중요한 한 해, 2022년이다.


손 수술을 받은 환자가 의사에게 묻는다. “앞으로 피아노를 잘 칠 수 있을까요?” 의사가 대답한다. “그럼요.” 하지만 환자는 피아노를 전혀 못 치던 사람이다. “코로나 끝나면 사업이 잘 될까요?”라는 우문에 대한 현답이 될 것 같다. 코로나가 끝난다고 시장이 저절로 생기지는 않는다. 그동안은 사업이 부진해도 코로나 핑계를 댈 수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가 끝나면? 핑계 댈 게 없다. 실력이 드러난다. 이제부턴 진검승부다. 먹느냐, 먹히느냐, 혈투가 벌어질 것이다.


‘Tiger or Cat’이라는 2022년 트렌드 문구는 그래서 함의가 크다. 호랑이로 비상할 것인가, 아니면 고양이로 전략할 것인가, 그 기로에 서 있어서다. 김난도 교수가 말하는 2022년 트렌드 키워드, 하나씩 살펴보자.


1 나노사회 (Transition into a ‘Nano Society’)


나노는 10억분의 1을 가리키는 단어다. 10의 마이너스 9승이니 상상조차 안 되는 작은 단위다. 나노사회는 결국 초개인화된 사회를 의미한다. 공동체적 유대를 유지하지 못하고 개개인으로 쪼개진 사회 말이다. 크게 새로울 건 없다. 이미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던 메가 트렌드다. 세대의 변화와 시장의 변화. 그 안에 나노사회라는 키워드가 있다. 


2018년과 2019년 신조어를 뽑아보니 새로운 게 너무 많다. 유행어의 생성 주기, 인기 주기가 그만큼 짧아졌단 얘기. 문화계도 그렇다. 가수 임영웅의 팬클럽 ‘영웅시대’와 BTS의 팬클럽 ‘아미’는 전혀 다른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 서로에 대한 공감대가 없다. 내 트렌드를 네가 모르는 게 요즘 트렌드다. 그만큼 트렌드가 잘게 쪼개지고 있단 얘기다. 모래조각처럼 흩어진 사회, 그게 나노사회다. 


1인가구 전성시대다. 1인가구가 30-40%에 이르는 지자체도 있다. 하지만 1인가구라고 다 같은 1인가구가 아니다. 대학생도 1인가구, 독신이나 기러기아빠도 1인가구다. 배우자와 사별한 노인도 1인가구다. 이들을 하나의 그룹으로 묶는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4인가구도 소비의 1인화를 겪는다. 남편과 아내가 다른 샴푸를 쓰는 집이 많아졌다. 다들 자기 취향을 고집해서다. 편의점, 배달산업의 발달 또한 1인산업의 발달로 이어진다.


스마트폰은 소통의 단절을 부채질한다. 예전에는 가족들이 거실이라는 한 공간에 모여앉아 영화를 봤다. 지금은 아니다. 같은 영화를 보더라도 각자의 폰으로 각자의 방에서 본다. 함께 영화를 보고 후기를 나누며 느끼던 유대감? 그런 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개인미디어가 발달하니 개인화가 촉진된다. 여기에 코로나까지 더해지니 소통은 더욱 어렵다. 사람들의 기호와 취향이 쪼개지니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비즈니스는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극소단위로 파편화된 사회. 공동체가 개인으로 모래알처럼 흩어지고, 개인은 더 미세한 존재로 분해되며 서로 이름조차 모르는 고립된 섬이 되어 간다.


2. 머니러시 (Incoming! Money Rush)


N잡과 투자를 통해 수입의 파이프라인을 다변화, 극대화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누구나 돈을 향해 달려간다. 사고 싶은 게 많아서다. 남들 다 하는데 나만 안 할 수 없어서다.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는데 월급은 제자리걸음이다. 그러니 돈에 대한 갈증이 크다.


돈을 많이 벌려면? 일을 더 많이 해야 한다. 그래서 여러 가지 일을 한다. 이른바 ‘N잡러’다. 월급에만 기댈 수 없으니 투자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투자에 대한 전 국민적 관심이 폭발했다. 대투자 시대다. 투자 대상의 폭도 넓어졌다. 예전에는 ‘투자’ 하면 은행이나 증권사였다. 지금은 금과 달러, 암호화폐, 음악저작권, 그림, 명품, 신발, NFT 등에 이르기까지, 그 한계가 없다. 


요즘 젊은이들은 돈 쓸 데가 많다. 고가품을 선호한다. 아침 7시에도 명품 한정판을 구매하기 위한 사람들의 줄이 백화점 앞에 늘어선다. 지난 여름, 강남 모 호텔의 샤인머스캣 빙수가 98,000원에 팔렸다. 부가세 10%에 봉사료 10%가 붙으면 빙수 한 그릇에 10만원이 훌쩍 넘어간다. 그걸 사 먹는 사람들이 많다. 사진으로 그 모습을 공유하기 바쁜 젊은이들이다. 하지만 이런 과소비를 하고 나면 일주일은 라면으로 때워야 한다. 하지만 상관 없다. 남들에게 자랑할 수 있는 호텔 빙수 플렉스 사진을 건졌으니. 이런 이들은 골프장에도 많다. 플레이는 뒷전이다.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옷도 세 벌씩 가지고 온다. 갈아 입으며 사진을 찍는다. 고가의 골프복을 렌탈해서 찍은 사진들을 세 번에 나누어 소셜미디어에 올린다. 하루 골프 친 게 아니라 사흘 골프 친 사람 되는 거다. 10만원이 넘는 호텔 빙수를 사먹는 사람과 골프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는 사람은 서로의 SNS를 보며 서로를 동경한다. 남들은 몰라도 스스로는 안다. 이게 내 진짜 모습이 아니란 걸. 만인의, 만인에 대한 선망이 돈을 향한 질주를 빚어낸다.  


수입을 다변화, 극대화하고자 하는 노력. 물질주의화 현상으로 볼 수도 있지만 ‘성장’과 ‘자기실현’ 수단으로 수입 창출에 나선다는 점에서 개인적 기업가정신의 발현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3. 득템력 (Gotcha Power)


옛날엔 무언가를 샀다고 할 때에는 ‘질렀다’, ‘샀다’ 등의 단어를 썼다. 돈을 ‘지불했다’는 의미다. 근데 지금은 ‘득템’이라 표현한다. ‘지불’이 아니라 뭔가를 ‘얻었다’에 방점이 찍히는 거다. 이제는 ‘득템력’을 이야기한다. 득템력은 지불능력만으로는 가질 수 없는 능력이다. 그 외의 것들이 필요하다. 기다림, 운, 진정성 같은 것들이다.


득템력 세 가지 전략 중 첫번째는 기다림이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줄을 서 기다리는 것이다. 매장 오픈 전부터 기다리는 오픈런. 밤샘 줄서기도 마다하지 않는다. 다음은 ‘운’에 의한 쟁취다.  ‘구매자격’을 추첨하는 희소성 높은 구매 아이템에 몰리는 사람들이 이를 방증한다. 마지막으로 진정성이다. 득템의 간절함을 증명하는 것이다. 브랜드에서 내건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한 몸 불사른다. 매장 직원을 내 편으로 만들어 기회를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다.


득템력이 중요해진 이유? 사치의 대중화 때문이다. 누구나 사치하는 요즘이다. 그냥 비싼 거 사는 건 자랑이 안 된다. 남들이 구할 수 없는 걸 구하는 게 역량이다. 높은 가격보다 구하기 어려운 아이템이 자연스레 차별화의 초점이 됐다. 소비자들도 득템의 과정을 즐기며 SNS에 올린다. 한정된 아이템이 투자의 일환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트렌드를 매출극대화의 기회로 삼는, 기업들의 마케팅 전략도 중요한 원인이다. 상품 과잉의 시대, 돈만으로는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생존 투쟁만큼 중요한 게 인정 투쟁이다. 새로운 구별짓기 경쟁이 난무한다.


경제적 지불능력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희소한 상품을 얻을 수 있는 소비자의 능력을 지칭한다. 상품 과잉 시대, 돈만으로는 자신을 표현할 수 없는 현대판 구별짓기 현상이다.


4. 러스틱 라이프 (Escaping the Concrete Jungle - ‘Rustic Life’)


러스틱라이프는 날 것의 자연과 시골 고유의 매력을 즐기면서도 도시생활의 여유와 편안함을 부여하는 시골향(向) 라이프스타일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촌스럽다는 건 더 이상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다. ‘촌’스러움이 '힙'해지고 있다. 시골 역시 시대에 뒤떨어지는 낙후된 공간이 아니다. 일상마저 버거운 도시인에게 시골은 따분함을 넘어서는 여유로움이다. 불편함을 무릅쓰는 날 것의 경험이다. 시골이 매력적인 공간으로 부상하는 이유다. 사람들이 시골로 가는 이유다. 


농막 열풍이란다. 돈이 많아 별장을 가질 수 있는 형편이 아니라면 시골 생활은 꿈이었다. 이제는 가능하다. 도시의 인력(引力)도 떨어지고 있다. 비대면으로도 가능한 다양한 활동 덕분이다. 교육이 그렇고, 쇼핑이 그렇다. 


도시를  ‘떠난’ 사람들은 자연에 취하며 휴식을 즐긴다. 시골에 ‘머물며’ 색다른 일상을 만든다. 보 다 일상화된 러스틱 라이프를 즐기는 사람들은 도촌생활을 병행하기 위해 ‘자리잡기’를 통해 거점을 만든다. 도시에서도 농사를 짓거나 시골에 집을 짓는다. 새로운 삶의 터전에서 자신만의 ‘둥지틀기’도 시도한다. 러스틱 라이프는 과밀한 주거·업무 환경에서 고통 받는 대도시에게나, 고령화와 공동화 현상으로 시름하고 있는 지방자치단체 모두에게 매우 중요한 트렌드다.


‘촌’스러움이 '힙'해지고 있다. ‘러스틱 라이프’란 날 것의 자연과 시골 고유의 매력을 즐기면서도 도시생활에 여유와 편안함을 부여하는 시골향(向) 라이프스타일을 가리킨다.


5 헬시 플레저 (Revelers in Health - ‘Healthy Pleasure’)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젊은 세대가 건강을 챙긴다. 놀라지 마시라. 해외 직구 1위 아이템이 건강식품이다. 하지만 건강을 챙기는 방식이 좀 다르다. 고진감래, 힘들더라도 참아야지, 이런 식이 아니다. 건강과 다이어트를 위한 고통은 사절이다. 건강 관리도 즐겁게 한다. 다이어트도 즐거워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런 트렌드를 ‘헬시 플레저’라고 부른다. 건강한 즐거움이다. 이를 테면 “내 몸에 좋아야 하지만 맛도 있어야 돼.” 같은 거다. 


그러니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건강 관리의 과정이 쉽고 즐거운 방향으로 진화한다.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보양식, 다이어트 아이스크림은 이를 웅변하는 사례다. 맛이 없으면 다이어트 식품도 안 팔리는 세상이다. 재미있는 유튜브 영상을 통한 멘탈관리도 인기다. 


예전에는 나이 쉰은 되어서야 건강에 관심을 가졌다. 지금은 아니다. 젊어서부터 건강을 챙긴다. 요즘은 술 안 먹는 20대, 30대도 많다. 헬스클럽 다녀오느라 수업에 지각하지, 술 먹은 여파로 수업에 지각하는 대학생들은 없다. 이런 현상은 뿔뿔이 흩어진 나노사회 속 “내 건강은 내가 지킨다”는 흐름과 맥을 같이한다. 건강 관리는 각자도생의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요즘 사람들에게 또 다른 자기관리 전략이다. 요컨대, 건강관리는 곧 ‘자기관리의 종착역’인 셈이다. 


시장의 변화는 불문가지다. 건강관리의 초점은 치료에서 예방으로 바뀌는 중이다. 고리타분한 옛날 방식의 건강관리? 이제는 No다. 새롭고 힙하고 트렌디하지 않으면 고객의 선택을 받을 수 없다. 


사람들은 더 이상 건강과 다이어트를 위해 고통을 감수하려고 하지 않는다. 건강(health) 관리도 즐거워야(pleasure) 한다.


6 엑스틴 이즈 백 (Opening the X-Files on the ‘X-teen’ Generation)


엑스세대가 돌아오고 있다. 다들 MZ세대를 이야기하지만 소비의 양적 규모나 질적 규모를 보면 왕좌는 X세대의 것이다. 엑스세대의 귀환이다. 1965-1979년생. 그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젊은 영엑스 세대, 70년대생들 말이다. 이들이 바로 엑스틴(X-teen)이다. 


엑스틴은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10대(teen) 시절을 보냈다. 자유롭고 개인주의적 성향을 갖게 된 배경이다. 나이는 들었지만 10대(teen) 자녀들과 라이프스타일도 공유한다. 그래서 엑스틴이다. 


지금의 MZ보다 더 큰 충격으로 세대 담론의 출발을 알렸던 신세대의 원조. 그들이 엑스틴이다. 이들이 나이가 들어 40대에 접어들면서 가장 큰 소비 집단으로 성장하고 있다. ‘자본주의 키즈’가 ‘자본주의 어른’으로 성장해 이커머스 업계의 큰 손이 된 거다. 탈권위와 탈관념을 외친 세대답게 과거의 40대라면 상상하기 어려웠던, 고정관념을 깨는 소비에도 도전한다. Z세대 자녀와의 케미도 돋보인다. 친구 같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Z세대의 인싸력을 몸소 체득한다. 


반면 조직생활은 녹록치 않다. 회사에서는 고참 과장에서 부장급. 기성세대와 MZ세대 사이에 끼어있는 '낀세대'다. 그럼에도 엑스틴은 우리 사회의 허리다. 조직의 중추다. 이 직급 없이 움직일 수 있는 회사는 없다. 시장 소비의 주도세력이기도 하다. 그러니 시장을 주도하려면? 그동안 MZ세대에 밀려 존재감이 별로 없었던 엑스세대. 이들을 주목해야 한다.


새로운 40대인 X세대는 기성세대보다 풍요한 10대를 보내며 개인주의적 성향을 가지며, 자신의 10대 자녀와 라이프스타일을 공유한다.


7 바른생활 루틴이 (Routinize Yourself)


일상의 자유도가 높아진 상황에서 자기일상을 지키고자 노력하는 요즘 사람들. 이름하여 ‘루틴이’다. 자기주도적으로 생(生)을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 직장인은 하루 일과표를 만들어 스스로 준수하고, 학생들은 서로 모르는 사람끼리 스터디 카톡방을 만들어 실천을 인증한다. 일상에서도 "3분 양치하기" 같은 작은 루틴을 지키며 나만의 성공스토리를 모아간다. 


루틴(routine)은 매일 수행하는 습관이나 절차를 의미한다. 외부적 통제가 사라진 상황에서 루틴을 통해 스스로 자기 일상을 지키고자 노력하는 요즘 사람들이 ‘바른생활 루틴이’다. 


루틴이들은 자진해서 목표를 만들어 자신을 묶는다. 목표를 달성하면 수업료를 환급해주는 교육, 운동을 통해 자신의 몸을 촬영하는 바디프로필 찍기 등이 대표적이다. '습관공동체'를 만들어 타인의 도장을 받기도 한다. 다이어리 기록 등을 통해 매일매일을 되돌아보며 의미를 부여하고 작은 성취를 확인한다. 


루틴이가 늘어나는 이유? 높아진 일상 자유도 때문이다. 근로시간 축소와 코로나 바이러스 영향으로 생활과 업무의 자유도가 높아졌다. 자기관리의 필요성도 따라서 커졌다. 그러니 일상 속 작은 루틴을 만든다. 내 인생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자기다짐적 삶의 태도다. 


문제는 신뢰다. 조직관리이든 학교교육이든 자녀지도이든 사람에 대한 신뢰가 바탕이 될 수 있음을 ‘루틴이 트렌드’는 보여준다. 자기 스스로 자신의 일을 할 수 있도록 응원하고 지원해줄 필요가 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자기향상을 도모하는 존재이며, 나태 속에서 스스로를 일으킬 모멘텀을 구하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 이에 대한 믿음이 필요하다.


스스로 바른생활을 추구하며 루틴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신인류.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힐링을 도모하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며, 미세행복을 추구하기 위함이다.


8. 실재감 테크 (Connecting Together through Extended presence)


가상인간 ‘로지’가 화제다. 벌써 10개의 광고를 찍었단다. 가상인간인 로지는 스캔들의 위험이 없다. 늙지도 않는다. 그러니 많은 기업들이 앞다투어 모델로 섭외한다. 가상인간으로 구성된 아이돌 그룹을 기획하는 회사도 있다. 옛날에도 ‘아담’이라는 사이버 가수가 있었다. 결과는 실패였다. 아담과 로지의 차이? 실재감이다. 옛날과 달리 사람들이 실재로 인식할 만큼의 기술 발전이 이루어졌다는 얘기다. 로지의 성공 요인으로 로지가 과도하게 예쁘지 않음을 꼽는 이들이 많다. 실재감은 단지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수용자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방증이다.


'언택트'가 일상의 당연한 일부로 자리 잡은 시대, 메타버스가 화두다. 디지털로 만들어진 가상과 초월의 세계. 시공간의 물리적 한계를 극복하고 완전한 실재감을 느낄 수 있게 만드는 기술, '실재감테크'(extended presence technology)가 부상하는 이유다. 


실재감테크는 현실과 가상의 연속성(reality-virtuality continuum)을 구현하는 일련의 기술들을 지칭한다. 가상공간을 창조하고, 다양한 감각을 자극하며, 디지털 데이터와 아날로그 방식을 혼합하는 등 인간 생활의 스펙트럼을 확장시키는 기술들이다. 단지 기술적 완성도의 문제만은 아니다. 수용자들이 얼마나 몰입하여 받아들이냐의 문제다. 


실재감은 현대사회의 인류에게 결핍이자 욕망이다. 존재감 결핍의 해소와 존재감 회복의 욕망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라는 과제가 실재감테크의 궁극적인 목적이 되어야 한다. 생활의 모든 영역이 실재를 초월하고 있는 시대, 기술적 역량의 핵심은 누가 더 실재감을 잘 만들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물론 사람에 대한 이해와 함께다.


가상공간을 창조하고, 그 안에서 다양한 감각 자극을 제공하고, 인간의 존재감과 인지능력을 강화시켜, 생활의 스펙트럼을 확장시키는 기술을 가리킨다. 가상/원격과 현실의 경계를 매끄럽게 연결하는 새로운 경험을 제공한다.


9 라이크 커머스 (Actualizing Consumer Power–‘Like Commerce’)


제조자가 생산해 유통업자가 판매하면 소비자가 구매하는, 시장의 오랜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다. 소비자 개인이 독자적으로 상품의 기획과 제작, 판매를 아우르는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고 있다. 소비자가 주도하는 유통과정. 소비자 선호를 중심으로 구성되는 새로운 온라인 리테일의 총체. 라이크 커머스다. 소비자들의 '좋아요'(like)에서 출발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요즘 인플루언서들은 ‘라이크(like)’를 모은다. 그걸 기반으로 물건을 판다. 초기 인플루언서들이 기성제품의 '판매'에만 집중했다면 이제는 기획, 제조, 마케팅, 영업, 물류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의 가치사슬을 포괄한다.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자사몰에서 제품을 판다. 자동차 캐스퍼가 사례다. 고객과 직접 거래하겠다는 생산 제조 기업들의 희망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거다. 수요가 발생하면 그때부터 상품 제작을 하는 온디맨드(on-demand) 방식을 도입한다든지, 특정 제품 카테고리에 집중해 차별화된 버티컬 커머스를 구축한다든지, 제품 개발 단계에서부터 소비자와 협업한다든지, 나름의 방식으로 고객에게 다가간다. 


라이크커머스의 3대 비즈니스 모델로는, ① 개별 크리에이터가 팔로워의 '좋아요'(like)를 기반으로 수요를 확보한 후, 제조전문회사에 ODM을 맡겨 생산하고, 이를 전문 물류 업체를 활용해 유통하는 C2C(consumer to consumer) 모델 ② 제조업체가 직접 소비자 ‘선호(like)’를 예측하기 위해 데이터를 확보하고, 유통 마진을 줄일 수 있는 자사몰을 개설하는 D2C(direct to consumer) 모델 ③ 개별 소비자 ‘수요(like)’를 집결하여, 공동구매 혹은 선주문 방식으로 새로운 상품을 출시하여 생산단가도 낮추고 재고 부담을 더는 H2H(human to human) 모델이 있다.


소비자들의 상품 선택의 핵심이 '나음'에서 '다름'으로, 그리고 '다름'에서 '다움'으로 이행하고 있다. 이제 소비자들은 "예전보다 좀 더 낫거나" "경쟁제품과는 다른" 상품이 아니라, "가장 나다운" 상품을 만났을 때, '좋아요'를 누르고 지갑을 연다. “무엇이 나다운 것인가?” 차세대 유통의 미래는 바로 이 질문에 달려있다.


동료 소비자의 ‘좋아요’에서 출발하는 소비자주도 유통과정을 의미한다. 각종 SNS의 발달과 마이크로 인플루언서의 탄생은 이제 ‘상시’ 쇼핑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10 내러티브 자본 (Tell Me Your Narrative)


서사(narrative)는 힘이 세다. 이야기보다 더 큰 개념이다. 이야기의 이야기가 서사다. 맥락과 전략이 있는 이야기다. 강력한 서사(敍事), 즉 내러티브를 갖추는 순간, 회사의 가치는 달라진다. 기업의 꿈에 투자하는 사람들. 당장은 매출이 작은 회사의 주식도 천정부지로 값이 오르는 이유다. 브랜딩이나 정치의 영역에서도 자기만의 서사를 내놓을 때 대중의 주목을 받는다. 히틀러 같은 극악무도한 독재자나 오바마 전 대통령처럼 존경을 받는 정치 지도자나, 내러티브를 매우 효과적으로 구사한 정치인이다.


이야기가 사건(event) 자체를 전달하는 것에 초점을 둔다면, 내러티브는 발화의 주체가 창의성을 가지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서술하는 것에 방점을 찍는다. 이야기가 표현된 내용 자체라면, 내러티브는 내용을 담는 형식이다. 마블이 구축한 세계관이 대표적인 사례다. 


2022년을 새로운 도약의 원년으로 삼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것이다. "나만의 내러티브는 무엇인가?“ 기업도 마찬가지다. 우리 기업의 내러티브, 이걸로 고객과 소통해야 한다.


강력한 서사(敍事), 즉 내러티브를 갖추는 순간, 당장은 매출이 보잘것없는 회사의 주식도 천정부지로 값이 오를 수 있다. 내러티브는 그만큼 힘이 세다.


2022년이 코 앞이다. 한 해를 돌아본다. 국민 개그프로그램 <개그콘서트>가 막을 내렸다. 트렌드 변화를 감당하지 못해서다. 개콘에서 활약하던 개그맨들은 터전을 옮겼다. 이른바 피보팅이다. 개그맨들의 이런 피보팅이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에서의 더 큰 인기로 이어진다. 우리를 죽이지 못하는 건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든다. 니체의 말이다. 혹독한 펜데믹 세상에서 우리는 2년간 살아남았다. 죽지 않았다. 그러니 우리는 더 강해질 것이다. 2022년 트렌드를 내다보며 다시 희망을 그린다. 고양이로 전락하지 않을 것이다. 호랑이로 포효할 것이다.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프랭클린 루스벨트도 얘기했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라고. 우리의 미래는 우리가 만들어 갈 것이다.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혁신가이드안병민


*글쓴이 안병민 대표(fb.com/minoppa)는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를 졸업하고, 헬싱키경제대학교(HSE) MBA를 마쳤다. 롯데그룹의 대홍기획 마케팅전략연구소, 다음커뮤니케이션과 다음다이렉트손해보험의 마케팅본부를 거쳐 경영직무·리더십 교육회사 휴넷의 마케팅 이사(CMO)로서 ‘고객행복경영’에 열정을 쏟았다. 지금은 나노 융합소재 기술기업 엔트리움의 최고 혁신리더(CIO)로서 고객행복과 직원행복을 위한 일상 혁신에 한창이다. 열린비즈랩 대표로서 경영혁신·마케팅·리더십에 대한 연구·강의와 자문·집필에도 열심이다. 저서로 <마케팅 리스타트>, <경영 일탈>, <그래서 캐주얼>, <숨은 혁신 찾기>, <사장을 위한 노자>, 감수서로 <샤오미처럼>이 있다. <방구석 5분혁신> 채널을 운영하는 유튜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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