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혁신의 본질 : 도대체 누구를 위한 혁신인가?

조선일보 [실전MBA] 연재칼럼

[방구석5분혁신=안병민] 연일 쏟아져 나오는 최고급 사양의 스마트폰들에 고객들의 탄성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지금껏 알고 있던 모든 IT기술의 총화(總和)다. 고객이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여주겠다는 휴대폰 제조업체들의 불타는 의지가 엿보인다. 


그러나 고객 입장에서는 이 상황이 반갑기만 한 건 아니다. 업그레이드된 스펙은 비싼 가격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웬만한 스마트폰 한 대 가격이 100만원을 호가한다. 이동통신사의 약정 할인 할부가 없다면 입맛 따라 휴대폰을 바꾼다는 건 언감생심이다. 


그런데 기능과 스펙의 전쟁터 한구석에 슬며시 틈입한 누군가가 있다. 애플과 삼성으로 대표되는 글로벌 IT 거인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그동안 칼날의 빛을 칼집에 감추고 어둠 속에서 힘을 길러 왔던 중국 기업들이다. 이들은 거대한 내수시장을 발판으로 '도광양회(韜光養晦)', 즉 자신의 재능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인내하면서 기다려 왔다. 그랬던 그들이 꺼내든 무기가 보급형 스마트폰이다. 물론 사양은 삼성과 애플의 그것에 비하면 한참 떨어진다. 그렇다고 불을 보듯 뻔한, 싱거운 싸움이 될 거라 치부할 순 없다. 이른바 '파괴적 혁신'의 냄새가 짙어서다. 


▶ 지속적 혁신과 파괴적 혁신 


혁신에는 두 종류가 있다. '지속적 혁신(Sustaining Innovation)'과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이 그것이다. 하버드대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교수의 구분법으로, 그는 '파괴적 혁신'의 중요성에 주목하며 '파괴적 혁신'의 프로세스를 밝혀냈다. 


'지속적 혁신'은, 기술적으로 성능을 향상시키는 혁신으로 한층 높은 성능을 원하는 시장, 즉 하이엔드 시장을 겨냥한다. 반면 '파괴적 혁신'은 성능은 떨어지지만 가격이 저렴한, 파괴적 기술에 의한 혁신을 가리킨다. 주류(主流) 시장의 하위 시장에 자리 잡은 뒤 진화하거나, 주류 시장과는 다른 가치 기준을 갖는 새로운 시장에 뿌리를 내리는 게 '파괴적 혁신'의 특징이다. 


대표적인 사례는 인터넷 전화다. 인터넷 전화가 처음 시장에 등장했을 때는 음질이 아주 나빴다. 인터넷망을 활용하기에 통화료가 무료라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대화 도중 뚝뚝 끊어지는 음성은 사용자들을 짜증 나게 만들었다. 주류 시장에 자리 잡지 못하던 인터넷 전화는 점차 기술이 발전하면서 그 단점이 조금씩 보완되고 개선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우리 모두가 아는 바다. 인터넷 전화는 기존 유선 전화 시장을 야금야금 잠식했고, 이제 대세는 인터넷 전화다. 


▶ 현실에 안주하면 파괴적 혁신의 제물 된다 


처음 파괴적 기술이 시장에 선을 보이면 주류 시장의 주류 기업들은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다. 어차피 성능이 떨어지거나 가격이 싼 로엔드 시장은 이익이 적다. 파괴적 기술이 나타나서 고객을 끌어가더라도 처음엔 미미한 수준이다. 그러나 그 결말을 예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기존 기업들이 상위 시장을 찾아 끊임없이 '도망'가는 사이 파괴적 기술을 앞세운 신규 기업들이 그 뒤를 쫓으며 서서히 시장을 장악해 나간다. '역량 파괴적 환경 변화(Competence-Destroying Change)'를 감지하지 못하고, '성공의 덫(Success Trap)'에 걸려 헤어나오지 못했던 수많은 초우량 기업이 이렇게 우리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갔다. 


기가 질리게 만드는 수많은 버튼으로 오히려 고객을 불편하게 만드는 TV 리모컨. '과잉 만족 (Over-Satisfied)'의 전형적인 사례다. 오늘날 많은 기업은 더 많이 주는 것이 더 좋은 것이라는 생각의 타성에 빠져 있다. 너나없이 기존 제품에 추가적인 기능을 부여하거나 업그레이드된 사양을 장착한 이유다. 물론 긍정적인 효과도 크다. 제품의 성능이 점차 고도화되면서 고객의 만족도 커졌다. 


그러나 문제는 '고객을 잊어버린 혁신'과 '혁신의 상위 지향성'이다. 더 많은 것을 주기 위한 '지속적 혁신'에만 매달리다 보니 정작 혁신의 결과물을 누려야 할 고객은 뒤로 밀려났다. 고객이 아니라 경쟁사만을 의식한 기능과 사양 경쟁, 그리고 누구를 위한 것인지도 모를, 관성적인 혁신이 진행된다. 혁신의 이유가, 고객이 아니라 혁신 그 자체가 되어버린 셈이다. 


게다가 고객 가치는 상위 방향으로의 혁신에서만 창출되는 게 아니라는 것도 곱씹어야 할 대목이다. 모두가 하늘을 날며 허공에 그림을 그릴 때 탄탄하게 두 발을 땅에 딛고 서서 고객에게 집중하는 브랜드가 다시 관심을 끈다. 더하는 것, 즉 추가의 방향만이 아니라 빼는 것, 제거와 삭제의 마이너스 방향을 통해서도 고객 가치는 생겨난다. 


중요한 건 본질이다. 고객이 원하지도 않는 군더더기가 아니라 본질에 집중하는 기업이, 그래서 차별화의 날개를 단다. 


평상시나 비상시를 막론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성과를 내야 하는 비상 경영의 시대다. 관건은 위기의식과 도전정신에 기반한 '상시 창조적 혁신', 그중에서도 '파괴적 혁신'이다. 넘쳐나는 가치들을 관리 가능한 수준으로 낮추고 이를 창조적인 방식으로 새롭게 조합하는 것! 


"만족시키려 하지 마라, 놀라게 해라!(Don't aim to satisfy! Aim to surprise!)" '지속적 혁신'이 아니라 '파괴적 혁신'에 방점을 찍는 혁신의 아이콘 스티브 잡스의 말이다. 


▶ 거북이라고 무시해선 안 된다 


어느 날 갑자기 내 삶의 터전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리는 '파괴적 혁신'에 속수무책으로 당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지속적 혁신에 의한 고객의 '과잉 만족'이 없는지 살펴야 한다. 고객 가치 창출이란 명분 하에 피땀 흘려 이루어 놓은 많은 것이 정작 고객들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부른 배를 두드리며 만족해 있는 고객들에겐 세상 그 어떤 산해진미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둘째, 로엔드(low end·저가품) 시장을 겨냥한 파괴적 기술의 출현에 늘 안테나를 세우고 있어야 한다. 주류 시장에서 잘나가고 있다는 안도감과 자만심은 금물이다. '파괴적 혁신'은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는 여리디 여린 뿌리를 시장에 내리고는 이내 진화를 시작한다. 


상위 시장으로의 '지속적 혁신'을 통해 기존 주류 기업들은 스스로를 토끼라 착각하지만 '파괴적 혁신'은 지치지 않는 거북이처럼 토끼의 뒤를 맹렬히 좇는다. 


마지막으로 우리 기업의 자원 배분 프로세스를 항상 점검해야 한다. 기업 전체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기업은 그 성과가 불명확해 보이는 파괴적 기술보다는 좀 더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해주는 '지속적 혁신' 쪽에 더 많은 자원을 배분한다. 물론 합리적인 판단이다. 


하지만 파괴적 기술을 아예 도외시해서는 안 된다. 지금까지의 우리의 성공방식을 무력화시키는 '역량 파괴적 환경 변화(Competence-Destroying Change)'는 없는지 정신 바짝 차리고 살펴야 한다. 게임의 룰이 바뀌었다면 기존의 성공 방정식은 무용지물이다. ⓒ혁신가이드안병민


*글쓴이 안병민 대표는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를 졸업하고, 헬싱키경제대학교(HSE) MBA를 마쳤다. 롯데그룹의 대홍기획 마케팅전략연구소, 다음커뮤니케이션과 다음다이렉트손해보험의 마케팅본부를 거쳐 경영직무·리더십 교육회사 휴넷의 마케팅 이사(CMO)로서 ‘고객행복경영’에 열정을 쏟았다. 지금은 [열린비즈랩] 대표이자 [방구석5분혁신](bit.ly/5booninno)의 혁신크리에이터로서 경영혁신·마케팅·리더십에 대한 연구·강의와 자문·집필에 열심이다. 저서로 <마케팅 리스타트>, <경영 일탈>, <그래서 캐주얼>, <숨은 혁신 찾기>, <사장을 위한 노자>, 감수서로 <샤오미처럼>, <주소가 바꿀 미래사회와 산업>이 있다. 다양한 칼럼과 강의를 통해 "경영은 내 일의 목적과 내 삶의 이유를 실재화하는 혁신의 과정"이라 역설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EBS 내:일을 여는 인문학(안병민 대표 편) 다시보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