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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5분혁신=안병민] ‘오징어게임’이 한국 드라마 최초로 전 세계 넷플릭스 인기 순위 1위에 올랐다. 에미상도 석권했다. “이렇게 잘 될 줄 알았으면 예전 ‘신과 함께‘ 영화 만들 때 이정재 배우에게 좀 더 잘해 줄 걸.” 하며 너스레를 떠는 사람, 원동연 리얼라이즈픽쳐스 대표다. 원동연 대표는 '신과 함께', '광해, 왕이 된 남자', '마린보이', '미녀는 괴로워' 등을 제작했다. 천만 관객의 영화 제작자로서 그가 이야기하는 K-콘텐츠의 경쟁력은 무엇일까?
한국 콘텐츠의 밸류는 ‘오징어게임’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말 그대로 게임 체인저. 새로운 변곡점과 모멘텀을 만들어 기존의 흐름을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돌리는 요소, 그게 바로 ‘오징어게임’인 거다. 사실 게임 체인저는 그리 새롭지 않다. 우리에게는 싸이가 있었고, BTS가 있으며, 영화 ‘기생충’이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게임 체인저로 등극한 게 ‘오징어게임’이다.
‘신과 함께’도 넷플릭스에서 드라마로 제작된다는 소식. 만약 ‘오징어게임’이 없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란다. 이유는 간단하다. 제작비 때문이다. ‘신과 함께’의 제작비는 회당 50억원이 넘는다. 현재 대한민국 공중파나 케이블에서 방송하는 드라마의 제작비가 10억 내외다. 그게 최대치다. 광고가 완판이 돼도 매출은 5억에서 7억 사이. 거기에 해외 판매 등 부가수입을 더한다 해도 최대치가 10억이다. 그런 상황에서 제작비를 10억 이상 들인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얘기다.
OTT(Over The Top)는 인터넷으로 미디어 콘텐츠를 제공하는 서비스를 가리키는 말이다. 넷플릭스, 유튜브, 디즈니플러스 등이 대표적이다. OTT 플랫폼이 세를 불리면서 콘텐츠 제작비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수리남’의 제작비가 회당 50억원 대다. ‘오징어게임’ 이후 한국 콘텐츠의 제작비도 오름세다. 이런 큰 규모의 드라마를 만들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준 게 ‘오징어게임’인 거다.
넷플릭스 측에서도 애초 큰 기대는 없었단다. 구색 맞추기용 콘텐츠로 선택한 게 대박이 난 거다. 넷플릭스 1등이란 건 클릭 수를 의미하지 않는다. 유저들의 총 시청시간이 지표다. 요컨대, 넷플릭스 구독자들이 가장 많이 시청한 콘텐츠가 ‘오징어게임’인 거다.
많은 사람들이 얘기한다. “소 뒷걸음질하다가 쥐 잡은 거 아니야?” “일회성이겠지.” “어쩌다 벌어진 해프닝일 거야.” 천만의 말씀이다. 한국 콘텐츠를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예전과 달라졌다. 넷플릭스 외에는 큰 관심을 안 보이던 글로벌 OTT들, 디즈니 플러스, 아마존 프라임, 애플 티비 등도 앞다투어 한국 콘텐츠를 만들겠다는 결정을 내리는 요즘이다. 한국 콘텐츠의 위상이 그만큼 올라갔다. ‘오징어게임’ 덕분이다. 한국 콘텐츠의 매력을 사해만방에 알린 ‘오징어게임’은 그 이유만으로도 칭찬받아 마땅한 작품이다.
‘수리남’이 넷플릭스 오픈과 동시에 3위까지 올라갔다. 그러면 우리는 되게 실망한다. 요즘은 그렇다. 전 세계 3위만 해도 어마어마한 건데 ‘왜 1등을 못 했지?’ 하는 실망이다. 1등을 해도 ‘몇 주간 1등한 거지?’ 이걸 따진다. 기준이 이만큼이나 높아진 거다. 하늘 끝까지 닿을 기세다.
한국 콘텐츠가 세계에서 1등을 한다고? 1990년대 초만 해도 말도 안 되는, 그래, 꿈 같은 얘기였다. 예전엔 ‘영화를 한다’ 하면 배 곯기 십상이었다. ‘영화가 운명’이거나 ‘영화와 결혼’하지 않으면 하기 힘든 일이었다. 요즘은 다르다. 영화를 직업으로 선택한 사람들이 늘고 있다. 직업인으로서의 영화인. 요컨대, 비즈니스의 시선으로 영화를 바라본다는 얘기다. 물론 모두가 그렇지는 않을 거다. 그럼에도 영화판이라는 곳이 예전엔 문화 예술의 무대였다면 지금은 비즈니스의 중심으로 편입되고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런 상황에서 ‘오징어게임’이 빚어낸 성과는 한국 콘텐츠가 미래의 먹거리산업으로 새롭게 포지셔닝 할 수 있는 디딤돌인 셈이다.
‘오징어게임’의 인기가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건 아니다. ‘킹덤’, ‘사랑의 불시착’, ‘이태원 클라스’, ‘디피’ 등 한국의 다양한 콘텐츠들이 넷플릭스에서 높은 순위를 차지했다. ‘오징어게임’ 이후에도 ‘지옥’, ‘지금 우리 학교는’ 등의 콘텐츠들이 계속해서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한국 콘텐츠의 인기가 일회성이 아님을 보여주는 반증이다. 한국 콘텐츠의 저력을 웅변하는 증거다. 그렇다면 여기서 주목할 대목이 있다. 한국 콘텐츠가 경쟁력을 갖는 배경과 이유 말이다.
‘디피’만 해도 개봉 당시 우려 섞인 시선이 많았단다. 남북한이 대치하고 있는 건 우리 한국만의 상황인 데다 징병제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 역시 많지 않아서였다. 그러니 ‘디피’ 같은 콘텐츠에 글로벌 구독자들이 관심을 보일지 자신이 없었던 거다. 그러나 웬걸, ‘디피’마저 인기를 얻는 걸 보며 소재나 표현의 제한은 글로벌 OTT 구독자들에게 중요한 문제가 아님을 알게 된 거다.
게다가 지금 한국 콘텐츠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글로벌 유저들이 10대, 20대다. 자막에 대한 거부감이 없는 이 세대가 한국 콘텐츠에 익숙해지면, 향후 한국 콘텐츠의 미래는 더욱 밝을 거란 전망이다.
밝음이 있으면 어둠도 있다. 대한민국은 연간 2억 2천만 명이 극장을 찾던 나라였다. 해마다 전체 인구가 대략 4.5회 정도의 영화 관람을 한다는 계산이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이 수치가 급전직하했다. 2020년 전체 극장 관객 수는 5,952만명이었다. 전년 대비 73.3% 줄어든 수치다. 2억명 규모였던 한국 영화 시장이 5천만 명 수준으로 쪼그라든 거다.
해외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냈던 첫 번째 영화가 있다. ‘부산행’이다. 부산행이 2016년도에 아시아 지역 대부분을 석권했다. 2017년도에는 ‘신과 함께-죄와 벌’, 2018년도에는 ‘신과 함께-인과 연’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2019년도에는 ‘극한직업’이 있었다. 이렇게 탄탄대로를 달리던 한국 영화계가 코로나를 맞으면서 쪼그라든 거다.
아쉬운 대목은 또 있다. 고 김기덕 감독이나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특유의 독창성을 기반으로 해외 유수의 영화제에서 많은 상을 받았다. 흥행으로 연결되진 못했다. 예술성과 작품성은 인정받았지만 대중성으로 연결되진 못한 거다. 하지만 ‘기생충’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 하지만 가는 날이 장날이었다. 세계적인 흥행을 눈 앞에 두고 코로나가 터진 거다. 두고 두고 땅을 칠 대목이다.
이런 암울한 시기에 새로운 희망이 되어준 게 글로벌 OTT 플랫폼이다. 한국 콘텐츠에 날개를 달아주어서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참신한 콘텐츠를 찾던 OTT와 새로운 돌파구를 찾던 한국 콘텐츠. 서로의 눈이 맞았던 거다. 물론 그것만으로 한국 콘텐츠의 부상을 설명할 순 없다. 한국 콘텐츠, 그 인기의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 한국 콘텐츠의 부상 이유 1-유통망의 혁명
한국 콘텐츠의 성공 이유? 첫 번째로 유통망의 혁명을 꼽을 수 있다. 예전의 영화 유통 구조에서는 한국 영화가 세계에서 1등을 한다는 건 언감생심이었다. 한국 영화의 평균 제작비는 100억 정도다.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인 북미에서 영화를 개봉하려면 블록버스터 급의 경우 배급 비용이 2억 불 수준이다. 미들 급이면 1억 불 정도 된다. 지금 환율로 따지면 적어도 1,400억 원을 들여야 영화 배급을 할 수 있단 얘기다. 그런데 100억 들여 만든 한국 영화를 어떤 유통업자가 1,400억을 들여 배급을 할 건가? 미국 유력 배급업자 입장에서 한국 영화에 배급 비용으로 1천억 이상을 쓴다? 말이 안 되는 거다. 그동안 한국 영화가 소규모로 배급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하지만 OTT는 다르다. OTT 플랫폼과의 계약은 심플하다. 제작비의 10-15%를 제작 수수료로 받는 구조다. 나머지는 OTT가 알아서 한다. ‘오징어게임’의 경우, 회당 제작비가 23억 수준이다. 전체 제작비가 200억 정도 된다. 200억에 콘텐츠를 납품하고 20~30억 정도의 수수료를 받는 거다. 제작사 입장에서는 더 들어갈 비용이 없다. OTT는 해당 콘텐츠를 구매한 뒤 자기네 플랫폼을 통해 유통한다. 소정의 구독료를 지불한 고객은 플랫폼에 올라온 콘텐츠라면 무엇이든 무제한 시청할 수 있다. 이런 열린 구조의 플랫폼 형식으로 인해 글로벌에서도 한국 콘텐츠가 소비되기 시작한 거다.
만약 우리가 자체적으로 영화를 배급 유통시켰다? ‘오징어게임’ 수준의 성과를 낸다는 건 하늘의 별 따기다. 우리가 ‘프리미어리그’를 만들 수는 없다. 우리가 ‘메이저리그’를 만들 수는 없다. 그 리그에 우리 한국 선수들이 참가하는 거다. 그럼으로써 한국의 축구와 야구 수준을 만천하에 알리는 거다. 만약 프리미어리그나 메이저리그가 없었다면? 박찬호, 류현진, 손흥민, 이강인 등의 선수는 나올 수가 없는 거다. 콘텐츠도 마찬가지다. 콘텐츠의 유통 혁명. 한국 콘텐츠의 위상이 올라간 첫 번째 이유다.
이런 오픈형 플랫폼이 생기기 전까지는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이었다. 물론 콘텐츠 납품 형식이다보니 지식재산권 문제 등에 있어서는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로벌화되어 있는 로컬 플랫폼이 없는 상황에서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플랫폼이 있다는 건 우리에겐 기회다. 더 고무적인 건 넷플릭스뿐만 아니라 아마존, 애플, 디즈니 같은 또 다른 OTT 플랫폼들이 한국 콘텐츠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거다. 한국 콘텐츠의 미래가 밝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 한국 콘텐츠의 부상 이유 2-탁월한 가성비
한국 콘텐츠 부상의 두 번째 요소는 가성비다. 영화는 일반적인 상품과 좀 다르다. 원가가 반영되지 않는다. 원가가 많이 들면 가격도 올라간다. 당연한 얘기다. 하지만 영화는 원가에 상관없이 가격이 같다. 250억원을 들여 만든 ‘신과 함께’나 평균 제작비 70억원을 들여 만든 영화나 관람료가 동일하다. 자본주의 논리로 따지자면 ‘신과 함께’의 관람료는 3만 원쯤 받아야 되는 거 아닌가?
하지만 이게 현실이다. 서비스 형태의 표준성이나 영화 산업의 수익 분배 구조 등 여러가지 이유 때문에 빚어진 현실이다. 이런 이유로 ‘신과 함께’의 수익률은 높지 않다. 다른 천만 영화 대비 원가가 많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천만 영화 중에서 가장 수익률이 높은 영화? ‘7번방의 선물’이다. 제작비가 적게 들어가서다. 대한민국 영화 중에서 수익률이 높은 영화? ‘워낭소리’ 같은 영화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같은 영화도 있다. 1억 들여 만든 영화가 500만 관객을 불러 들였으니 극강의 가성비다.
원가가 얼마가 들어가든 관람료가 같으니 제작비가 많이 들어가는 대작 영화들은 여러모로 부담이 크다. 흥행에 실패하면 뒷감당이 힘들다. 올해만 해도 대작 영화 ‘외계+인’이나 ‘비상선언’이 들인 돈에 비해 흥행은 지지부진했다. 탑 클래스 배우들이 총출동했는데도 말이다. 이런 사례들이 쌓이면 투자가 위축된다. 산업이 위축된다.
방송국들도 어렵긴 매 한가지다. 기업들의 광고비 총량은 크게 늘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새로운 콘텐츠 플랫폼이 자꾸 생겨난다. 기존 방송사들의 광고 매출이 줄어드는 이유다. 기존의 광고 모델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반응이 늘어난다. 광고 효과를 모르겠다는 거다. TV프로그램의 시청률은 나오지만, 앞뒤에 붙어 나오는 광고 시청에 대한 데이터는 없어서다. 신규 플랫폼들은 다르다. 소셜미디어만 해도 그렇다. 나름의 알고리즘을 통해서 소구하고 싶은 고객층에게 정확하게 광고가 도달된다. 실제 사용자 수도 더 많다. 그러니 기업의 광고비가 새로운 플랫폼으로 몰리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한국 콘텐츠를 떠받치던 방송국 등 기존 플랫폼의 영향력이 약화되는 건 그래서다. 이런 상황에서 글로벌 OTT 플랫폼이 없었다면? 한국 콘텐츠 산업의 위기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올 한해 동안 넷플릭스가 한국 콘텐츠에 투자한 돈의 규모? 7천억에서 8천억원 수준이다. 영화뿐만 아니다. 드라마에 예능까지, 전방위적이다. 그렇다면 넷플릭스가 한국 콘텐츠에 이렇게 공을 들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을 위해서? 천만의 말씀이다. 프리미어리그의 토트넘이 한국 축구의 위상을 높여주기 위해 손흥민을 스카우트한 게 아니다. 실적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돈이 되기 때문이다. 넷플릭스도 마찬가지다. 한국 콘텐츠가 돈이 되니 거기에 투자하는 거다.
‘오징어게임’으로 넷플릭스가 엄청나게 많은 돈을 벌었다. 가성비가 높아서다. 미국 드라마의 회당 제작비가 대략 150억원 내외다. 한국 드라마는 30억원 수준이다. 1/5이다. 제작원가에 상관없이 구독자가 지불하는 월정 구독료는 다르지 않다. 한국 콘텐츠의 가성비가 무쟈게 높다는 얘기다. 그래서 글로벌 OTT들이 한국 콘텐츠를 받는 거다. 시청자 반응이 좋은데다 싸기까지 하니 ‘꿩 먹고 알 먹고’다.
절대금액만 놓고 보면 한국 제작비도 그리 싼 건 아니다. 중요한 건 미국에 비해 가성비가 좋다는 거다. 지금 한국 콘텐츠의 제작비는 미국 콘텐츠의 20~30% 수준이다. 근데 요즘 같은 성과가 계속 나주면 제작비는 더 올라갈 수 있다. 50%까지는 아무 문제 없다. 70%까지도 용인될 수 있는 분위기다.
물론 아직은 아니다. 퍼포먼스를 좀 더 내야 한다. 실적만 받쳐준다면 당연한 일이다. 손흥민이나 류현진이 한국인이라고 세계 무대에서 디스카운트 당할 일은 없다. 그래서도 안 된다. 한국 콘텐츠도 똑같다. 실적만 나오면야 하향 평가 받을 이유가 없는 거다. 한국 콘텐츠라고 비싼 값을 지불하지 않는다? 돈 들인 값을 하는데 왜? 그런 거 전혀 없다. 정확하게 실적주의다.
▶ 한국 콘텐츠의 부상 이유 3-현실 문제를 반영한 사회성 짙은 스토리
한국 콘텐츠의 또 다른 경쟁력은 내용이다. ‘기생충’도 그렇고 ‘오징어게임’도 그렇고 현실 사회의 문제들을 과감하게 다룬다. 에둘러 피해가지 않는다. 미국만 해도 가족간의 사랑, 권선징악, 팍스 아메리카나 등 소재나 주제들이 진부하다. 하지만 한국 콘텐츠는 빈부 격차나 양극화 문제 등 민감한 사회적 문제에 과감하게 렌즈를 들이댄다. 이런 문제가 개인의 잘못인 건지, 사회의 책임인 건지 의문을 제기한다. ‘기생충’이 그렇고, ‘디피’가 그렇고, ‘오징어게임’이 그렇다.
솔직히 말해, 한국에서도 쉽지 않은 주제다. 황동혁 감독이 무려 10년간 ‘오징어게임’ 시나리오를 드라마로 플어내지 못했던 이유다. 자기 목숨을 담보로 456명이 게임에 참가해서 우승자 한 명이 456억원을 가져간다? 이런 반사회적인 스토리에 어떤 투자자가 지갑을 열겠는가?
어떤 국회의원이 국정감사에서 KBS 사장을 불러다 야단을 쳤단다. KBS는 ‘오징어게임’ 같은 콘텐츠, 왜 못 만드냐고. 대한민국의 공영방송이 그런 콘텐츠를 어떻게 만들까? 그런 얘기를 무슨 수로 만들까? 하지만 넷플릭스는 만든다. 구독자 층이 다양해서다. 콘텐츠에서도 다양한 구색이 필요해서다. 게다가 미국 콘텐츠만큼 제작비가 많이 들어가지도 않는다. 그래서 투자한다. 그랬다가 빵 터진 거다.
물론 콘텐츠도 중요하다. 하지만 수많은 콘텐츠가 범람하는 시대, 큐레이션이 중요해졌다. 제 아무리 훌륭한 콘텐츠라 하더라도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라서다. 큐레이터로서의 넷플릭스의 혜안 역시 높이 사야 하는 이유다.
90년대만 해도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말을 했다. 틀린 얘기다. 당시 대한민국의 위상은 글로벌 스탠다드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지금은 다르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전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을 갖고 있는 나라다. 콘텐츠 수출은 7위권이다. 콘텐츠 업계에 들어오는 인재들의 수준도 실력이나 열정 면에서 과거와는 비교를 불허한다. ‘우리가 왜 1등을 못 해?’ ‘우리가 왜 세계 탑티어가 못 돼?’ 자신감이 넘쳐난다. 콘텐츠 산업의 부흥기인 셈이다.
그럼에도 투자자 입장에서 콘텐츠 분야를 불안하게 바라보는 요소가 있다. 매출과 수익의 불안정성 때문이다. 안정적인 우상향 그래프가 그려져야 투자가 쉬울 텐데, 그러지 못해서다. 가능한 한 최대 한도의 예측가능성 확보. 제대로 된 산업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콘텐츠 분야가 풀어야 할 숙제다.
▶ 한국 콘텐츠의 부상 이유 4-VFX 기술의 발전
세계적인 콘텐츠 유통망의 변화, 한국 콘텐츠의 가성비, 현실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는 스토리텔링에 이은 한국 콘텐츠가 가진 경쟁력의 네 번째 요소는 비약적인 기술의 발전이다. VFX(Visual Effect), 즉 시각적인 특수효과를 만들어내는 기술력 말이다. ‘신과 함께’의 영화 판권이 팔렸던 게 2011년도다. 그때만 해도 저승을 구현할 수 있는 방법이나 기술력이 없었다. 헐리웃 특수효과 회사에 문의했더니 견적가가 200억원이었단다. 당시 한국 영화 평균 제작비가 40억 수준이었으니 꿈도 못 꿀 금액이었다. 그러니 저승을 표현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지금은 어떨까? 영화 ‘한산’을 보셨는지? 그 어마어마한 해양 전투 장면들 중 바다에서 찍은 장면은 단 하나도 없다. 모두가 특수효과다. 영화 속에서의 스포츠 장면? 공 하나하나 다 그려주는 거다. 현재의 기술력으로는 우리가 상상하는 어떤 것이든 모두 다 구현할 수 있다.
구현만 가능한 게 아니다. 가성비 역시 탁월하다. 물론 퀄리티는 미국만큼 안 된다. 하지만 비용 대비 결과물로서는 무척이나 훌륭하다. 한국의 이런 비약적인 기술 발전이 한국 콘텐츠의 성장을 견인했다. 창작자들이 자기의 상상을 마음대로 펼칠 수 있었던 배경이다. 창작자들에겐 축복이었다.
▶ 한국 콘텐츠의 부상 이유 5-건강한 콘텐츠 제작 생태계
한국 콘텐츠의 인기를 설명하는 마지막 요소는 에코 시스템이다. 콘텐츠 제작 생태계 얘기다. 홍콩 영화가 아시아를 지배하던 시절이 있었다. 장국영, 주윤발, 양조위 등 수많은 홍콩배우가 아시아 전체의 스타로 군림하던 시절이었다. 지금의 홍콩영화는? 몰락했다. 정치적인 이유를 포함한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그 중 빼놓을 수 없는 하나가 자기복제다.
전성기 시절의 홍콩영화는 오리지널 비율이 높았다. 오리지널 비율이 높다는 건 소설 등의 원작 없이 작가들이 쓴 시나리오로 만든 작품이 많다는 얘기다. 그런데 어느 순간, 새로운 스토리가 더 이상 나오지 않는 거다. 그러니 했던 얘기들을 또 하게 된다. 자기복제다. 그렇다면 한국은? 한국은 웹툰이라는 어마어마한 원천 소스 플랫폼을 갖고 있다. 대한민국의 웹툰 수준은 가히 세계적이다.
과거 한국의 출판 만화는 완전히 몰락했다. 일본 문화 개방의 타격이 컸다. 불법 복제마저 횡행했다. 출판된 만화를 스캔해서 인터넷에 뿌리는 거다. 폐허가 된 출판만화 시장에서 새롭게 싹을 틔운 게 웹툰이다. 혁신이었다.
인기를 구가하던 전통의 일본 만화는 그 위세가 위축되고 있다. 미국도 마블이나 DC코믹스 등 오랜 역사를 가진 레거시 출판사가 있지만 웹 기반 서비스에 대한 적응이 아직 미흡하다. IT강국 한국은 출판만화의 몰락을 거름 삼아 새로운 혁신을 감행했다. 웹과 모바일로 보는 만화, 웹툰이었다.
한국 영화나 드라마가 최근 잘 나가는 이유? 이미 검증받은 웹툰이나 웹소설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서다. 예전처럼 흥행 여부를 하늘의 뜻에 맡기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예전에는 영화를 만들어 개봉해야만 흥행 여부를 알 수 있었다. 지금은 웹툰이라는 예선전을 거친 작품들이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진다. ‘신과 함께’라는 영화가 세상에 나올 수 있었던 것도 네이버 웹툰에서 역대 2위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웹툰이 좋은 이유는 또 있다. 어느 회차, 어느 대목에서 독자들의 반응이 좋았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는 거다. 독자 반응에 대한 분석이 선행되니 영상으로 제작할 때 강점은 강화하고 약점은 보완할 수 있다. 맨땅에 헤딩하듯 열정 하나 갖고 보물을 찾아 나서던 게 옛날 방식이라면, 지금은 네비게이션까지는 아니라도 꽤나 쓸만한 지도와 나침반을 가지고 길을 나서는 셈이다.
특히 웹툰을 볼 때는 로그인 기록이 남는다. 독자들의 성별, 연령대 등 다양한 분석이 가능하다. 영상으로 만들었을 때의 시청자 층에 대한 밑그림이 그려진다. 흥행 실패에 대한 위험이 상당 부분 해소되는 거다.
▶ 한국 콘텐츠 업계가 풀어야 할 남은 숙제들
물론 아직 풀어야 할 숙제도 많다. 지식재산권 문제도 그 중 하나다. ‘오징어게임’만 해도 지식재산권이 넷플릭스에 있으니 다른 감독과 다른 배우들로 속편을 만들어도 법적인 문제는 전혀 없다. 물론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상황에서 넷플릭스가 굳이 그런 무리수를 둘 이유는 없다.
지식재산권과 관련한 OTT의 논리는 간명하다. 자본에 대한 리스크를 OTT가 100% 지니 지식재산권도 당연히 100% 가져야 한다는 논리다. 아니면 직접 투자를 하라는 거다. 하지만 OTT 업계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양질의 콘텐츠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최근 미국의 메이저 프로덕션들이 지식재산권에 대한 권리 요구를 보다 강하게 하게 된 건 그래서다. 새로운 표준이 만들어지면 한국 제작사 입장에서도 좋은 일이다.
말미에 덧붙인 원대표의 얘기. 영화 쪽 사람들을 너무 예술가로만 보지 말아 달라는 부탁이었다. 영화나 드라마 분야도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매김하려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보다 안정적인 수익 창출을 위해 비즈니스 관점으로 현장을 바라보고 있으며, 제작 현장도 예전에 비해 시스템화 되어가고 있다는 거다. 보다 많은 자본이 들어와야 산업이 발전하고 성장한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영화 드라마 분야 역시 나름의 혁신 노력에 한창이라는 예기다.
그런 측면에서 중요한 게 ‘프랜차이즈’ 개념이다. 영화, 만화, 게임 등 여러 매체로 이어지는 시리즈물을 프랜차이즈라 부른다. 지금 헐리웃을 먹여 살리는 건 프랜차이즈다. ‘어벤져스’가 됐건, ‘스파이더맨’이 됐건, ‘배트맨’이 됐건, 하나가 히트하면 시리즈가 연이어 나온다. 개별 콘텐츠는 서로를 지지하고 지탱하며 새로운 우산 브랜드를 구축한다. 한국에도 천만 영화가 20개가 넘었다. 하지만 프랜차이즈는 오직 ‘신과 함께’ 밖에 없다.
천만 영화를 만든다는 건 엄청나게 어렵고 힘든 일이다. 하지만 늘 일회성, 단발성 이벤트로 끝난다. 콘텐츠 산업의 시스템화에 커다란 걸림돌이다. 프랜차이즈 콘텐츠가 안정적인 캐시카우로 작동할 때, 투자자들도 기꺼이 투자할 수 있다.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얼만큼 덜 위험하냐 하는 것도 중요하다. 콘텐츠 분야의 산업화를 위해서는 반드시 극복해야 할 이슈다.
콘텐츠가 경쟁력인 세상이다. 한국 콘텐츠의 부상이 대한민국의 경쟁력으로 이어진다. 콘텐츠 분야에서도 이제 한국은 선진국이다.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 그만큼 우리의 문화예술에 대한 애정 어린 관심이 필요한 때다. 오늘도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콘텐츠 분야의 모든 이들을 응원한다. 격하게. ⓒ혁신가이드안병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