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5분혁신.심리]
[방구석5분혁신=안병민] 행복심리학도 아니고 범죄심리학도 아니다. 인지심리학이다. 사회심리학, 문화심리학, 상담심리학 같은 학문 분야는 이름에서 바로 감이 온다. 그런데 인지심리학이라니. 인지심리학은 심리학의 이공계라 불린다. 학문의 연원부터가 명확한 별종 심리학이다. 인지심리학자 김경일 교수는 인지심리학에 대한 소개로 강의를 열었다.
1956년 8월 2일 미국 다트머스 대학, 당시 관점으로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모였다. 예컨대, 인간처럼 생각을 하는 기계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 같은 거다. 당시만 해도 정신 나갔다는 소리를 듣던 이 사람들이 만든 개념이 ‘아티피셜 인텔리전스’, 즉 인공지능(AI)이다. 어떻게 보면 인공지능, 인지심리학, 컴퓨터 사이언스라는 학문은 같은 날 시작된 셈이다.
*인지심리학은 넓은 의미로 정의하자면 ‘인간의 마음이 어떻게 작용하는가’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의는 너무 포괄적이며, 좁은 의미의 인지 심리학은 인간의 마음이 어떻게 환경과 자신에 대한 지식을 갖게 되는가, 그러한 지식을 어떻게 활용하여 각종 생활 장면에서의 과제들을 수행하는가 하는 문제를 다루는 심리학의 한 분야이다. 인간이 지식을 생성하고 활용하는 인지 과정은 두뇌의 물리적 특성에 의해 가능하며, 따라서 인지를 연구하는 인지 심리학은 자연히 물리학이나 생물학, 생리학에서와 같이 실험 및 가설 검증과 같은 과학적 방법을 사용해 연구하는 과학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인지 심리학 [cognitive psychology] (심리학용어사전, 2014. 4., 한국심리학회)
최근 부상하고 있는 뇌과학이나 인공지능과 관련하여 비유하자면 디바이스를 만드는 건 아니지만 설계도를 만드는 게 인지심리학의 역할이다. 인간 생각의 작동 방식을 그려내는 거다.
“상수와 변수를 헛갈리면 안 되는데요. 지금껏 심리학에서는 인간의 상수 두 개를 변수로 잘못 알았습니다. 스무 살이 넘은 성인이라면 이건 변수가 아니라 상수입니다. 그게 뭐냐 하면 IQ라고 이야기하는 지능입니다. 지능은 변하지 않습니다. 최근 10년새 IQ검사하신 적 있으신가요? 변동성이 없으니 안 하는 겁니다. 그런데 건강검진은 많이 하시잖아요? 주기적으로 측정한다는 건 변한다는 의미가 녹아 있는 겁니다.”
피사의 사탑의 기울기는 지속적으로 측정하지만 63빌딩의 높이는 더 이상 재지 않는다. 같은 이치다. 아이큐뿐만 아니라 기억력, 연산력, 생각의 속도 등 기초적인 사고능력은 거의 변하지 않는다, 라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나이가 들면서 깜빡거리는 기억은 기억력의 문제가 아니다. ‘간섭효과’ 땜에 생기는 것이다. 갓 임용되어 담임을 처음 맡은 선생님은 자기 반 학생들의 이름을 모두 기억한다. 하지만 30년차 선생님은 수많은 학생들을 가르쳤다. “선생님, 오랜만에 전화 드려요. 저 영숙이에요.”라는 전화에 당황할 수 밖에 없는 거다. 그러니 걱정 마시라. 나이가 들어도 기억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 머리에 든 게 없다는 이야기나 다름 없다.
변하지 않는 상수가 하나 더 있다. 이건 열 다섯 살만 넘어도 안 변한다. 성격이다. 좀 이상하다고? 지금껏 내내 내성적이었는데 크면서 성격이 바뀌었다는 사례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냐고? 그건 성격이 바뀐 게 아니란다. ‘소셜 스킬’이 향상된 거란다. 아줌마가 되면 성격이 바뀐다는 말도 잘못되었다. 절대신공의 소통 능력을 갖게 된 거지 성격이 달라진 게 아니라는 거다.
이런 걸 우리는 기질이라 부른다. 기질은 독립적으로 생겨나는 게 아니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적 형질이다. 타고 태어나는 거란 의미다. 기초사고능력과 기질의 상당 부분은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거다. 세포 차원의 계승이다. 그럼에도 많은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불만을 갖는 두 가지가 또 바로 이거다. “넌 성격이 왜 그래? 넌 누굴 닮아 머리가 나빠?” 알고 보면 웃기는 이야기다.
“지금껏 수많은 부모님들과 자녀 상담을 해보았는데요. 놀랍습니다. 나이만 다를 뿐 똑 같은 두 인간이 제 앞에 앉아있는 겁니다. 시쳇말로 파일 생성 날짜만 다르지 복붙(복사하여 붙여넣기)해 놓은 겁니다. 아이의 성격과 인지능력은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겁니다. 어떻게 보면 물려준 쪽이 가해자인데,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화를 내고 있는 겁니다(웃음).”
변하지 않는 인간의 기질에 대한 사례는 차고 넘친다. 여기 또 재밌고도 놀라운 사례가 있다. 행복에 유리한 성격이 따로 있다는 거다. 그러니 행복하려고 노력해봐야 별무소용이라는 말씀. 뇌의 신경전달 물질 중 ‘아난다마이드(anandamide)’라는 게 있다. 엔도르핀의 사촌동생 뻘이다. 엔도르핀보다 무려 15배 이상 센 게 아난다마이드다.
아난다마이드가 풍부한 사람들의 행동을 관찰해보면 이들은 스트레스가 없다. 행복에 유리한 뇌를 가진 사람들이다. 예상했겠지만 한국사람들은 아난다마이드 수치가 가장 떨어진다. 거칠게 보자면 아프리카 사람들의 수치가 45라면 북미, 유럽 사람들은 21, 중국, 한국 사람들은 14 수준이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수치가 떨어지는 나라가 수단이랑 콩고인데, 이들 나라의 수치도 41이다.
“외교관이나 주재원 등 아프리카 근무를 오래 한 사람들은 아프리카 사람들이 게으르다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하지만 그것 잘못된 표현입니다. 그들은 낙천적인 겁니다. 적게 가져도 쉽게 행복해지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전 재산이 반바지 하나 밖에 없어도 행복할 수 있는 겁니다. 저희 학교에도 아프리카 유학생들이 있는데요. 인간성이 ‘짱’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친구들을 긴장시킬 방법이 없다는 겁니다. 아프리카 학생들이 시험 전날 보이는 행동은 우리나라 학생들이 시험 끝나고 보이는 행동보다 훨씬 더 밝습니다(웃음).”
그런데 반전이 있다. 행복기질인 아난다마이드의 수치를 역순으로 돌려놓고 이게 무슨 순위 같은지 물어보면 바로 나오는 대답이 ‘근면성실도’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래서 부지런하다. 뭐든 부지런하다. 여행을 가도 그렇다. 복장만 관광객이지 행동은 노동자다. 새벽부터 일어나서 돌아다닌다. 유럽 렌터카 업체들은 운전한 거리 킬로 수만 보고도 한국사람임을 알아차린다. 차를 빌려 일주일에 3,500킬로를 운전하는 게 한국 사람이다. 그렇게 여행을 다녀오면 이 주일을 앓아 눕는다. 상관 없다. 그래야 제대로 여행할 겉 같다고 느끼니 말이다.
지난 200년간 심리학자들이 알아낸 수많은 진실 중에 가장 중요한 거 하나만 꼽으라면 바로 이거란다. “인간은 변하지 않는다.”
낙천적으로 태어나지 않은 사람은 낙천적으로 살 수 없다. 인간은 변하지 않아서다. 하지만 낙관적으로는 살 수 있다. 낙천적 기질은 스트레스를 안 받는다. 그렇게 태어난 거다. 안 그런 사람은 스트레스를 피할 방법이 없다. 하지만 관점을 바꿀 수는 있다.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잘 될 거야” 라고 생각하는 관점의 변화 말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관점을 바꿀 수 있을까? 의지와 노력으로 되는 게 아니다. 그래서 더 중요한 대목이다.
“아무리 연구를 해보아도 인간의 욕망에 대해서는 설명이 잘 안 됩니다. 기계와 다른 부분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인간과 기계는 다음 행동이 달라질 수 밖에 없습니다. 커제가 알파고에게 지고 나서 한 행동이 뭔가요? 패배의 슬픔으로 울면서 술 마신 겁니다. 반면 알파고는? 전원이 꺼졌을 뿐입니다. 다음 행동이 극단적으로 달라지는 겁니다. 인간은 욕구가 생길 때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멍 때린다’라는 건 욕망이 없는 상태입니다. 욕망이 생겼을 때 인간은 생각하고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인간에게는 두 가지 욕구 체계가 있다. 접근(approach)과 회피(avoidance)다. 접근동기는 좋아하는 걸 누리고 싶어하는 욕망이다. 회피동기는 반대다. 싫어하는 것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다. 중요한 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려 할 때, 접근동기를 건드려야 할 때와 회피동기를 건드려야 할 때가 다르더라는 거다. 미스매치가 되면 오히려 역효과가 생긴다.
접근동기와 회피동기를 가르는 두 가지 변수가 ‘시간’과 ‘자아’다. 먼저 시간이다. 오래 해야 하는 일일수록 접근동기가 중요하다. 회피동기는 당장 해야 하는 일에서 힘을 발휘한다. 보험회사의 메시지가 생생한 사례다. 은퇴는 먼 얘기다. 당장 내게 와 닿는 이슈가 아니다. 그래서 회피동기보다는 접근동기가 중요하다. 보험회사의 은퇴프로그램들이 보여주는 모습이 주로 노후의 안락하고 근사한 라이프스타일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이 시간이란 게 또 참 묘하다. 사람의 시간은 객관적으로는 같아도 주관적으로는 다 다르다. 고등학교 1학년 때와 지난 1년간의 시간, 이걸 비교해보면 후자가 훨씬 빨리 지나간 것 같다. 당연한 거다. 나이와 경험이 많아질수록 시간이 빨리 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을 둔 부모가 있다. 딱 3년동안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 가는 걸 보는 게 소원이다. 그래서 항상 얘기한다. “너 인생의 낙오자가 되지 않으려면 열심히 공부해야 돼.” 하지만 아이는 변화가 없다. 김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당연한 거다. 아이한테 3년은 영겁의 세월이다. 반면 부모의 3년은 쏜 살이다. 그러니 부모는 회피동기로 소통한다. 하지만 아이에게 필요한 건 접근동기다. 그래서 그 유명한 전설의 급훈이 지금도 회자된다. “열심히 공부하면 배우자의 얼굴이 바뀐다”는 교훈. 미래와 관련하여 접근동기를 건드려주는 표현이다.
“그렇다면 아이들이 제일 싫어하는 급훈은 뭘까요? “잠은 죽어서 자라”입니다(웃음). 상대를 진심으로 대하는데도 갈등이 생기는 포인트가 바로 여깁니다. 같은 시간이라도 다르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접근동기와 회피동기를 가르는 두 번째 변수는 ‘자아’다. ‘나’라는 관점에서는 접근동기가, ‘우리’라는 관점에서는 회피동기가 작동한다. 예컨대, “너 어떻게 살래?”라고 물으면 “성공할 거야” 같은 류의 대답이 나온다. 하지만 “너희 가족 어떻게 살 거야?”라는 질문에는 “무탈하게”라는 대답이 나온다. ‘나’는 뭔가를 이루고 또 가지고 싶지만 ‘우리’가 되면 불행을 피하고 싶은 게 인간의 심리다.
‘우리’라는 표현을 가장 많이 쓰는 나라가 우리나라다. 생각해보라, “우리 와이프”. 놀라운 표현이다. 영어로 번역해보면 더욱 그렇다. ‘Our wife’라니 아내를 공유하고 있다는 건가?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다. 혼자 사는 사람도 ‘우리 집’이라 말하고 무남독녀 외동딸도 ‘내 아빠’가 아니라 ‘우리 아빠’라 이야기한다. 외국 사람들이 ‘My country’라고 하는 반면, 우리는 ‘우리 나라’라고 말한다. ‘내 나라’라고 말한다면 돌아오는 반응은 뻔하다. “이 나라가 너 개인 소유야?” 이런 사례들이 웅변하고 있는 사실은 하나다. 우리나라는 회피동기가 강한 사회라는 거다. 좋아하는 걸 갖고 싶다는 것보다는 싫어하는 걸 하기 싫어하는 사회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나’는 곧 접근동기가, ‘우리’는 곧 회피동기에 맞닿아 있어서다.
접근동기와 회피동기는 비즈니스 현장에서도 중요한 이슈다. 호텔에 갔는데 방이 더러우면 손님이 싫어한다. 하지만 방이 깨끗하다고 만족도가 올라가지는 않는다. 방이 깨끗한 건 당연한 거다. 더러움을 싫어하는 회피동기가 작동하는 것일 뿐이다. 고객이 원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을 잘 구분해야 한다. 요컨대, 원하는 건 회피동기고, 좋아하는 건 접근동기다.
“개인적 실패담 하나 말씀 드리겠습니다. 초등 3학년 아이를 데리고 놀이공원에 갔는데요. 다른 애들이 다들 풍선을 하나씩 들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 우리 애 입장에서는 나만 풍선이 없는 거지요. 이게 불편한 겁니다. 풍선을 좋아하냐 아니냐는 별 상관 없습니다. 일단 사달라고 조르는 겁니다. 회피동기입니다. 실제로 풍선을 사주고 나서 한 10분이 지났으려나요? 풍선 들고 다니니 팔 아프다고 칭얼댑니다. 애초에 풍선에 대한 접근동기가 없었던 거지요.”
성공적인 제품은 고객의 접근동기와 회피동기를 모두 아우른다. 싫어하는 걸 제거해주고 좋아하는 걸 누리게 해주어야 성공한다. 이걸 구분하지 못했던 대표적인 실패사례가 애플의 데스크탑 컴퓨터 ‘파워맥 G4 큐브’다. 큐브는 ‘예술작품’이라 불러도 될 수준의 디자인을 가졌다. ‘아름다운 컴퓨터’로 뭇 사람들의 혼을 쏙 빼놓은 컴퓨터다. 하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문제는 생각지도 못한 데서 일어났다. 소음을 없애려 빼버린 팬이 문제였다. 프로세서의 발열로 인해 플라스틱 외장에 크랙이 생기거나 깨지는 현상이 생긴 것이다. 모두들 갖고 싶어했던 디자인이었지만 원치 않았던 문제를 갖고 있었던 거다. 접근동기는 자극했지만 회피동기를 채워줄 수 없어 실패했던 비운의 컴퓨터다.
여기 또 하나의 놀랍고도 재미있는 사례가 있다. 물리적인 상처에 의한 통증은 진통제를 먹으면 효과가 있다. 그런데 다양한 연구의 결과, 이별의 상처와 고통, 즉 사람을 통한 심리적 통증에도 진통제가 먹히더라는 거다. 허리가 아플 때의 통증과 사람 때문에 겪는 고통을 우리의 뇌는 구분하지 않는다는 거다.
그렇다면 생각해 볼 일이다. 이별의 고통을 겪고 있는 친구를 우리는 어떻게 대해야 할까? 지금껏 그랬을 거다. “그냥 잊어.” 하지만 이건 잘못된 처방이다. 이별의 고통도 신체적 고통만큼 크고 날카롭다. 실연으로 힘들어하는 친구를 이제는 교통사고 나서 병원에 입원한 환자처럼 대해보라. 그는 진심으로 나를 필요로 할 것이다. 자신에게 가장 힘든 상황을 피할 수 있도록 위로해주고 덜어주기 때문이다. 회피동기에 의한 결과다. 잊어라, 라는 조언이 능사가 아닌 이유다.
그럼 내 주변사람들이 오랫동안 나를 좋아하게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번에는 접근동기가 중요하다. 결론부터 말하면 용건 없이 안부를 묻는 거다. 우리는 보통 용건이 있을 때만 연락을 한다. 생전 연락이 없다 갑자기 안부전화가 오면 불안한 건 그래서다. 그냥 전화하라. 아무런 용건 없이 말이다.
결론이다. 동기는 모든 생각과 행동에 있어 근원적인 심리요인이다. 동기를 이해해야 사람이 보이고 길이 보인다. 접근동기는 숲을 보게 하고, 회피동기는 나무를 보게 한다. 동기의 방향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잡아당기는 접근동기와 밀어내는 회피동기는 그래서 중요하다.
지금껏 우리는 결과에만 초점을 맞추었다. 하지만 왜 그런 결과가 나왔는지 그에 대한 이유와 과정 또한 중요하다. 그걸 알아야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적재적소에 제대로 된 칼을 써야 하는 것처럼 접근동기와 회피동기 또한 필요한 상황이 제각각이다. 사람이란 존재, 알면 알수록 묘하다. ⓒ혁신가이드안병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