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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의 판을 바꾸는 사람들의 AI 기획법

[혁신가이드 안병민의 AI 너머]

[방구석5분혁신=안병민] "AI 프롬프트만 잘 쓰면, 기획은 끝 아닌가요?"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한 가지 명확히 할 것? 이 질문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이 게임에서 한참 뒤처져 있다는 증거다. 문제는 프롬프트를 잘 쓰고 못 쓰고가 아니다. 질문 자체가 틀렸다. 이 게임의 지배자는 AI를 능숙하게 다루는 ‘플래너(Planner)’가 아니다. 플래너는 주어진 전쟁터에서 ‘어떻게 이길지’를 설계하는 유능한 작전 장교일 뿐. 물론 그 정도로도 훌륭하다. 하지만 그건 이제 기본값이다. 진짜 게임을 지배하는 자는, 전쟁의 판 자체를 새로 짜는 ‘아키텍트(Architect)’다. 플래너가 되는 건 고작해야 베이스캠프에 도착한 수준. 정상에서 벌어지는 진짜 게임은 지금부터다.


플래너는 AI를 유능한 ‘하인’으로 부린다. 완벽한 지시서를 내려, 의도한 결과물을 정확히 받아낸다. 안전하고 예측 가능한 방식이다. 아키텍트는 AI를 위험한 ‘스파링 파트너’로 삼는다. 내 논리를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논리를 박살 내기 위해 AI를 쓴다. 완벽한 답을 얻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 내 생각의 빈틈과 약점을 찾는 것이 목표다. 아키텍트의 기획은 ‘지시’로 시작되지 않는다. AI와의 치열하고 지적인 ‘스파링’으로 시작된다. 아키텍트의 스파링 세션을 하나씩 짚어보자. 요컨대, AI로 나 스스로를 깨부수는 법이다.


[ROUND 1] 전장을 재정의하라: 문제의 틀을 새로 짜라


플래너는 “친환경 제품 구매 전환율 5% 상승”이라는 주어진 목표를 해결하려 한다. 아키텍트는 그 목표 자체의 타당성을 AI와 함께 검증한다.


*아키텍트의 질문: “현재 ‘친환경’이란 키워드에 대한 Z세대의 긍정/부정 감성 데이터와 버즈량 변화 추이를 분석해줘. 동시에, ‘자기관리’, ‘데이터 기반’, ‘성분 분석’ 키워드에 대한 버즈량과 비교 분석해. Z세대에게 ‘친환경’이라는 프레임 자체가 낡고 매력 없는 개념일 가능성은 없는가? 만약 그렇다면, 우리 제품의 핵심 가치를 전달할 수 있는 새로운 시장 프레임 3가지를 제안해.”


보이는가? 플래너는 ‘어떻게 풀까’를 고민할 때, 아키텍트는 AI를 이용해 ‘이 문제가 풀 가치가 있는가’를 먼저 묻는다. 판 자체를 해체하고 재조립하는 것이다.


[ROUND 2] 직관을 검증하라: 데이터와 맞붙여라


플래너는 ‘죄책감 대신 과시욕’ 같은 인간의 통찰을 코어로 삼는다. 아키텍트는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자신의 직관을 AI의 데이터와 의도적으로 충돌시켜 더 높은 차원의 답을 찾는다.


*아키텍트의 질문: “내 가설: ‘Z세대는 과시욕을 자극해야 움직인다.’ 이 가설에 대한 잠재적 반론을 제기할 수 있는 소비자 리뷰 데이터 5가지를 찾아줘. 동시에, 수백만 건의 커뮤니티 데이터를 분석해, 인간인 내가 발견하지 못했을 법한 Z세대의 친환경 제품 구매 동인(Latent Driver) 3가지를 제시해. 내 직관과 완전히 다른, 가장 뜻밖의 관점으로.”


플래너는 자신의 직관을 믿는다. 아키텍트는 자신의 직관을 의심한다. AI가 제시한 ‘잠재된 관점’과 자신의 ‘날 선 통찰’을 용광로에 함께 넣고 녹여,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제3의 관점을 만들어낸다.


[ROUND 3] 전략을 시험하라: 레드팀으로 검증하라


플래너는 자신의 기획안을 AI로 ‘완성’시킨다. 아키텍트는 자신의 기획안을 AI로 ‘공격’한다. 기획안의 약점을 찾기 위해서다. 스스로 악마의 변호인이 되어 자신의 창작물에 비수를 꽂는다.


*아키텍트의 질문: “지금까지의 논의를 종합한 내 기획안의 초안이다. [기획안 초안 첨부] 이제부터 너는 가장 까다롭고 비판적인 투자 심사역(VC) 역할을 맡아라. 이 기획안이 반드시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 3가지를 데이터에 기반하여 신랄하게 지적해. 그리고 이 기획안을 시장에서 완전히 박살 낼 경쟁사의 대응 전략을 가장 악랄하게 시뮬레이션해줘.”


완벽한 계획이란 없다. 완벽하게 테스트된 계획만 있을 뿐이다. AI를 칭찬만 하는 예스맨이 아니라, 내 기획의 심장을 향해 돌진하는 레드팀으로 활용해야 한다. 그제서야 나의 기획은 ‘반박 불가’의 영역에 들어선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가? 메모장을 켜고 목표를 적는 것? 그건 연습게임이다. 진짜 게임에 참여하고 싶다면, 나의 기획안, 나의 프로젝트, 그리고 우리 팀이 가장 두려워하는 질문을 정면에 던져라. 모두가 정답이라고 믿는 그 전제를 의심하고, AI를 동원해 그 믿음을 깨부숴라.


프롬프트는 내가 얼마나 똑똑한지 증명하는 도구가 아니다.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내 생각이 얼마나 편협한지 깨닫게 해주는 거울이다. 미래는 AI에게 더 나은 ‘명령’을 내리는 사람의 것이 아니다. AI와 함께 더 나은 ‘질문’을 찾아내는 사람의 것이다. 나의 가장 불편한 질문은 무엇인가? 거기서부터, 진짜 기획이 시작된다. ⓒ혁신가이드안병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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