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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네이티브 조직, 리더가 바꿔야 할 게임의 법칙

[혁신가이드 안병민의 AI 너머]

[방구석5분혁신=안병민] 어느 기업의 회의실. 팀원 하나가 조용히 노트북을 열었다. 화면엔 어젯밤 AI로 뽑아낸 첫 프로토타입이 떴다. 디자이너가 UI를 구상하기도 전이었다. 개발자가 시스템을 설계하기도 전이었다. 회의 안건은 즉시 바뀌었다. ‘아이디어 논의’를 위한 회의에서 ‘수정·배포 계획’을 위한 회의로. 절차는 사라졌다. 속도는 빨라졌다. 모두가 알았다. 우리가 일하는 방식은 이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AI 네이티브 조직’의 단면이다.


AI 네이티브 조직은 단순히 AI를 쓰는 조직이 아니다. 처음부터 AI를 중심에 두고 설계된 조직이다. 일의 단위, 흐름의 설계, 권한과 책임의 배치가 모두 AI를 전제로 재구성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조직은 이 아름다운 풍경과 거리가 멀다. 보고는 여전히 위로만 올라간다. 결정은 한없이 늦게 내려온다. 직급이 판단 기준이 되고, 리더의 취향이 프로젝트를 뒤흔든다.


이런 상황에서 흔히 듣게 되는 조언이 있다. “조직이 바뀌길 기다리지 말고, AI를 활용해 당신의 업무 프로세스를 보다 효율적으로 바꾸라.” 침몰하는 배의 선원에게 “더 뛰어난 수영 실력을 갖추라”는 것과 별 다를 것 없는 얘기다. 물론 개인의 역량은 중요하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배에 뚫린 구멍을 막지 못하는 선장의 리더십과 낡은 항해 시스템이다. AI 시대에 살아남는 직장인의 조건은, 개인의 영웅적인 노력 이전에, 리더가 어떤 종류의 배를 만들고 있는가에 달려있다.


그렇다면 침몰하는 낡은 배를, AI라는 폭풍우를 뚫고 나아갈 강력한 항공모함으로 바꿀 수 있는 리더의 비결은? ‘일의 운영 체제(OS)’를 새로 설계하는 거다.


첫째, ‘보고’의 문화를 ‘공유(Share)’의 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한다. 과거의 조직에서 정보는 권력이었다. 보고서는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바치는 조공품이었고, 의사결정은 정보를 독점한 소수가 독점했다. AI 네이티브 조직에서의 정보는 흐르는 물과 같아야 한다. AI가 생성한 시장 분석 데이터, 고객 반응 리포트, 경쟁사 동향 등 모든 정보가 특정 부서나 개인에게 갇혀서는 안 된다. 전사적으로 접근 가능한 ‘공유 데이터 풀(Shared Data Pool)’에 실시간으로 쌓여야 한다.


리더의 역할은 보고서를 ‘결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 데이터 풀 위에서 직원들이 자유롭게 토론하고 가설을 세울 수 있도록 ‘안전한 놀이터’를 만드는 것이다. “이 데이터를 보니, 우리가 완전히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라는 발언이 질책이 아닌 칭찬을 받는 문화를 설계해야 한다. 정보의 투명성이 보장될 때, 비로소 AI는 조직 전체의 집단 지성을 높이는 무기가 된다.


둘째, ‘개인의 역량’을 ‘팀의 워크플로우(Workflow)’에 통합해야 한다. “AI를 잘 쓰는 직원이 되어라”는 공허한 구호다. 리더는 개인이 아니라 팀 전체가 AI를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워크플로우’를 설계해야 한다. 예컨대, 신규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모든 팀은 의무적으로 AI를 활용해 ‘사전 실패 시뮬레이션(Pre-mortem Simulation)’을 수행하게 하는 것이다.


‘기획자’는 AI에게 “이 프로젝트가 실패한다면, 가장 가능성 높은 이유 3가지는 무엇인가?”를 묻는다. ‘개발자’는 “AI가 제안한 기술 스택의 잠재적 문제는 무엇인가?”를 검증한다. ‘마케터’는 “AI가 예측한 타겟 고객의 반응이 완전히 빗나갈 최악의 시나리오는 무엇인가?”를 분석한다. AI는 개인의 역량을 평가하는 시험지가 아니라, 팀 전체가 함께 리스크를 관리하고 의사결정의 질을 높이는 공동의 도구가 된다. 리더는 ‘슈퍼맨’을 찾는 대신, 팀의 협업 프로토콜을 만들어야 한다.


셋째, ‘통제’의 리더십을 ‘신뢰(Trust)’의 거버넌스로 바꾸어야 한다. AI가 생성한 결과물에는 항상 편향과 오류의 가능성이 존재한다. 개인 판단에 맡길 일이 아니다. 명확한 ‘조직적 가드레일’이 필요하다. 가령, ‘고객의 신용등급 평가’나 ‘채용 지원자 서류 심사’와 같이 인간의 권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의사결정에는 ‘인간 검토 필수(Human-in-the-loop)’ 조항을 시스템에 명시해야 한다.


AI가 특정 그룹에 불리한 결정을 내릴 가능성은 없는지 지속적으로 감사하고, 그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윤리 위원회를 운영하는 것도 방법이다. 리더는 직원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대신, 그들이 AI를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는 ‘신뢰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결국 AI 네이티브 조직에서 살아남는 직장인의 진짜 조건은, 그가 얼마나 뛰어난 AI 활용 능력을 가졌느냐가 아니다. 그가 얼마나 지능적으로 설계된 시스템 안에서 일하고 있느냐다. 개인에게 무한 책임을 지우는 조직은 침몰할 것이다. 개인의 역량이 조직의 시스템 위에서 마음껏 발휘될 수 있도록 판을 짜는 리더만이, AI 시대의 폭풍우 속에서 살아남는다.


이제 리더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우리 조직은 각자도생을 외치는 수많은 ‘구명보트 떼’인가, 아니면 폭풍우를 뚫고 함께 나아가는 강력한 ‘항공모함’인가. 거대한 기술의 파도 속 우리는 정처없이 표류할 것인가, 담대하게 헤쳐나갈 것인가. ⓒ혁신가이드안병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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