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5분혁신.리더십]
[방구석5분혁신=안병민] 어떤 기업은 유성처럼 밤하늘을 가로지른다. 폭발적인 빛을 내뿜지만 이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또 어떤 기업은 거대한 고목처럼 한 자리를 지킨다. 혹독한 계절을 견디고, 수많은 태풍을 이겨내며 더 단단하고 깊게 뿌리내린다. 두 기업의 운명을 가르는 것은 무엇일까. 자본의 규모? 혁신적 기술? 시장의 운? 물론 중요한 요소들이다. 하지만 상위 변수가 존재한다. 리더가 시간을 다루는 방식이다. 요컨대, 리더가 시간의 지배를 받는 ‘관리자’에 머무는가, 아니면 시간을 재구성하는 ‘설계자’가 되는가에 대한 선택이다.
리더십의 가장 보편적인 함정은 ‘시계의 폭정’에 굴복하는 것이다. 분, 초 단위로 쪼개진 효율성, 분기별 실적 보고서, 마감 기한이라는 단두대. 대부분의 리더는 이 촘촘한 시간표 안에서 최고의 성과를 내는 것을 자신의 소명이라 믿는다. 그들은 탁월한 시간 관리자다. 회의 시간을 10분 단축하고, 프로젝트 일정을 일주일 앞당기며, 조직의 운영 속도를 높인다. 분명 가치 있는 능력이다. 하지만 이것은 주어진 트랙을 더 빨리 달리는 경주마의 기술이지, 경기의 판을 새로 짜는 설계자의 기술은 아니다. 시계의 폭정 아래에서는 누구도 미래를 만들 수 없다. 단지 현재를 더 빨리 소진할 뿐. 진짜 리더, 시간의 설계자는 혼돈의 안개 속에서 새로운 시계의 태엽을 감기 시작한다.
시간의 설계자는 두 개의 강력한 도구를 손에 쥐고 있다. 하나는 시간을 응축시키는 ‘압축기(Compressor)’다. 다른 하나는 시간을 숙성시키는 ‘숙성기(Incubator)’다. 리더십의 정수는 이 두 개의 상반된 도구를 언제,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아는 감각에 있다. 압축기는 절체절명의 위기 혹은 절호의 기회가 포착되었을 때 사용된다. 조직의 모든 에너지를 한 점으로 응축시켜 임계점을 돌파하는 전략적 가속이다.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 개발을 지휘할 때. 그는 ‘세상을 바꿀 제품’이라는 단 하나의 목표 아래, 애플의 최고 인재들을 외부와 격리된 프로젝트에 몰아넣었다. 수년에 걸쳐 이루어질 법한 연구개발, 디자인, 소프트웨어 통합 과정을 불과 2년 남짓한 시간에 압축시켰다. 단순히 ‘빨리빨리’를 외친 것이 아니었다. 회사의 명운을 건 채, 조직의 시간을 밀도 높게 압축하여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미래를 현재로 끌어당긴 것이다.
반면 숙성기는 당장의 성과와는 무관해 보이는, 그러나 미래의 가능성을 품은 씨앗을 위해 사용된다. 단기적 ROI(투자수익률)라는 잣대로는 측정할 수 없는 영역에 대한 믿음의 투자다. 리더는 조직의 일부 자원과 인력을 의도적으로 분리하여, 외부의 압력과 소음으로부터 보호되는 ‘시간의 온실’을 만든다.
구글의 전설적인 ‘20% 시간’ 정책이 바로 이 숙성기의 사례다. 엔지니어들이 근무 시간의 20%를 자신의 아이디어에 자유롭게 쏟아붓도록 허용한 이 정책은, 언뜻 비효율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지메일(Gmail), 애드센스(AdSense), 구글 뉴스(Google News)와 같은 세상을 바꾼 서비스들이 바로 이 시간의 온실 속에서 탄생했다. 미래를 현재로 빌려오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자원을 미래에 저축하여 시간의 복리 효과를 누리는 고도의 지혜다. 숙성기는 예측 불가능한 미래를 위한 가장 확실한 보험이다.
진정한 거장은 단순히 압축기와 숙성기, 두 도구를 사용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위대한 리더십은 두 개의 시간을 하나의 교향곡으로 지휘하는 능력에서 발현된다. 압축기를 통해 확보한 현재의 생존과 이익이 숙성기에서 자라나는 미래의 씨앗에 자양분을 공급하고, 숙성기에서 마침내 싹을 틔운 혁신이 다시 조직 전체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선순환의 리듬을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시간 설계의 화룡점정이다.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현악기 파트에는 빠르고 격정적인 연주를, 관악기 파트에는 길고 장엄한 호흡을 요구하며 완벽한 하모니를 빚어내는 것처럼. 조직 내에 서로 다른 속도의 시간을 공존시키고, 그 둘을 유기적으로 연결하여 시너지를 창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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