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5분혁신.사회혁신]
[방구석5분혁신=안병민] 수백 개의 카메라 플래시가 터진다. 연단에 선 인물의 시야가 하얗게 점멸한다.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침통한 표정으로 품 안의 원고를 꺼내 읽는다. "모든 것이 제 불찰입니다." "자숙하며 평범한 사람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뼈를 깎으며 반성하겠습니다." 90도로 허리를 숙이자 셔터 소리가 폭우처럼 쏟아진다.
자, 여기서 퀴즈. 지금 고개를 숙인 이 사람은 범죄 스캔들이 터진 톱스타인가, 아니면 뇌물수수 혐의가 드러난 유력 정치인인가? 정답은 '알 수 없다'이다. 더 정확히는 '구분이 무의미하다'이다. 무대만 다를 뿐, 이들이 퇴장하는 방식이 똑같아서다. 작동하는 사회적 메커니즘도 동일해서다. 소름 끼칠 만큼 닮았다. 이것은 진정한 사과가 아니다. 범죄와 엔터테인먼트의 경계를 지워버리는 쇼다. 거대한 생존 드라마의 오프닝 시퀀스다.
사건이 발생했을 때 당사자가 취하는 행동은 보통 두 가지 패턴 중 하나다. 첫 번째는 명백한 증거가 나오기 전까지 '끝까지 부인하는 전술'이다. "사실무근이다", "법적 대응하겠다"며 핏대를 세운다. 뻔뻔한 얼굴로 카메라를 노려보며 지지층의 결집을 유도한다. 두 번째는 '기획된 여백'을 남기는 방식이다. 도저히 빠져나갈 구멍이 없을 때, 그들은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는 식의 모호한 사과를 남기고 무대 뒤로 숨어버린다. 구체적인 혐의나 도덕적 치부를 인정하는 대신 추상적인 멘트로 사안을 뭉개고 사라지는 것이다.
버티든 숨든 목적은 하나다. 사실관계(Fact)가 들어서야 할 자리를 비워둠으로써, 훗날 '박해받는 희생양'으로 돌아올 리브랜딩(Rebranding)의 씨앗을 심어두는 것이다. 하지만 1막의 이 계산은, 2막이 열리는 순간 그들의 손을 떠난다.
주인공이 무대 뒤로 사라지면, 연출권은 '대주주'들에게 넘어간다. 바로 팬덤과 지지층. 이들이 대리전을 치른다. 여기서 작동하는 심리 기제는 똑같다. 연예인 팬덤의 '내 사람 지키기'나 정치 고관여층의 '수호 집회'나 토씨 하나 다르지 않다. 내 스타의 범죄를 인정하는 건 고통스럽다. 내 정치인의 잘못을 시인하는 건 패배다. 그것은 자신의 안목을 부정하는 일이다. 자신의 정체성이 파산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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