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5분혁신.경영혁신]
[방구석5분혁신=안병민] 그리스 비극의 주인공 오이디푸스는 ‘아비를 죽이고 어미와 맺어질 것’이라는 끔찍한 신탁을 듣는다. 운명을 거부하기 위해 그가 선택한 것은 필사적인 도주였다. 고향을 등지고, 왕자의 지위를 버리고, 정처 없이 황야를 떠돌았다. 역설적이게도, 그 필사적인 도주가 그를 아버지가 있는 길목으로, 어머니가 있는 왕좌로 이끌었다. 그를 파멸로 몰고 간 것은 신의 저주가 아니었다. 공포에 질려 내달린 자신의 두 발이었다.
이 고대의 비극이 여전히 섬뜩한 이유? 신화 속 주인공을 파멸시킨 그 메커니즘이, 현실에서도 똑같은 ‘심리적 알고리즘’으로 작동해서다. 예언은 무의식에 입력되는 순간, 사람의 행동을 통제하는 강력한 명령어가 된다. 이른바 ‘자기실현적 예언’이다. 뇌의 ‘확증 편향’ 때문이다.
불길한 예감이 들면, 뇌는 그 예감을 입증할 증거를 편집증적으로 수집한다. “이번 프로젝트, 왠지 망할 것 같아.” 이 생각이 머리에 박히는 순간, 동료의 작은 한숨은 ‘좌절의 신호’로 읽힌다. 클라이언트의 평범한 질문은 ‘거절의 징후’로 둔갑한다. 성공할 수 있는 수만 가지 변수는 시야 밖으로 밀려난다.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들만 선명해진다. 미래가 정해져서가 아니다. 나의 시선이 기울어져서다.
이 파괴적인 루프는 조직 내에서 빈번하게 작동한다. 연말 기업들의 회의실 풍경. 리더들의 표정이 어둡다. “내년 시장 상황이 암울하다”, “목표 달성은 불가능에 가깝다”.
물론, 냉철한 구분이 필요하다. 데이터를 통해 위험을 짚어내는 건 ‘분석’이다. 하지만 아무런 대안 없이 패배감만 주입한다면? 그건 ‘저주’다. ‘리스크(Risk)’가 마음속의 ‘공포(Fear)’로 변질되는 순간, 조직은 얼어붙는다. 날아오는 공을 보고도 꼼짝 못 하는 골키퍼처럼, 조직의 창의성과 실행력도 마비된다. 결국 성과는 곤두박질치고, 리더는 혀를 차며 말한다. “거봐, 내가 안 될 거라고 했잖아.” 자신이 뿌린 공포가 빚어낸 결과를 자신의 탁월한 예지력으로 착각하는 것, 경영 현장에서 벌어지는 뼈아픈 블랙코미디다.
해법은 무엇일까. 덮어놓고 “다 잘될 거야”를 외치는 ‘무한 긍정’은 답이 아니다. 근거 없는 낙관은 실재하는 위기 앞에서 휴지 조각이다. 진짜 필요한 것은 상황을 해석하는 ‘주도권’의 회복이다.
영화 <매트릭스>의 주인공 네오는 예언자 오라클로부터 “너는 구세주가 아니며, 모피어스와 너, 둘 중 하나는 반드시 죽는다”는 양자택일의 예언을 듣는다. 보통 사람이라면 여기서 절망했을 터. 하지만 네오는 주어진 선택지 자체를 거부한다. 죽음을 각오하고 몸을 던짐으로써, 예언이 통하지 않는 제3의 길을 만들어낸다. 그가 운명을 바꿀 수 있었던 건, 단순히 ‘할 수 있다’는 긍정의 힘 때문이 아니다. 주어진 변수에 종속되지 않아서다. 변수를 통제하겠다는 ‘주체성’을 회복해서다.
불확실성을 이기는 무기는 희망이 아니라 ‘태도의 구체성’이다. “내년이 걱정된다”는 말은 모호하다. 안개를 걷어내는 유일한 방법은 시나리오를 쓰는 행위 그 자체다. “어떤 상황이 와도 나는 대응할 수 있다”는 통제감을 뇌에 심어주는 ‘의식(Ritual)’이 중요한 거다. 플랜 B를 구체적으로 적어 내려가는 순간, 막연했던 공포는 관리 가능한 과제로 변한다. 우리가 공포를 느끼는 진짜 이유? 상황이 나빠서가 아니다. 상황을 통제할 수 없다는 무력감 때문이다.
다시 12월이다. 우리 머릿속엔 불길한 예언들이 유령처럼 떠돈다. 금리는 요동치고, 국제 정세는 불안하며, 경기는 침체될 것이라는. 하지만 경제 전망은 외부의 날씨일 뿐, 내가 가야 할 목적지가 아니다. 비가 온다는 예보를 듣고 집에 틀어박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튼튼한 우산을 챙겨 들고 집을 나서는 사람이 있다. 결과의 차이는 날씨가 아니라, 우산을 챙기는 태도에서 갈린다.
새해를 앞두고 “내년에 무슨 일이 일어날까?”라고 묻는 것은 무책임하다. 남의 인생을 구경하듯 자신의 삶을 방관하는 태도라서다. 질문을 바꿔야 한다. “예측 불가능한 기하급수적 변화에 나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미래는 예측하는 자의 것이 아니다. 헤쳐나가는 자의 것이다. 시나리오는 아직 쓰이지 않았다. 펜은, 언제나 내 손에 쥐어져 있다. ⓒ혁신가이드안병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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