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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배우의 퇴장, 여섯 개의 질문: 죄와 용서 사이

[방구석5분혁신.사회 분석]

[방구석5분혁신=안병민] 사건 개요. 최근 한 중견 배우의 과거 범죄 이력이 뒤늦게 공개되며 사회적 논란이 확산됐다. 미성년 시절 강도와 성폭력 관련 범죄로 소년보호처분을 받았고, 성인 이후에도 폭행과 음주운전 전력이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본인은 일부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성폭행 가담은 부인했다. 이후 모든 활동 중단과 사실상 은퇴를 선언했다. 이 사건은 개인의 과거를 넘어 소년법의 취지, 피해자 중심주의, 공인의 도덕성, 언론의 폭로 범위, 여론 재판의 정당성까지 겹겹의 쟁점을 끌어올렸다. 지금 논란의 본질은 한 배우의 퇴장이 아니다. 사회가 죄와 용서 사이의 경계를 어디에 그을 것인가에 대한, 기준의 문제다. 여섯 개의 쟁점을 정리했다.


쟁점 1. 시간의 문제: 과거 범죄, 언제까지 책임인가


더 엄격한 책임이 필요하다는 시각이 먼저 제시된다. 소년범이라 해도 강도와 성폭력 같은 중범죄는 사회적 기억에서 쉽게 지워질 수 없다는 주장이다. 공인은 일반인보다 더 큰 영향력을 가진 존재다. 더 높은 도덕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차별이 아니라 책임의 차이라는 논리다. 시간이 흘렀다는 이유로 공적 검증이 멈춰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이 여기서 출발한다.


갱생이라는 제도의 약속을 다시 꺼내는 반론도 맞선다. 소년법은 처벌보다 회복을 전제로 설계된 제도다. 처분이 끝났다면 사회는 다시 출발할 기회를 줘야 한다는 논리다. 수십 년이 지난 과거를 다시 소환해 현재의 삶을 박탈하는 것은 사실상 이중 처벌이라는 지적도 이어진다. 법적 책임과 사회적 낙인이 분리되지 않으면 누구도 제도 보호를 신뢰할 수 없다는 문제로 이어진다.


쟁점 2. 피해의 문제: 피해자 중심주의는 충족됐는가


공개 사과와 활동 중단은 최소한의 책임 이행이라는 해석이 있다. 특히 은퇴 선언은 개인의 커리어보다 사회적 파장을 우선한 선택으로 읽힌다. 대중 앞에서 사과하고 자리를 떠나는 행위 자체가 피해자에 대한 존중의 표현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그러나 피해자 중심주의의 기준에서 보면 여전히 공백이 크다는 반응이 더 많다. 진짜 피해자는 대중이 아니라 당사자라는 점 때문이다. 직접적인 사과, 회복을 위한 실질적 조치, 2차 피해를 막기 위한 노력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여론을 향한 사과는 빠르지만 피해자를 향한 회복은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이 여기로 모인다.


쟁점 3. 상징의 문제: 정의 이미지 스타는 복귀 가능한가


정의와 도덕을 상징하는 얼굴이 과거 중범죄 가해자였다면 그 괴리는 치명적이라는 시각이 강하다. 역할은 메시지고 배우는 전달자다. 전달자의 신뢰가 붕괴되면 메시지도 설득력을 잃는다. 공적 이미지를 직업 자산으로 삼아온 배우일수록 더 엄격한 잣대를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반대로 연기는 직업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과거의 잘못과 현재의 직업적 역량을 분리하지 않으면 모든 직업은 도덕 심사에 종속된다는 지적이다. 사회가 회복과 복귀의 통로를 닫는 순간 갱생은 말뿐인 슬로건이 된다는 문제 제기도 이 맥락에서 나온다.


쟁점 4. 복귀 범위의 문제: 죗값 이후의 삶, 연예인이라는 직업까지 허용할 것인가


형벌을 모두 마쳤다면 법적으로는 자유로운 사회 구성원이라는 원칙이 먼저 나온다. 직업 선택의 자유는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이다. 연예인이라는 이유로 예외를 두기 시작하면 직업 차별의 기준은 끝없이 확장된다는 논리다. 회복 이후의 삶까지 통제하는 사회는 갱생을 말할 자격이 없다는 주장도 여기에 붙는다.


그러나 연예인은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는 반론이 맞선다. 대중의 관심을 자산으로 삼아 막대한 부와 명예를 얻는 공적 위치라는 점 때문이다. 중범죄 전력이 있는 사람이 다시 대중의 사랑과 소비 위에 서는 구조는 사회적 정의 감각을 정면으로 거스른다는 인식이다. 조용히 다른 직업으로 사는 것과 화려하게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문제는 차원이 다르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쟁점 5. 폭로의 문제: 폭로는 정당했는가, 언론은 어디까지 파헤칠 수 있는가


공인은 영향력이 크다는 논리가 먼저 나온다. 과거 중범죄는 개인사의 영역이 아니라 공익의 영역이라는 주장이다. 대중은 판단할 권리가 있고 언론은 그 판단을 가능하게 할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는 논리다. 침묵은 또 다른 방조가 될 수 있다는 주장도 함께 등장한다.


반대로 소년범 기록은 갱생을 전제로 비공개 보호되는 영역이라는 점이 강하게 제기된다. 언론이 우회로로 이를 폭로하는 순간 제도는 무력화된다(물론 적법한 경로로 취득한 정보라면 또 다르다). 공익이라는 이름으로 개인의 인격권을 무제한 침해할 경우, 사회는 언제든 린치의 광장이 될 수 있다는 경고로 이어진다.


쟁점 6. 여론 권력의 문제: 여론 재판과 사회적 사형은 정당한가


법은 최소 기준이라는 주장도 있다. 사회는 그보다 높은 도덕 기준으로 판단할 권리가 있다는 논리다. 불매와 퇴출은 폭력이 아니라 소비자의 선택이다. 대중이 등을 돌리는 것은 표현의 자유라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여론은 사실보다 분노가 빠르다'는 반론이 강하게 맞선다. 사법 절차가 끝나기도 전에 사회적 사형이 집행된다. 이 구조가 반복되면 내일은 누구든 표적이 될 수 있다. 정의는 점점 절차를 잃고 처벌은 점점 감정이 된다는 경고가 나온다.


진영의 문제: 망국적 진영주의는 판단을 어떻게 왜곡하는가


이번 논란 과정에서 또 하나 뚜렷하게 드러난 문제는 망국적 진영 논리다. 죄의 무게와 용서의 가능성을 따지기보다, 어느 편이느냐를 먼저 따진다. 사실관계보다 진영 감정이 앞서고, 윤리보다 편 가르기가 먼저 작동한다.


더 위험한 것은 진영에 매몰되는 순간, 진영 자체가 범죄를 덮어주는 온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누구의 잘못이든 ‘우리 편’이면 감싸고, ‘상대 편’이면 더 크게 처벌하라는 왜곡된 정의가 작동한다. 이 논란은 죄와 용서를 둘러싼 논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얼마나 쉽게 진영의 언어로 사고하고 판단하는 사회가 되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우리는 지금 한 사람의 과거를 심판하는가. 아니면 사회의 기준을 다시 쓰고 있는가. 법은 끝났다고 말한다. 사회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이 간극이 오늘의 논란을 만들고 있다. 쉽게 답할 수 없는 쟁점들이다. 대중의 분노는 범죄 그 자체보다도, 반성의 방식과 이후의 삶과 태도에 쏠려 있다. 누구의 편을 드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어떤 사회를 선택하느냐의 문제다. ⓒ혁신가이드안병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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