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날 로또를 샀다

by 장아무개

"내가 말이야 이번에 산 로또가 당첨만 되면 말이야!"


로또가 이 땅에 자리 잡은 이후로 수많은 직장인들이 수십 년에 걸쳐 같은 말을 입에 달고 살게 됐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입에 달고 사는 말이며, 누구나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말이면서, 그 이후의 희망적인, 하지만 가능성은 낮은 핑크빛 미래와 암울하지만 벗어날 수 없는 현실 사이에서의 갈등을 내심 짐작할 수 있는 문장이기도 하고. 로또만 되면 말이야....


솔직히 로또를 자주 구입하는 건 아니지만, 가끔 구입해 지갑에 고이 접어 놓는 로또는, 발표일이 지나도 당첨 결과를 맞추기가 싫어진다. 아니 겁난다. 혹여나 내가 당첨이 되어 생각지도 못한 거액이 통장으로 입금될까 봐, 뉴스에 종종 나오는 것처럼 당첨 사실을 알고 주변에서 자꾸 연락을 할까 봐....를 걱정했으몀 참 좋겠다. 그게 아니라 당첨되지 못했으니 계속 회사에 다녀야 할까 봐, 아니 다녀야 한다 라는 현실이 두려운 거다.


그런데 참 희한하다. 6개의 번호를 모두 당첨하는 건 너무나 어렵다는 걸 이해하고 받아들이겠는데, 왜 나는 그 번호를 모조리 피해하는 말도 안 되는 '행운(?)'을 모조리 접하고 있을까. 참 희한하다.


로또를 샀다.


어제가 '월급날'이었다. 회사 메일함으로 월급명세서가 들어오면 이번 한 달도 잘 살았구나 라는 생각에 스스로를 위로한다. 금액이 크든 적든 상관없이 열심히 살아온 건 사실이니까. 하지만 곧 슬픔이 현실을 감싼다. 빠져 나가야 할 카드값, 연체된 카드값이 찍혀있는 문자를 볼 때마다 '내가 왜 이리 카드를 많이 사용했을까?'라는 반성을 하게 되지만, 현실 앞에서 이를 개선하긴 너무나 힘들다며 변명할 뿐이다.


월급날, 거의 한 달만에 통장이 두둑해지는 그 날, 나는 로또를 샀다. 얼마 들어있지 않은 지갑을 만지작거리다 퇴근하는 길에 보이는 복권판매점으로 발길을 돌렸다. 말로는 참 단순한 단계이지만, 이 복권판매점의 문을 열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매번 사야지, 사야지 라는 생각과 다짐을 하고 있지만, 5000원이라도 당첨될 확률이 너무나 희박한 걸 알고 있기에, 돈도 없는데 괜히 낭비하는 거 아닌가 라는 망설임이 복권판매점 앞을 그냥 지나가게 만들었다.


월급날, 어차피 빠져나가 1주일도 되지 않은 짧은 시간 안에 비어버릴 월급통장이지만. 그래 어차피 비어버린 통장을 보며 다음 월급날까지 남은 기간을 허탈하게 보내야 할 바에는, 아주 작은, 미세한 희망이라도 가져보고 싶었다. 이게 월급날임에도 불구하고 로또를 샀던, 사야 했던, 살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자동으로 세 개요."


많이 사지도 못했다. 3000원어치. 불과 세 건. 이게 내가 구입할 수 있는 최대의 금액이고 내게 허락된 최대한의 '헛된' 희망이다. 지금의 삶이 그렇다. '헛된', '이뤄지기 힘든' 희망이라도 가져야 현실을 버티며 살아갈 수 있는 삶.


이번에 구입한 로또는 아마도, 거의 확실하게 당첨 결과를 확인하지 않을 듯하다. 그리고 다음 월급날이 되면 나는 한 번 더 로또를 구입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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