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프와 대화를 하면서 나이가 들었음을 실감하게 되는 때가 있다. 아니, 다시 이야기하면 '늙어야 하나?'라는 처절한 반항을 하고 싶은 순간이 있다. 나이가 들어서는 매우 잦아졌다. 처음엔 별볼일 없는 소재로 대화를 시작하다가도 '아이들 교육 문제',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사건사고들이 끊이지 않는 '집안 문제', 줄어들지 않는 원금을 보며 한 숨을 쉬게 되는 '대출 문제', 물가상승률을 따라가는 건 바라지도 않는 '월급 문제'로 점차 방향을 틀더니, 결국에는 '늙어서 뭐하지?'의 문제로 귀결될 때가 바로 그 순간이다. 정말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지만, 지금도 이렇게 빡빡하게 살아가고 있는데, 우리가 늙어 더 이상 경제활동을 하지 못하는 그 나이게 되었을 때를 걱정해야 하는 나이가 되었음을 느끼며 눈을 질끈 감는다. 눈 앞에 펼쳐진 현실을 잠깐이라도 보지 않겠다 발버둥 치지만, 다시 눈을 뜨면 현실은 변함없이 눈 앞에 놓여 있다. 그 상태 그대로 깜깜하다. 현실은 영화가 아니며, 현실은 소설이 아니다. 아무리 소설을 많이 읽어도, 소설은 위안이 될 수 없다*.
생명연장의 꿈은 갑작스럽게 실현되는 것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멈춰서 있는 것도 아니라서, 꾸준히 연구와 시도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눈부신 의학의 발전을 이뤄내고 있으며, 죽지 않는 불노불사의 삶은 생각해봤어도 늙는다는 것은 생각해보지 않은 어설픈 중년들이 어느새 100세 시대를 눈 앞에 두고 있다. 누구라도 똑같지 않을까? 과거와 늙는 건 똑같은데, 늙은 채로 더 오랜 삶을 살아야 하는 건, 어찌 보면 이기적인 생각일 수도 있지만, 보통의 사람에게는 그리 환영받는 기간은 못될 것이라는 것 말이다. 여전히 100세라는 나이를 실감하지는 못하지만, TV에서는 노년의 '불행한'(?) 삶을 보여주고, 방송을 보는 우리는 한 숨을 절로 쉴 수밖에 없음을 느끼게 된다. 물론 행복한 노년의 삶을 보여주는 방송도 많지만, 우리 부부의 대화를 이끌어가는 방송은 역시나 나이 들어 마음처럼 몸이 움직이지 않는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방송이다. 이를 계기로 사소한 소재로 시작했던 대화가 우리 부부의 노후에 대한 걱정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뭐 먹고사나, 어디서 사나, 어떻게 사나....라는 대화의 결말은 언제나 똑같은 질문과 그에 대해 제대로 된 답변을 하지 못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그때 내가 돈을 잘 벌고 있을까?"라는 아주 단순 명료하지만, 우리 부부가 대화를 시작하면 거의 모든 결말을 장식하게 되는 질문.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최고로 불행한 질문이며, 그 누구도 쉽게 답변해주지는 못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어슴프레 윤곽이 잡히는 답변을 스스로 할 수밖에 없는 질문. 정말 하고 싶지 않은 질문. 그 질문을 던져야 하는 순간, 망설임이 존재하지만 이 망설임 때문에 겁 많은 겁쟁이로 전락해버릴까 두려워 입 안에서 맴도는 말을 겨우 꺼내야 할 때의 아득함을 어찌 표현할 수 있을까.
늙음, 나이 들어 감, 노년, 최근엔 중장년...... 사람으로 태어나 세월의 흔적을 하나 둘 쌓아가며 나이 들어감은 정상일 텐데, 세월의 흐름을 아무리 느껴도 나이 들어감, 다시 말해 '중년을 지나 노년을 향한 늙어감'은 도통 적응이 되지 않는다. 지금도 여전히 푸릇푸릇한 잎을 과시하고 싶은데, 가을을 맞은 단풍잎처럼 인생의 단풍이 들어 흐물흐물 해지는 노란색 잎사귀를 제대로 쳐다볼 용기가 없다. 바짝 말라 힘없이 떨어지는 낙엽의 시기는 아예 생각치도 않는다. 과거의 위대한 철학자들은 나이 들어 지식과 지혜가 완숙해짐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배포를 가지고 있었건만, 나는 도무지 그러한 배포에 접근할 수 없는 소시민의 마인드를 유지한다. 그러니 '늙어감'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할 수밖에.
늙음에 대한 불안을 키우는 요소는 꽤 많겠지만, 가장 큰 문제는 정년 이후 아무리 오래 일을 한다고 해도 사회적 정년은 60~65세 정도라는 거다. 그 이후의 삶은 아무리 희망적으로 잡아도 희망적이지 않다. 퇴직연금이 있으니 괜찮지 않겠냐 라고 물을 수도 있지만, 사실 몇 차례 이직을 하면서 받은 퇴직금은 모두 대출금을 갚은 데 써버렸다. 그럼에도 대출금은 줄어들지 않으니 참으로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삶의 미스터리. 월급을 모으면 되지 않겠는가 라고 다시 한번 물어볼 수 있겠지만, 월급은 모아지는 게 아니라 부족한 거다. 앞으로 기껏 퇴직금을 모아봐야 남은 인생을 살아가기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보니 결국 노년의 연금이 보장되는 '공무원은 좋겠다'라는 부러움 섞인 한 숨이 절로 나올 수밖에.
' 돈을 잘 벌고 있을까?'에 대한 답변은 명확하다. 절대 못 번다. 그런 삶이 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대답을 흐리는 것뿐. 지금이야 어찌어찌 버는 정도에 맞춰 살아갈 수 있지만, 앞으로 더 늘어날 수밖에 없는 씀씀이에 비해 얼마 남지 않는 고점을 계기로 줄어들 수밖에 없는 소득의 꺾임은 더 이상 오지 않을 것 같은 미래가 아니라, 바로 코 앞에 닥친 현실이 되어 가고 있다. 언제나 (노후) 준비를 해야 한다는 당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녹록지 않는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준비는 너무나 동떨어진 세상의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열심히 벌어 열심히 저축하고 정정당당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면 언젠가는 알아주겠지, 언젠가는 보상을 받겠지 라는 생각을 젊었을 적엔 가졌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정정당당한 삶에 대한 보상의 기대는 희석되어간다. 그 희석된 부분엔 치열한 현실이 자리 잡게 되고, 결국 일확천금 밖에는 미래에 대한 준비의 방법이 생각나지 않아 로또를 구입하려 복권방을 향하게 된다. 그렇게 지갑 속에 펼쳐지지 못한 나의 복권은 보장하지 못하지만, 마치 마약처럼 늙어감을 방심하게 만드는 짧은 효과를 선사한다.
앞으로 우리 부부는 얼마나 자주 이런 질문을 서로에게 던져야 하며, 그때마다 슬픈 현실을 깨달아야 할까. 삶은 원래 이런 것일까? 마흔을 넘어 중년에 접어들었지만, 삶은 여전히 모르겠다.
*"소설은 위안이 될 수 없다"는 말은 성석제 작가의 책에서 인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