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스승께 물어보고 싶은 말
'책' 이야기부터 시작을 해볼까 합니다.
그저 다른 사람보다 책을 조금 많이 읽는 정도이긴 하지만, 아주 오래전부터 책을 많이 읽었던 것은 아닙니다. 연애도 하고 술도 마시고 사람도 만나고. 그런 것들을 책 읽는 것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했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철이 많이 들었다 라는 생각이 듭니다만, 아직 멀었겠죠?
책을 읽은 건 '살아야겠다'라고 다짐하고 실행에 옮겼던 계기는 바로 다급함 이었습니다. 이러다 죽겠다, 내가 내 인생을 스스로 일궈가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끌려가듯 살아가며, 생각 없이, 사는 대로 살아가는 모습이 저 스스로에게도, 저를 듬직한 아빠로 바라보는 아이들에게도 실망을 남겨줄 뿐이었습니다. 정신은 점점 피폐해져 갔고, 언제나 탈출만을 꿈꾸며 하루하루를 버티던 시기에 만난 책이 신영복 선생님의 '담론'이었습니다.
내가 지금 바라보고 있는 모습들이 사실은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나에 의해서 필터링된 모습을 시각화한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보는 것이 그럴진대 '생각하는 것'은 얼마나 주관적일까요? 지금 읽어도 당시만큼의 충격, 위로, 평안을 얻을 수 있을지 궁금해지지만, 피폐해진 마음에 담론이라는 책은 너무나 훌륭한 안식처가 되어 주었습니다. 내가 너무 빠르게 살아왔구나, 너무 조급해했구나, 너무 편협했구나. 담론은 처음부터 끝까지, 책 한 장 한 장을 넘길 때마다 너무나 힘이 되는 가르침을 주었고, 신영복 선생님을 마음의 스승으로 생각하고 지금까지 살아오고 있습니다.
담론에 이어 강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처음처럼, 더불어숲, 개울아개울아너는 흘러 등등 신영복 선생님의 저서라면 가리지 않고 집어 들었고 무조건 받아 들어야겠다 라는 마음으로 읽기를 반복했습니다. 이런 맹신의 모습을 선생님께서는 바라지 않았겠지만, 저에게는 핵폭탄과도 같은 충격을 안겨주었기에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고요.
기억력이 좋지 않아서 대부분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선생님의 말씀 중에서 상대방을 이해하려 해야 한다, 그래야 내가, 세상이 올바른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맞는지 모르겠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상대방에 대한 이해'의 부분입니다. 나의 기준으로 생각하지 않고 상대방의 기준으로, 기준까지는 못하더라도 나의 경험에 빗대어 상대방의 상태를 짐작해보고 받아들이고 해석하려는 마음과 실천이야 말로 세상을 살아가는데 가장 필요한 미덕이 아닐까 라는, 지금도 여전히 그렇게 생각합니다.
최근의 일입니다.
다양한 형태의 콘텐츠를 제작하는 회사에 다니면서 일이 없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는 영상편집자에게 언제나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가 놀고 있는 원인은 나에게 있다, 그가 제대로 실력을 펼치지 못한 이유도 나에게 있다 라고. 왜 일이 없냐?라고 다그치며 억지로 일을 만들어내려 하지 않고, 스스로 발전의 기회로 삼을 기회로 생각하길 바랐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상대에 대한 이해의 한 틀에서, 저는 당연히 그렇게 미안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니더군요. 어찌어찌 알아보니 그는 저의 미안함을, 회사의 편안함을 이용하고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다른 직원이 아무리 바빠도 자신의 영역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본인의 입장에서 일은 안 하면서 회사에서 공부도 하고 실력을 쌓을 수 있고, 거기에 월급까지 꼬박꼬박 받으니 이보다 더 좋은 직장이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그걸 알게 된 순간 저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인간관계는 상호작용이 선순환되며 더 발전되어 갑니다. 상호작용은 쌍방 간의 일이겠지만, 어쨌든 누구 하나가 먼저 시작을 해야 하는 건 세상의 이치입니다. 나의 선행이, 나의 이해가 상대방에게 전달되고, 상대방이 더 나은 과정과 결과를 보여주려고 노력하면, 그 관계는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입니다. 그런 이상적인 선순환을 바라지만, 세상은 나의 기대, 바람과는 다르게 이를 이용하려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선생님께 여쭤보고 싶습니다. 조금 따져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