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졸업식에서 만난 나

아들을 배웅하며 과거의 나를 마중 나가다

by 보통엄마

올해 들어 가장 추운 날, 아들의 고등학교 졸업식이 열렸다.


우리 가족에게 올 한 해를 관통한 하나의 주제가 있었다면 단연 ‘아들의 대입’이었다.

그리고 오늘은 고3이라는 무거운 타이틀을 내려놓는 날이었다.


졸업식 몇 주 전부터 남편은 중학교 졸업식에는 참석하지 못했지만, 고등학교 졸업식은 특별하다며 휴가를 내겠다고 했다.


아들의 학교는 다른 학교들보다 졸업식을 유난히 일찍 치르는 편이었다. 아직 정시 원서도 쓰기 전이라 어수선한 시기였지만, 수시에 집중된 학교 분위기 때문인지 해가 넘어가기전으로 정해져 있었다.


졸업식의 주인공들은 강당 앞자리에 앉아 있었고, 방문객들은 뒤쪽에 서서 한 시간 남짓한 식순을 지켜봤다.

우리 때처럼 밀가루를 뿌리고 계란을 던지는 세리머니는 없었다. 준비된 영상과 미션 스쿨다운 축사와 기도가 차분히 이어졌다.


가장 기억에 남은 장면은 마지막 순서였다.

각 담임 선생님들이 아이들에게 한 마디씩 남기는 영상이 상영됐는데, 아들 반 담임 선생님의 모습이 유독 인상 깊었다.

선생님은 아이들 이름을 1번부터 마지막 번호까지 모두 외워 한 명씩 호명했다. 그리고 전체호명 끝에 짧은 한 줄의 메시지를 덧붙였다.


내가 감동한 지점은 이름을 외워 불렀다는 사실 그 자체가 아니었다.

호명하는 순간마다 선생님의 얼굴에 아이 한 명, 한 명을 떠올리는 표정이 고스란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알 듯 말 듯한 표정들이 찰나에 스쳐 갔다. 학급 아이들 모두를 잊지 않겠다는 마음 같은 것이 느껴졌다.


나는 그 장면을 끝까지 집중해 직관하고 싶었으므로 남편에게 얼른 휴대폰을 꺼내 영상을 찍으라고 재촉했다. 그리고 가족 톡방에 공유해 아들에게 평생의 선물처럼 남겼다.


예전의 나는 자식은 부모가 키운다는 좁은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아이가 클수록, 아이는 부모 혼자 키우는 존재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주변의 수많은 어른들의 관심과 도움 속에서 아이는 자란다. 결국 한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그 아이가 속한 사회가 함께 해내는 일이다.


새삼 아이의 초·중·고 12년을 함께해 준 담임 선생님들 모두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돌아보면 아이는 유난히 좋은 선생님들을 많이 만났다.


식이 끝난 뒤 강당에서 친구들과 사진을 찍어주고, 만화애니 입시를 함께 준비했던 낯익은 친구들에게 괜히 더 친한 척하며 덕담도 건넸다.

고생한 아들 친구들이 하나같이 다 내 아들처럼 느껴졌다.

전날 추위를 뚫고 꽃집에 들러 준비한 파란색 꽃다발도 아들의 품에 안겨주었다.


졸업식을 마친 뒤, 아들이 선생님을 도와드리느라 가방을 교실에 두고 왔다며 다시 교실로 올라갔다. 남편과 나는 아이를 따라 마지막으로 교실까지 가 사진을 찍었다. 아이가 고등학교 생활 동안 가장 오래 머물렀던 공간을 충분히 눈에 담고 나서야 발걸음을 돌렸다.


오늘따라 아이가 더 커 보였다.

롱패딩 때문인지 덩치도 유난히 듬직해 보였다.

‘아, 이제 다 키웠구나.’

졸업식 전날 병무청에서 입영 관련 안내장이 도착해서인지, 그 생각이 더 실감 났다.


운동장에 세워 둔 차를 타고, 평소 우리 가족이 좋아하는 자장면 집으로 향했다.

졸업식에는 역시 자장면이다. 우리 가족은 늘 그랬다.




집에 돌아와 문득 나의 고등학교 졸업식 사진을 찾아보았다.휴대폰이 아닌 사진기로 찍어 인화하던 시절의 사진이었다.


사진들을 들여다보다 보니, 그날 내 곁에는 아무도 없었던 것 같았다. 기억이 흐릿하지만, 친구들과 친구 부모님들을 찍어준 사진들만 여러 장 남아 있는 걸로 보니 내 예상이 맞는 것 같다.


그중 누군가 나를 찍어준 사진 한 장을 발견했다.

젖살이 빠지지 않아 포동한 얼굴, 하얀 숏패딩을 입고 멋을 낸 채 어깨를 귀까지 끌어올린 듯 특유의 어색한 포즈로 책상 위에 앉아 있는 열아홉의 내가 있었다.


사진을 보며 두 가지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왜 이렇게 살이 쪘지? 눈코입이 다 묻혔네!

그리고 또 하나, 우리 엄마는 없네. 나는 그때 아무도 안 왔구나.


내 졸업 사진 속에는 내 모습보단 친구들, 친구들의 부모님과 선생님들의 모습이 더 많았다.

나는 그 시절 내 열아홉을 조용히 애도했다. 그래도 친구들이 있어서, 시끌벅적한 소음과 어색한 웃음 속에 외로움을 숨길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더더욱, 아들에게는 외롭지 않은 졸업식을 남겨줄 수 있어서 뿌듯하고 행복했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요즘 자주 드는 생각이 있다.

행복의 열쇠는 밖에 있는 게 아니라, 오롯이 내 안에 있다는 생각이다. 젊은 시절에는 문밖 어딘가에 있을 거라 믿고 밖에서만 찾으려 애썼지만, 그럴수록 공허해졌다.


나를 정확히 모르는 사람들이 나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까?

내 인생과 상관없는 물건들이 나를 진짜로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까?


결국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나 자신이다.

내 안에서 발견하는 작은 행복이야말로 진짜다.

그것이 현실을 소중히 살게 하고, 내 마음을 현재에 머물게 해 준다.


이번 졸업식은 의도치 않게, 그런 깨달음을 다시 한번 선물해 주었다.


아들을 위한 졸업식이었고,

12년간 아들을 키워낸 나를 위한 졸업식이었으며,

나의 열아홉 살 상처를 조심스럽게 토닥이는 졸업식이었다.


30년 전 나의 졸업식 사진 속, 살찐 얼굴과 어색한 포즈를 보며 가족 모두가 깔깔깔 웃었다.

그렇게 하루가 또 다정하게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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