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이 된 내 이름은 '미쓰김'

나르시시스트 엄마에게 자란 딸은 '싸움닭 미쓰김'으로 진화하고 있었다.

by 보통엄마

유독 뜨거운 여름을 지나고 있는 상고 졸업반 교실엔 먹다 남긴 옥수수처럼 듬성듬성 빈자리가 많았다. 그렇다고 조용하지만은 않았다. 취업 후 수습기간을 마치고 잠깐 학교로 회군한 아이들의 무용담은 교실을 단숨에 시장통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매일아침 칠판 한편엔 지원가능한 '오늘의 일자리'가 업데이트되었다.


나는 아빠의 죽음 이후 공부대신 '돈 벌기'에 집중했음에도 성적이 좋았다. 그 덕에 이름만 대면 알만한 대기업이나 은행 같은 곳에 지원할 기회를 얻었지만 매번 면접단계에서 떨어지고 있었다.


그 시절 나는 나에게 무관심했고, 자신을 전혀 돌보지 않았다. 사람채용을 전문으로 하는 면접관들의 눈에 내 '상실된 자존감'은 아무리 급하게 포장한들 모두 읽혔을 것이다.


자존감이 부족하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나는 자존감이 뭔지도 모르는, 그냥 '자존감 제로'의 상태였다. 태어나 19년간을 '나르시시스트 엄마'의 '희생양 딸'로 살면 원치 않아도 이런 것들이 내재화된다.


- 나는 무언가를 해낼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 나는 내 삶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 수 없다.
- 내 모든 실패는 '부족한 나의 탓'이므로 다시는 시도하지 말자.


엄마는 지난 19년 동안 가스라이팅, 비난, 분노, 후버링 등을 마치 매일 마시는 공기처럼 나에게 주입했다. 결국 나를 본인이 조종하기 쉬운 '적절히 취약한 상태'로 만들었다.


이런 행위는 일반적인 '부모자식' 관계가 아니라 '포식자와 먹잇감'의 관계에 가까웠지만 엄마기준으로 보면 목적대로 자식농사에 성공한 거나 다름없다.


생각해 보면 '나르시시스트 엄마'는 엄마라기 보단 '영혼 파괴자'에 가깝다. 자식을 본인의 필요에 의해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상태'로 만드는 것이 '양육의 목적'인 사람이 진짜 엄마가 맞는가?


내가 경험한 나르시시스트엄마의 이런 행동들은 보통엄마들이 본인의 미성숙함 때문에 저지르는 실수와는 결이 다르다. 본인이 스스로의 문제점을 자각하지 못하므로 개선될 수 없는 질환이나 질병에 가깝다. 그것이 이 비극적 관계의 본질이다.


'엄마'라는 단어에는 '보호', '공감', '지지', '조건 없는 사랑'이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발을 헛디디는 것과 같은 예상치 못한 위험의 순간에 본능적으로 '엄마!'라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는 것이다.


엄마가 있었지만 엄마가 없었던 열아홉의 내 모습은 마치 망망대해에 떠 다니는 '부서진 뗏목'과 같았다.


번번이 면접에서 고꾸라지는 나를 보며 담임선생님은 특단의 조치를 취하셨다. "너에게 잘 어울리는 곳이 있어" 라며 추천해 주신 곳은 바로 보험회사였다. 선생님의 말씀에 따르면 이곳은 외모를 크게 따지지 않고, 은행권처럼 편부모에 대한 핸디캡도 없으며, 대기업처럼 면접 비중이 높지 않다는 것이 이유였다.


선생님의 말씀은 현실적이었고, 결과적으로 옳았다. 솔직히 보험회사가 아니었다면 나는 전교권의 성적에도 불구하고 성적대비 취업을 가장 못한 올해의 졸업생이 될 판이었다.


또한 본의 아니게 다른 친구들의 면접 기회까지 뺏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어디든 들어가야 했다. 선생님의 응급조치 덕분에 나는 합격했다.


당시 보험회사는 연봉과 복지 수준이 상당히 좋았다. 1995년도 당시 초봉 50만 원에 보너스 600% 였다. 두 달에 한 번씩 보너스가 나왔고 이것저것 추가로 나오는 수당들도 많았다. 그동안 공장알바, 야간알바 등등 몸 쓰는 걸로 겨우 최저시급이나 받던 날들에 비하면 앉아서 돈 버는 '꿀보직'인 샘이다.


나에게도 고등학교 졸업 전 수습 3개월의 시간이 주어졌고 고3 9월부터는 등교대신 출근을 하였다. 교복을 벗고 유니폼을 입었지만, 내 얼굴은 아직 앳되었다. 나는 그곳에서 '커피 타는 미쓰김'으로 통했다.


"미쓰김~ 나는 설탕 둘, 프림 둘!"
"미쓰김~ 나는 커피 물 3분의 2만~"
"미쓰김~ 나는 커피 안 먹으니까 오렌지 주스~~"
"미쓰김~ 오늘 커피 맛있다. 커피실력이 점점 느네~~"


어떤 날은 출근부터 퇴근까지 백 잔이 넘는 커피를 타기도 했다. 그곳은 마치 이 세상의 축소판과 같았는데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접할 수 있었다.


나르시시스트 엄마 밑에 자란 나는, 내 이름으로 불리기보단 '미쓰김'으로 불리는 게 내 옷을 입은 것처럼 편했다. 그 당시 나는 스스로를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할 사람이라고 규정했다.


타고난 머리로 일은 곧잘 했지만 사람들의 눈치를 과하게 봤고 상대의 저조한 컨디션마저 부족한 내 탓이라고 여겼다. 지금생각해 보면 피해망상 정신병 수준이다. 나보다 타인의 기분에 맞춰야 하는 인간관계는 늘 피곤했다. 나는 점점 그 피로도를 견디지 못하고 회피하는 법을 택했다.


타인의 칭찬이나 대가 없는 선의에도 숨겨진 저의를 찾기 바빴다. 그렇게 엄마가 내 눈에 끼워 넣은 필터를 통해 본 세상은 '공포 자체'였다.


'나를 낳아준 생모조차도 '조건부 사랑'을 하는데 생판남이 조건 없이 베푸는 선의가 현실에 존재한다고?'

이것은 나에겐 마치 '판타지 소설'처럼 느껴졌다.


나는 사무실 뒤편, 작은 탕비실 공간이 세상 전부라 여겼던 앳된 열아홉의 나를 애도한다.


"00야! 이쁘게 꾸밀 나이인데, 한창 좋을 나이인데, 화장끼 하나 없는 앳된 얼굴로 하루 종일 이 좁은 탕비실에서 커피씨름 중인 네가 너무 안쓰럽다.
중학교 동창 중에 너보다 공부를 못했던 애들도 대입시기가 되니 교대에도 들어가고, 서울 어느 여대에도 합격했다며 소식을 전하는데 ,
그런 소식 들으며 커피나 타고 있는 자신이 얼마나 초라하게 느껴졌겠니... 엄마가 많이도 미웠지? 당연해. 네가 얼마나 똘똘하고 명석했는데.. 그 반짝임을 가져간 엄마가 당연히 밉지.
그런데 너 정말 대단한 아이인 거 알아? 그 상황 속에서도 꿋꿋이 책임을 다했으니 말이야. 다른 사람에겐 그저 커피였지만, 너에겐 생존이었다는 거 나는 알아. 고생 많았어.
00야! 너 조금만 지나면 정말 행복해져. 행복이 바로 코앞이니까 절대로 네 행복을 포기하지 마. 거의 다 왔어. 조금만 힘내. 포기하지 마. 포기하기엔 너무 행복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어."


망망대해의 '부서진 뗏목'은 그렇게 '커피 타는 미쓰김'으로 성인 데뷔를 했다. 이 뗏목은 방향을 바꿀 돛도, 쉴 수 있는 방파제도 없었다. 밤이면 등대조차 없어 홀로 어둠을 견디며 동이 트길 기다려야 했다. 어떤 날은 차라리 거센 파도에 부서져 바다 밑으로 가라앉길 바랐다. 너무 고단했으므로...


망망대해에 홀로 남겨진 나는 너무 고단했다. 그저 그곳에는 오랜 기간 동안 부서진 뗏목과 바다 단 둘 뿐이었다.


부서질지언정 가라앉는 행운마저 허락되지 않던 그 뗏목은, 계속되는 험한 파도를 홀로 겪어내며 진화하고 있었다. '커피 타는 미쓰김'에서, 제 몸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발톱을 세우는 '싸움닭 미쓰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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