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치’라 불렸던 먼지 같은 아이

나르시시스트 엄마가 나를 세상에 규정하는 방식

by 보통엄마

“우리 딸 예쁘네”라는 말은 내가 자라면서 엄마에게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그래서 그 말은 나중에 커서 내가 엄마가 된다면 나의 딸에게 가장 많이 해주고 싶은 말이기도 했다.


쉰 살이 된 지금, 빛바랜 사진 속의 어린 나를 들여다보면, 빼어나진 않아도 제법 귀엽고 사랑스러운 구석이 있는데 엄마는 그 말이 왜 그렇게도 아까웠을까? 돈이 드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어린 나의 눈에 나보다 못나 보이는 옆집 순이도, 코 찔찔 앞집 철수도 그들의 엄마에게만큼은 이쁘고 멋지단 소리를 듣는데, '나는 아무래도 불량품인가 보다.'라고 나는 나를 정의 내렸다.






사춘기가 한창이던 어느 여름날이었다.

아빠와 남동생, 그리고 친척들이 모여 있던 북적이는 자리였다.


엄마는 그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띄우기 위한 ‘제물’로 오늘도 나를 선택했다.


“OO 이는 태어나자마자 너무 못생겨서, 그냥 둘둘 말아 구석에 처박아뒀잖아. 꼭 ‘뭉치’ 같아서 아무도 안 안아줬어. 그래도 지금 이 정도면 사람 된 거지, 안 그래?”


칭찬인지 모욕인지 모를 엄마 특유의 화법은 늘 나를 다른 사람들 앞에서 깎아내렸다. 이 말을 들은 나를 제외한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 순간 내 얼굴은 화끈거릴 만큼 달아올랐지만, 간만에 피어난 가족의 웃음꽃에 찬물을 끼얹고 싶지 않아 그 모멸감을 어색한 미소로 참아냈다. 그 어색한 미소를 지을 때 내 입술은 파르르 떨렸다.


나는 늘 내 감정을 건강히 표출하는데 미숙했다. 나르시시스트 엄마로부터 배운 감정표현 방식은 '억압 혹은 폭발' 둘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이 짧은 일화는 내가 원가족 내에서 어떤 위치였는지, 그리고 엄마가 나에게 어떤 방식으로 본인의 열등감을 '투사'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나는 요즘 유행하는 ‘딸바보’라는 말을 들으면 생각이 많아진다. 나도 요즘 같은 세상에 태어났다면 '딸바보'의 수혜자가 될 수 있었을까? 나는 정확히 말할 수 있다. 요즘 같은 세상에 태어났어도 부모가 나르시시스트라면 나의 운명은 이미 ‘뭉치’로 확정되어 있다.


나는 엄마가 나를 지칭했던 ‘뭉치’가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는 모른다. 다만 그 단어 속에 ‘가치 없는 존재’라는 뜻이 담겨 있다는 것만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구석에 굴러다니는 정체 모를 먼지 뭉치처럼 말이다.


엄마는 어린 딸을 기어코 '뭉치'로 설정하고 본인을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피해자'로 규정했다. 나르시시스트 엄마는 주변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이 매일 마시는 물처럼 필요했다. 가장 손쉽게 그 관심과 사랑을 착취할 수 있는 대상이 바로 딸인 나였다.


엄마는 어린 자식들에게 그 슬픔과 분노를 주기적으로 쏟아냈다. 어린 나는 슬픔의 원인이 꼭 뭉치 같은 나 때문인 것만 같아 그녀의 통제 안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갔다.


내가 성장해 그녀의 손아귀를 벗어날 기미가 보일 때마다 엄마는 세상이 무너질 듯 불안해했고, 엄마의 배우 못지않은 눈물연기에 속아 결국 그녀 곁을 맴돌았다. 그때마다 덤으로 얻는 죄책감은 내 삶의 훈장처럼 늘 나를 따라다녔다.


반면, 엄마의 트로피였던 ‘골든 차일드’ 남동생은 이 기묘한 구조의 진정한 수혜자였다. 그는 엄마에게 가벼운 등짝 스매싱을 당하면서도, 나와 엄마로부터 모든 편의를 제공받았다.


남동생이 나의 권리를 빼앗아 갈 때마다 엄마는 늘 방패를 자처했다.


“애가 워낙 칠칠치 못하잖니. 이번에도 핸드폰을 잃어버렸다는데 어떡해, 사줘야지. 내가 아주 따끔하게 혼냈으니까 이번만 넘어가자.”

결국 새 핸드폰을 구매하는데 드는 비용은 당연한 듯 내 주머니에서 나갔다.







그렇게 ‘뭉치’라 불리며 자란 딸의 인생은 과연 어땠을까?


이 글은 나르시시스트 엄마라는 거대한 벽 앞에서, ‘스케이프고트(희생양)’로 던져졌던 한 딸의 담담한 생존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