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한번, 엄마의 샌드위치

나르시시스트 엄마가 보통엄마 노릇을 하고 싶었던 단 하루

by 보통엄마

이삿날이면 우리 집 밥상엔 항상 고추장찌개가 올라왔다.

빨간 국물 속에 애호박과 감자를 넘치게 썰어 넣고, 비계가 반인 돼지고기를 숭덩숭덩 넣어 팔팔 끓인 찌개 한 그릇. 거기에 밥 두 공기를 비워내는 건 기본이었다.


코를 찌르던 칼칼한 냄새는 우리가 또 다른 낯선 곳에 적응해야 한다는, 묵직하고도 매운 신호였다.


당시엔 이사할 때마다 주민등록 초본에 우표 같은 증지를 붙이곤 했다. 엄마는 초본 앞뒤를 다 채우고도 모자라 이사를 스무 번도 더 다녔다며, 셋방살이의 고단함을 훈장처럼 토로하곤 했다.


고된 이삿날마다 맛보던 그 맵디매운 고추장찌개는, 어쩌면 엄마의 고단한 인생을 그대로 닮아 있었는지 모른다.


반복되는 이사 탓에 나는 좀처럼 친구를 사귀지 못했다. 유치원도 다니지 못했고, 일곱 살 때 미술학원을 한 달 다녀본 게 내 교육의 전부였다.


동네 골목을 기웃거려 봤지만, 정들만하면 떠나야 하는 뜨내기 생활 속에서 마음 붙일 곳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 이사한 이곳에선 나의 첫 공식적인 사회생활이 시작될 예정이었다. 바로 국민학교 입학이다.


주인집 대문 옆 쪽문으로 들어가야 하는 허름한 반지하 방이었지만, 이전에 살던 지하방보다는 제법 구색을 갖추고 있었다. 이 집이라면 친구를 초대해 놀아도 괜찮을 것 같았다.


나는 국민학교 1학년이 된다는 사실이 못내 좋았다. 평소 갖지 못했던 ‘새것’들이 모두 내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교과서에는 내 이름을 정성스레 써넣었다. 이건 남동생도 뺏어가지 못하는 오롯한 내 것이었다. 하얀 실내화도 예뻤고, 파란 체육복도 좋았다. 기차 모양 연필깎이가 좋아 다 깎인 연필을 넣고 또 깎다가 엄마에게 혼이 나기도 했다. 새로 산 필통 속 공주 연필들이 가방을 메고 뛸 때마다 딸깍 대며 경쾌한 소리를 냈다.


이번엔 꼭 친구를 사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앞니가 두 개나 빠진 못난이였지만 상관없었다. 나는 누군가 다가와 주길 기다리는 성격이 못 되었다. 기다리고 빼는 건 가진 자들이나 하는 우아한 짓이다.


엄마의 사랑을 두고 벌이는 남동생과의 경쟁에서 나는 늘 패자였기에, 친구마저 놓칠까 봐 마음이 조급했다. 이럴 때 필요한 건 스피드였다. 나는 입학한 지 일주일 만에 한 친구를 우리 집으로 초대했다.


하얀 피부에 예쁜 단발머리, 화사한 원피스를 입은 그 친구는 내 눈에 공주님 같았다. 친구와 집에서 노는 오랜 꿈을 이룰 수 있을까? 설레는 마음으로 낡은 미미 인형을 꺼내 두고 수다 떨 준비를 했다.


여러 번의 간청 끝에 엄마의 허락을 받아냈다. 공장에 다니던 엄마는 그날만은 남동생을 데리고 일터로 나갔다. 학교만 다녀오면 남동생을 돌봐야 했던 내 일상에서, 처음으로 내가 내 시간의 주인이 된 날이었다. 친구와 노는 것도 신이 났지만, 엄마가 내 요구를 들어주었다는 사실 자체가 나에겐 무엇보다 큰 이벤트였다.


나는 쪽문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친구 손을 꼭 잡고 반지하 우리 집으로 향했다.

꺼진 가스레인지 삼발이 위, 쟁반 하나가 놓여 있었다. 그 위엔 엄마표 샌드위치 두 개가 쿠킹호일에 정성껏 싸여 있었다. 케첩에 버무린 양배추와 계란프라이가 들어간 시장표 샌드위치. 오직 나와 내 친구를 위해 엄마가 미리 만들어두고 간 선물이었다.


국민학교 1학년. 엄마도 그때만큼은 보통 엄마 노릇을 해보고 싶었나 보다. 나르시시스트 엄마라고 하면 흔히 괴물을 떠올리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차라리 매정하기만 했다면 미워하기라도 했을 텐데. 가끔씩 전해지는 그 찰나의 따스함 때문에 나는 늘 그 사랑에 목말라하며 곁을 떠나지 못했다.


이날을 이토록 선명하게 기억하는 건, 내 인생에 그만큼 특별했던 단 하루였기 때문이다. 늘 남동생만 챙기던 엄마가 온전히 나를 위해 마음을 써준 첫 경험. 1학년 학부모라는 설렘이 엄마에게도 잠시나마 '보통 엄마'가 되고 싶은 동기를 부여했던 것 같다.


그날 이후로 나는 다시 혼자 남동생을 돌보는 일상으로 돌아갔지만, 그 샌드위치 한 조각은 엄마에게 면죄부가 되었고, 나는 그 따뜻함을 다시 얻고 싶어 더욱 엄마 말을 잘 듣는 착한 딸이 되었다. 하지만 슬프게도 그런 날은 다시 오지 않았다. 딱, 그 하루뿐이었다.


신나게 시작했던 나의 1학년도 시들어갈 즈음, 우리는 또다시 이사를 준비하게 되었다.


어느 주말 아침이었다. 오토바이 소리가 요란하게 동네를 깨우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창문을 열려는데 엄마가 다급히 막아선다. 집안에 사람이 있는 걸 들키면 안 되니 숨소리조차 내지 말라고 했다.


아빠에게 빚을 받으러 온 사람들이라고 했다. 아빠는 노는 것을 좋아했고 늘 사업병에 걸려 있었다. 친구와 동업하다 진 빚이 우리 집 문 앞까지 들이닥친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또, 샌드위치의 추억이 잊히기도 전에 낯선 곳으로 떠날 준비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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