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천천히, 조용히 숨을 고르고 싶을 때
하루가 다르게 시간이 빠르게 지나간다. 업무도 매일 정신없이 흘러가고, 머릿속은 늘 복잡한 생각들로 가득하다. 가끔씩 지금 어디에 집중하고 있는지 스스로도 묻게 된다. 그럴 때마다 문득, ‘아무 생각 없이 몰입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딱히 취미라고 부를 것도 없던 나에게 떠오른 건, 예전부터 집 오는 길에 보이던 도자기 공방이었다. 그날은 왠지 마음이 동해서 고민없이 수업을 신청했다.
처음 물레 앞에 앉았을 땐 낯설고 어색했다. 선생님의 시범은 쉽게만 보였는데, 막상 내 손으로 흙을 만지니 생각처럼 되지 않았다. 중심을 잡는 것부터가 어려웠고, 손끝에 온 신경을 집중하지 않으면 흙은 금세 틀어져 버렸다.
힘을 세게 준다고 모양이 잡히는 것도 아니고, 느슨하게 한다고 해서 자유롭게 형태를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물레의 회전 방향과 흙의 결을 천천히 느끼며, 끈기 있게 균형을 잡아가야 했다. 잘하려고 애쓰기보다, 흙이 내 손에서 천천히 형태를 찾아가는 걸 지켜보는 게 재밌었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든다는 느낌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물레를 돌리고, 형태를 깎고, 다듬는 동안에는 머릿속이 조용해진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고, 그저 손끝의 감각에만 집중하게 된다. 그렇게 몰입하고 있으면, 어느새 2시간 수업이 지나 있다. 체감으로는 겨우 한 시간이 조금 넘은 정도다. 이렇게 시간이 빨리 흘러간다는 건 그만큼 이 순간에 집중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내 일상에서 도자기 수업은 잠시 나를 쉬게 해주는 고요한 시간이 되었다. 도자기를 만들면서, 무언가에 ‘잘해야 한다’는 압박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졌다. 너무 잘하려고 하지 않으니,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마음이 생겼다. 아마 나는 그 감정으로 도자기를 빚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주어진 일에 결과가 보이지 않으면 스트레스 받는 편이라, 빠르게 초안을 완성하고 디테일을 만들어 간다. 하지만 도자기는 그 성격을 받아주지 않았다. 내 머릿속에 그려둔 형태를 만들기 위해선 몸이 먼저 움직여선 안 됐다. 흙은 기다림을 요구했고, 형태는 빠르게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손끝에서 천천히, 차분하게 찾아가야 했다. 아직도 그 과정은 쉽지 않다. 그래도 이젠 흙의 중심을 혼자 잡고, 천천히 작업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어느덧 3개월째 도자기를 배우고 있다. 처음엔 그저 머릿속을 비우고 싶다는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매주 흙을 만지고 물레를 돌리는 시간이 쌓이면서 도자기를 만드는 일이 나에게 아주 조용한 변화를 가져다주고 있다는 걸 느낀다. 늘 결과를 재촉하던 내 성격, 금방 답을 내고 싶어 하던 태도가 흙 앞에서는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면서 마음속 어딘가가 조금씩 부드러워지고 있다. 여전히 서두르고 실수도 많지만, 예전의 나보다 한걸음 느리게, 더 집중해서 지금에 머물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