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퇴진 운동 된 철도파업, 포고령에 한때 혼란도
계엄의 밤 휴대전화가 울렸다.
“철도파업 막으려고 비상계엄 했나요?” 기자가 물었다.
“계엄은 저희(코레일)가 한 게 아니에요”
“파업은 예정대로 해요?”
“파업도 노조가 하는데 거기도 경황이 없지 않을까요?”
“전공의를 처단한다는데 파업하면 노조도 처단하나요?”
“처단은 계엄사령부에서 한다고 발표했잖아요”
2024년 12월 3일 23시 윤석렬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명분은 “공산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대한민국을 수호하고,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기자들도 납득하기 힘들었나보다. 계엄 선포 얼마 지나지 않은 심야에 연락이 왔다. 늦은 시간 미안하다는 양해와 함께 긴박하게 질문을 던졌다.
모든 언론사가 비상 출근했다. 모 방송사는 부장급 기자가 뉴스를 진행했다. 술에 취해 취재지시를 하지 못한 언론사 간부가 문책받았다고 전해진다.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는 엄포에 신문사가 폐쇄될까 염려도 했다고 한다. 군이 특정 언론사를 장악하려던 계획도 하달되었다.
계엄의 파장을 취재하면서 철도파업에도 기자들 눈이 쏠렸다. 일부는 포고령에 주목했다. 포고령은 비상계엄이 선포되었을 때 국민의 안전과 공공질서 유지를 위해 발령하는 법적 명령이다. 강제조항이다. 이번 포고령 네번째는 “사회혼란을 조장하는 파업, 태업, 집회행위를 금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계엄선포 이틀 후인 12월 5일은 철도노조가 파업을 예고한 날이다. 파업을 앞두고 사측과 막판 협상을 이어가던 철도노조 집행부는 혼란스러웠다. 포고령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도 문제인데, 비상계엄 자체의 정당성에도 의문이 있어 노조에서도 판단을 유보하고 있었다. 자칫 계엄사의 본보기 내지는 저항군의 첨병에 설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혹자는 전공의 부분에 주목했다. 48시간 내에 복귀하지 않으면 처단한다고 했으니 처단 경과를 보고 파업 여부를 검토하려 했다는 후문이다. 코레일 경영진에게 자문을 구했다고도 한다.
국회는 4일 새벽 1시께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을 상정해 전원 찬성으로 의결했다. 비상계엄령을 선포한 지 2시간 35분 만이다. 헌법재판소 선고문대로 시민들의 저항과 군경의 소극적인 임무 수행 덕분에 국회는 신속하게 비상계엄 해제요구를 결의할 수 있었다.
또한 선고문에는 “비상계엄하에서 기본권을 제한하기 위한 요건을 정한 헌법 및 계엄법 조항, 영장주의를 위반하여 국민의 정치적 기본권, 단체행동권, 직업의 자유 등을 침해했다”고 명시해 추후 계엄에도 파업을 할 수 있는 길을 터줬다.
비상계엄은 해제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12월 14일 국회에서 204명의 찬성으로 탄핵소추안도 가결되어 대통령 직무는 정지되었다. 그 사이 철도노조 파업은 예정대로 진행되었으나 메인 뉴스에는 등장하지 않았다. 신문 1면, 뉴스 헤드라인은 계엄 소식뿐이었다. 신문 10면 사회면에나 등장했다.
파업은 ‘근로조건’보다 ‘정권 퇴진’의 투쟁이 되었다. 코레일에서도 임시 기자실을 마련했는데, 첫날 이후 하루 두세 명 정도만 찾아왔다. 바삐 계엄 기사를 쓰고 있었다.
철도파업은 11일 마무리됐다. 조합원 참가율 20%대 약해진 동력과 탄핵 정국과 맞물려 장기화 가능성도 제기됐으나 당시 야당의 중재로 실무교섭을 재개했다. 철도 노조가 준비했던 ‘총파업 대회’도 취소했다. 협상이 타결됐다.
계엄의 여파로 파업 대응도, 평소 홍보도 진행할 수 없었다. 관심 자체가 시들했다. 혹시라도 파업 경과에 대한 문의가 있을까 싶어, 기고 형식으로 정리해놨다. 2,000자 정도 글인데 본론 다섯 단락은 생략했다.
<홍보용 기고>
'정국 요동' 산적한 철도과제 해결키는
철도파업 철회에 ‘시민 환영’…임금체불·4조2교대 등 노사쟁점 일단락
정국이 요동친다. 계엄선포 후폭풍이 거세다. 내란의 대가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었다. 진짜 ‘국민의 힘’은 광장에서 불타올랐다. 대통령 직무가 정지됐고 여당 수뇌부도 바뀌었다. 용산은 사실상 식물상태다. 정부 부처의 수장도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받고 있다. 아니면 사임이거나 동반 탄핵상태다. 국정 방향키의 향방도 불확실하다.
정국의 파고는 모든 이슈를 덮었다. 철도노조 파업도 벌써 잊혀졌다. 요란했던 231억 원 임금체불도, 공기업 중 유일하게 기본급의 20퍼센트를 제하고 받는 성과급 문제도 사라졌다. △임금 2.5% 인상 △4조 2교대 근무체계 개편 △인력충원 △성과급 문제 개선 노력 등의 합의사항은 파업에 들어가기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파업 성과도 목적도 흐려졌다고 철도 관계자는 말한다. 동력을 상실해 파업 철회를 위한 명분 수준의 합의만 필요했다고 덧붙인다. 파업이 길어졌다면 주목은커녕 비난에 휩싸일 게 뻔하다. 파업도 정세를 따라야 한다는 게 뼈저린 교훈이다. 결과적으로 파업 철회는 현명한 선택이었다. 공론화된 문제들은 향후라도 해결할 여지를 남겼기 때문이다.
파업 전 거론된 철도의 핵심 현안도 현재 진행형이다. 어수선한 정국에 ‘문제 해결의 키’를 누가 쥘지 불확실하지만 누군가는 짚고 넘어가야한다.
(중략) “파업 쟁점과 주요 과제 5 단락”
시계 제로의 정국 속 코레일 현안이 묻힐지도 모르지만 문제들을 공론화하길 바란다. 위축되지 않고 화두를 던지고 실마리를 찾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