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우리’, 서툰 사랑을 위한 씻김굿

by 문좀열어주세요

주말 아침 7시 좀 넘어 용산역 CGV 7층에서 조조영화로 ‘만약에 우리’를 봤다. 두 번째이다. 일주일 전 아내와 보고, 다시 혼자 봤다. 허락이 필요했다. 20대 친구가 연인이 되고 결국 각자의 길을 가는 사랑 이야기가 내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추억 속 초라한 나의 은호와 빛나는 정원을 찾아 헤맸다.


첫 관람 때 눈물 훔치는 나에게 아내는 티슈 3장을 먼저 건네줬다. 중반부터 오열하는 내 손에 티슈가 통째로 쥐어졌다. 엔딩크레딧이 올라가고 가수 임현정의 "사랑은 봄비처럼 이별은 겨울비처럼" OST 음악이 줄어들 때까지 멍하니 자리를 지켰다. 상영관 밖 밝은 곳으로 나온 우리 눈은 퉁퉁 부어있었다.


아내는 왜 울었는지 묻지 않았다. 나도 말하지도 묻지도 않았다. 남자는 인생의 초라한 순간에 하필 좋은 사람을 만난다. 영화가 끝나고 생선 타코와 나초로 점심을 때우며 술 한잔이 간절했다. 집에 가자마자 아내와 나는 캔맥주에 소주를 섞어 마셨다.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한 어느 날 새벽 2시에 깨서 멍하니 주인공 은호와 정원을 생각했다.(사실 낮에 아메리카노를 세 잔 마셨다.) 결국 잠들지 못했다. 은호와 정원을 다시 보고 싶었다. 우느라, '나도 그랬을까?; 생각하느라 못 본 장면도 많았다. '재관람해야겠다.'

조조 상영관엔 남자 5명뿐이었다. 모두 혼자였다. 나는 남녀 주인공 둘을 기리며 1+1 = 11, E11 자리를 선택했다. 정중앙이었다. 내 뒤로 날카로운 고깔 모양의 ’독수리 오형제‘ 대형으로 네 자리가 찼다. 어둠 속에 관람객 얼굴은 묻혀있었지만 서른 후반, 사십대로 보였다. 모두 울지 않았을까?

2회차 관람에선 우느라 놓쳤던 장면이 보였다. 정원이 ’끓는 물을 부어놓고 간 컵라면‘, ’ 소파가 들어가지 않는 대문 크기‘, ’태풍, 고속버스와 비행기, 택시, 야시장, 포장마차, 모델하우스 등등...‘ 이번에는 정원의 편에 내가 있었다. 첫 번째는 젊은 내 시절을 은호에게서 보았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 영화는 한 편의 씻김굿이다. 자칫 잿빛으로 기억하고 있을지 모를 사랑을 천연색으로 채색해 주는 영화다. 그 시절 서로에게 전부였다고, 이제라도 다시 확인할 수 있게 한다. 미련으로 남아 떼어진 심장을 가슴 깊이 소중히 묻어둘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준다.


20대 은호와 정원은 사랑에 빠진다. 하필이면 가장 서툰 시절에 완벽한 사람을 만난 은호. 현실이 서로의 사랑을 감당하지 못하고, 세상이 둘을 포용할 수 없을 때 둘은 헤어진다. 정원이 놓아주고 은호는 잡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있다. 스스로 짐조차 짊어지기 버거운 인생의 순간이 찾아온다. 내 것만도 감당하기 지칠 때 서로의 짐을 덜어주다 상처를 준다. 깎이고 날카로워진 마음이 사랑하는 이의 마음도 도려낸다. 더 베풀고 싶은데 그럴 수 없는 은호에게서 꿈도, 사랑도 멀어진다. 좌절은 무기력하다가 분노로 폭발한다.

우리는 모두 제일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장 큰 아픔을 준다. 조울증처럼 사랑이라는 감정의 한 극단에 이른 마음은 다른 극단으로 큰 진폭을 그리며 상처를 준다. 가감 없이 사랑과 상처의 양극단을 오간 마음은 가장 가까운 사람을 다시는 볼 수 없게 만든다.

정원은 은호와 마음을 확인하는 밤을 보낸 후 도망친다. 사랑의 시작이 무섭다며, "너까지 잃으면 나 진짜 돌아갈 데가 없어진단 말이야"라고 말한다. 정원을 잡기 위한 은호의 고백은 이별 플래그이다. "날 왜 잃으냐"라고, "내가 진짜 잘할게"라며 심장도 떼준다는 은호의 말이 허망해질 거라는 걸 우린 직감한다. 행복이 정점에 오를수록 언젠가 다가올 헤어짐을 예고한다.

너에게 꼭 필요해 주고 싶었던 밝은 햇볕도, 네가 간절히 바라 끌어왔던 붉은 소파도 헤어지는 순간에는 있어야 할 곳을 잃는다. 햇볕은 고작 커튼에 막히고, 소파는 좁은 대문도 들어가지 못한다. 소소한 행복을 채워주던 그 보잘것없는 노력조차 힘겨워지는 순간 이별은 다가온다. 하찮았지만 온전히 주고 싶었던 선풍기 바람도 나를 향해 돌아 세운다.


기껏해야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느끼는 순간, 기껏 해주던 마음 씀씀이도 덧없다 느껴진다. 기껏 누리던 정성이 떠났음을 느낀 정원이 선택할 수 있는 건 이별뿐이었다.


정원은 컵라면에 물을 붓고, 뚜껑에 쇠젓가락을 가지런히 올리고 떠난다. 마지막이라도, 소소하지만 따뜻한 한 끼를 남겨놓고 함께 있던 집에서 나온다. 그녀는 본인이 베풀 수 있는 그 정도 한 끼면 견딜 수 있었지만 은호는 본인조차 추스를 수 없이 나약해지자, 정원을 붙잡을 수 없었다.


정원의 꿈은 마음의 집이었다. 잿빛 콘크리트 건물 속 서울에서 가족의 위안이 있는 공간이었다. 동호대교에서 친구들과 외쳤던 소원, ’서울의 집‘은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34평 아파트가 아니었다. 까친 뒤꿈치로 가파른 경사를 오르는 옥탑방이라도 서로를 반기며 하루 피로를 덜 수 있는 포근한 곳이라면 충분했다. (10년 후 건축사의 꿈을 이룬 정원은 젊은 시절 이미 누린 ’서울의 집‘이 아닌 파주에 집을 마련한다.)


서로를 포기한 둘은 각자의 꿈을 이룬다.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고통을 겪으면서도 정원은 건축과에 편입하고, 차근차근 꿈에 다가간다. 은호도 어지럽혀진 방을 정리하고 게임개발 과정을 하나둘씩 손본다. 서로에게 쏟았던 모든 것이 온전히 스스로에게만 모아질 때 꿈은 행로를 찾는다.


이별의 이유는 반지하도, 햇볕도, 소파도, 선풍기 바람도 아니었다. 시절이 단지 그랬을 뿐이었다. 지하철 출입문 앞에서 정원을 잡았더라면 절망 속에서도 영원히 함께할 수 있었겠지만, 나락 속 인생이 본 궤도를 찾기 위해서는 가장 소중한 희생이 필요했다. 소원을 이루기 위한 '재물'은 언제나 가장 소중한 대상이다. 반보 뒷걸음은 처연하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10년이 흐르고, 태풍은 다시 그들을 한 공간에 머물게 한다. 16년 전 태풍으로 시작된 인연은 청춘의 6년을 휩쓸고 세상을 흑백으로 고착시켰지만, 진솔했던 서로의 사랑을 터놓고 말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준다. "그 시절 둘은 정말 서로를 사랑했다."라고...


은호는 정원에게 말한다. "다 주고 싶었는데, 뭐든"

정원은 답한다. "다 받았어, 모두"


흑백 세상은 색상을 회복한다.


(생각 더하기)


회한으로 남은 사랑은 풀지 않아도 아름다울 수 있을까?


기세를 몰아 연애 드라마 ’이 사랑도 통역될까요‘도 몰아보고 ”사랑은 봄비처럼...“ OST도 1시간 내내 틀었다. ’출발비디오 여행‘의 9분짜리 영화 요약 유튜브는 수없이 봐서 대사를 다 외울 정도.

영화를 보고 나와서 아내에게 ”소파는 대문을 통과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도대체 무슨 소린가 물었는데, 세로로도 세워보고, 비스듬히 기울이면, 그 정도 대문이라면 들어갈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정원과 은호는 옥탑방에서 반지하로 이사한다. 보증금이 올라 아버지 병원비, 편입 학원비와 동시에 감당할 수 없었던 둘은 조그만 용달차에 세간살이를 싣는다. 미래의 소망을 상징하는 집 모형은 버리고, 현재의 행복을 대변한 소파는 집에 들일 수 없었다.

낭만을 만끽하던 소파가 좁은 대문을 통과하지 못하는 장면에서 은호의 마음이 떠나 더 노력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정원은 어떻게든 대문에 넣어보려 애썼으나 손을 다친다. 은호는 두어 번 시도하다가 포기하면서 혼자 하려는 정원에게 면박을 준다.

소파를 넣어주지 않는(?) 은호를 난 비난했다. 정원은 원망하지 않았다. 아내도 그랬다. 인물을 이해하지도 상황을 받아들이지 도 않고, 나를 지나치게 투영시켰다. 하긴 들어갈 수 없는 크기여도 기어이 소파를 대문 속에 밀어 넣었을 것이다. 애초에 대문 따위는 신경 쓰지도 않았을지 모른다.

마음이 그대로라면 소파는 다리를 자르고 넣은 후 다시 붙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상 모든 소파가 장소를 옮겨갈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설사 대문을 통과했더라도, 그보다 더 좁은 현관문도 지나야 하며, 방에도 마땅한 자리가 없었을지 모른다.

옥탑방 소파 위에서 서로 안고, 방방 뛰던 행복은 반지하로까지 가져올 수 없었을 뿐이다. 소중한 짐이라도 담을 수 없는 여건은 찾아온다. 막을 수 없는 불행 앞에서 사랑도 균열이 생긴다. 불행은 행복의 반대가 아니다. 인생의 사이클에서 번갈아 찾아오는 엇박자이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서로를 잃은 두 청춘이 꿈을 이루기 위한 노력이 순탄치는 않았을 것이다. 정원은 도움받을 사람이 아무도 없고, 은호는 아픈 아버지마저도 세상을 떠난다. 다행히 둘은 하고 싶은 일을 성취했지만, 현실에서는 험난한 여정이 반드시 성공으로 보상되는 게 아니라는 걸 우린 너무 잘 안다. 더욱이 상실의 고통 속이라면 더 힘들었을지 모른다.

어떤 청춘은 꿈을 포기하기도 하고, 현실에 안주하기도 한다. 뜻하는 바를 이루지 못했지만, 삶에 순응하고 받아들일 때 평안이 찾아온다. 소파를 억지로 대문에 넣는 것만이 행복은 아니었다.

어쩌면 ’잘 될거라는 주술‘이 희망이었을지 모른다. 그 시절 가장 아름다운 낭만은 불확실한 소망을 믿어주는 누군가의 위로였을 것이다. 반드시 이뤄야 할 꿈보다, 가질 수 있는 희망과 믿어주는 존재가 인생에 힘이 된다.

주인공들은 한 해 마지막 날 서로의 뺨을 감싸고 새해 소망을 빌어준다. ”잘 될거라고” 2025년 12월 31일 영화가 개봉한 이유이다. 그날 나란 사람은 홍어 냄새를 풍기며 해를 넘겨 들어왔다. 삭힌 홍어 냄새도 잠재울 술 냄새를 풍기면서 떡이 되어 집에 들어왔다. 아내에게 싹싹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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