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시절 대부분은 흐릿해졌지만, 유독 또렷하게 기억나는 날이 있다. 주말 오후, 학교 장기자랑을 준비하기 위해 친구 집에 모였던 날이다. 정확한 이유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장기자랑 연습 때문에 모두가 예민해져 있었나 보다. 사소한 의견 차이였는지, 누군가 장난이 과했는지, 서로에게 짜증 내고 티격태격하다가 결국 싸우게 되었다. 얼굴이 달아오르고, 눈물이 차오르는 걸 막지 못했다. 속상함에 울음이 터졌고, 친구들과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집으로 향했다. 고개를 푹 숙인 채 눈물을 뚝뚝 흘리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나는 세상에서 제일 슬픈 사람이었고, 지금부터 떠올리면 수치스럽고 얼굴이 화끈거리는 흑역사를 스스로 만들기 시작했다.
정말 나 어떻게해
아니 이건 꿈일거야
믿을 수 없어
나를 얼마나 사랑했는데
이럴 순 없어
울음과 울음 사이, 콧물로 숨이 막히는 그 상황에서 마치 드라마 주인공이 된 것처럼 BGM을 스스로 깔았다. 그 노래는 바로 영턱스클럽의 <정>이었다. 왜 하필 그 노래였을까? 아마 장기자랑을 하기 위해 연습하던 곡이라 입에 달라붙어서였을 거다. 하지만 그 순간에는 “아니 이건 꿈일 거야. 믿을 수 없어”라는 가사가, 나를 대변해 준다고 생각했다. 울먹임 때문에 목소리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나는 그 순간 완전히 비련의 드라마 여주인공이었다.
슬픔의 절정에서 고개 숙인 채 골목길을 걷고, 스스로 배경음악까지 깔아가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 지금 떠올리면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로 수치스럽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날, 그 길에 사람이 없었다는 점이다. 세상이 무너진 것 같은 감정에 휩쓸려 혼자 노래를 부르며 걷는 초등학생의 모습이 누군가의 눈에 띄었다면 얼마나 웃겼을까. 아무도 나를 보지 않았다는 점이 지금의 나를 유일하게 구원해 주었다.
문제는 그 장면이 단순히 부끄러운 과거로 끝나지 않는 데에 있다. 지금도 〈정〉을 들으면 내 머릿속에서는 그날의 풍경이 자동으로 재생된다. 친구 집을 나와 놀이터와 슈퍼 사이를 지나 우체국 앞 건널목을 건넌다. 삼거리에 있는 약국 유리문에 붙어 있던 레모나 광고, 골목 끝에 떡볶이 노점상의 빨간 지붕. 그리고 그 길을 걸으며 울먹이면서 콧물을 훌쩍이며 노래를 부르는 나. 마치 오래된 비디오테이프를 되감아 재생하듯, 모든 요소가 놀랍도록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음악이 그날의 감정 전체를 통째로 오려서 나만의 상자 속에 잘 보관해 둔 것 같다.
돌이켜보면, 음악과 함께 남는 기억은 이상할 만큼 끈질기다. 음악은 단순히 귀로 듣는 소리가 아니라, 그날의 공기를 흡수하고 주변의 온도를 기억하며, 그 순간의 표정과 마음까지 전부 끌어안아 저장한다. 그래서 잊었다고 생각했지만 노래 몇 음이 스치기만 하면 문을 벌컥 열고 나타난다. 내가 잘 숨겨두었다고 착각한 과거의 감정들이, 멀쩡히 나를 다시 찾아와 다시 그 때 그 감정을 그대로 느끼게 한다. 음악이란 게 참 묘하다. 누군가에게는 흘러가는 음악이 나에겐 그 시절의 나를 그대로 데려와 앉히는 타임머신이 된다는 것이.
당시의 나는 참 어리고 서툴렀지만, 그때 느꼈던 서러움과 어색한 자존심, 부끄러운 감정들까지 모두 지금의 나를 이루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사람은 수많은 흑역사와 작은 상처들, 그리고 뜬금없는 BGM까지 끌어안고 살아가는지도 모르겠다. 그 음악이 재생될 때마다 얼굴이 화끈거리긴 하지만, 그런 기억이 있다는 것 자체가 또 하나의 다정한 추억이 되어 돌아오는 법이다.
우리 이별하는 이유가
끝나버린 사랑이라면
추억할 수 있는 그 날 까지
살 수는 있을거야
흘러가는 기억을 잡아준 노래들 덕분에 그날의 감정과 엉뚱함 모두 선명하게 추억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더는 그 기억을 부끄러워하지 않기로 했다. 그것은 지워야 할 흑역사가 아니라 지금의 나를 만든 하루였으니까.
https://youtu.be/GWE3dFGG8Lo?si=ms3IwM3IUPcAWj-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