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중·고등학생 시절을 상징하는 밴드를 말하라고 하면 두 이름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사춘기 특유의 과장되고 뒤틀린 감성 속에 살던 그 시절, 감정은 늘 흘러넘쳤지만, 표현할 언어가 부족했다. 그럴 때마다 두 밴드의 음악은 나를 붙잡아 주기도 하고, 때로는 마음 깊은 감정을 힘차게 터뜨려 주기도 했다. 나는 음악에 기대어 비로소 감정을 꺼내놓을 수 있었다.
아름다운 너에게선 체리샴푸 맛이 나.
김과장가족 인사드려요, 잘 부탁해요.
내일 아침이면 아무도 다시는 나를 나를...
말 못 하는 풀잎처럼 누워 있는 너는 아직 한밤중.
아저씨 어서 일어나요. 길에서 자면 큰일 나.
오늘은 괜찮아 마음껏 훑어 봐 늘 그랬던 것처럼.
퇴비를 먹는 빨간 돼지처럼 나대지나 말아 책하지 말아.
어떤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슬픈 사랑에만 빠지도록 설정되어 있어.
자우림 가사에는 이렇게 선명한 이미지와 서사가 있다. 감정을 직접 설명하기보단 장면을 쌓아 올리는 듯한 음악이다. 그 이야기에 나를 겹쳐 놓을 수 있었다. 자우림의 노래를 들으며 짝사랑의 마음을 덜어내었다.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 고립되고 있다는 느낌, 극단으로 치닫는 감정을 노래 한 곡에 실어 보내기도 했다. 자우림은 내가 이름 붙이지 못한 감정들을 대신 언어로, 음악으로 정리해 주는 존재였다. 자우림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음악과 가사는 자우림만의 분위기를 지켜내는 장치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우림처럼 나를 위로했던 밴드가 있다. 하교 후 집에 돌아와 가방을 소파에 던지고 리모컨을 잡아 MTV를 틀었던 평범한 어느 날, 화면에서 흘러나온 노래 한 곡이 나를 사로잡았다. 〈天体観測〉 2002년 발매된 <jupiter>의 타이틀곡이자, 한국의 고등학생에게까지 닿은 ’BUMP OF CHICKEN’의 노래. 그 한 곡이 나의 세계를 단숨에 확장했다.
見えているモノを 見落として 望遠鏡をまた担いで
눈에 보이는 것을 놓친 채 망원경을 다시 등에 업고
静寂と暗闇の帰り道を 駆け抜けた
조용하고 어두운 귀갓길을 달렸지
そうして知った痛みが 未だに僕を支えている
그렇게 알아 버린 아픔이 아직도 나를 받쳐 주고 있어
「イマ」という ほうき星 今も一人追いかけている
“지금”이라는 혜성을 아직도 혼자 뒤쫓고 있네
’BUMP OF CHICKEN‘의 가사는 ’자우림‘과는 결은 다르지만 섬세한 서사와 상징으로 이야기를 짓는다는 점에서 문학적 여운이 있는 밴드였다. 당시 한국에서 가장 유명했던 노래는 <K>였는데, ’Holy Night‘라고 불리던 고양이에게 알파벳 한 글자를 더해서 ’Holy Knight’ 가 되는 이야기로 고양이가 주인공인 노래도 처음이었고, 한편의 동화 같은 가사가 인상적이었다. 그들의 대표곡인 〈天体観測〉은 가사의 세계관을 공유하는 드라마가 제작되며 그들의 문학성을 인정받기도 했다.
그들의 자료를 찾아 헤매다 점점 마음이 깊어져 구매대행으로 앨범을 주문하고, 일본 잡지까지 사 모았다. 실존 인물을 팬아트로 그렸던건 ’BUMP OF CHICKEN’이 처음이었다. 2004년 첫 내한 공연 당시 작은 소극장에 들어섰을 때의 설렘은 아직도 선명하다.
두 밴드는 서로 다른 언어와 분위기로 나의 같은 시절을 설명해 준다. 전혀 다른 색을 가졌음에도 같은 방식으로 나를 붙잡아 주었다. 그때 그 음악들을 통해 내 마음을 털어 놓을 수 있었고 다음 장면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시절의 내가 듣던 노래들은, 여전히 마음 깊은 곳에서 잔잔한 파동으로 남아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2025년. 자우림은 새 앨범을 내놓았고, ’BUMP OF CHICKEN’은 17년 만에 내한했다고 한다. 나에겐 예전만큼 가까운 존재는 아니지만, 그들의 음악은 여전히 누군가를 위로한다. 예전에 내가 위로받았던 것처럼.
https://youtu.be/VNSzpupkDxw?si=23-SDSxCE0urEmmt
https://youtu.be/VVP-FJj35MI?si=NIItaHFvWgPOWgZ8
https://youtu.be/j7CDb610Bg0?si=wqPeutj0eXYLkxBj
https://youtu.be/FNj3pxvYuIs?si=voQDRqPnCF970YB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