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1 : 다시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

출발의 순간에 떠오른 가족과 이동의 의미

by 김지영

아이 둘과 아내가 공항행 버스 터미널에 나와 있다.
며칠 동안 아빠를 못 본다는 걸 아는지 아이들은 시무룩하지만,

괜히 더 씩씩한 척을 한다.
고맙고, 미안하다.
그래서 더 짠해진다.
다시 돌아갈 곳이 있다는 사실.
가족이 있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큰 힘이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길 잘했다.
이건 계산이 아니라 확신이다.


해외 출장은 늘 비슷하게 시작된다.
공항으로 가고, 짐을 부치고, 보안 검색대를 통과하고,

밥을 먹고, 환전을 하고, 커피를 사기 위해 편의점을 찾는다.
이 모든 절차를 거치고 나면 아직 떠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지친다.

출장이긴 하지만,

자유를 위해 떠나는 여정이 이렇게 비자유적인 방식으로 시작된다는 게 늘 묘하다.


탑승구 앞에서 입구가 갈린다.
이코노미 클래스와 비즈니스 클래스.
같은 비행기인데 들어가는 길부터 다르다.
비행 좌석은 중립적이지 않다.
하늘에서도 자본은 동선을 나눈다.


터키행 여객기는 만석이다.
매번 타는 비행기지만 탈 때마다 신기하다.
이 많은 사람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누구를 만나러 갈까.
각자 어떤 사연을 안고 이 자리에 앉아 있을까.
이동은 우리를 지구촌으로 묶어 놓았다.
지인의 지인의 지인만 거슬러 올라가면 지구 반대편의 사람과도 연결된다고 한다.
이 비행기 안에는 이미 수백 개의 삶의 경로가 겹쳐 있다.


정기적으로 이 노선을 오가는 사람들도 눈에 띈다.
그들은 마치 철새 같다.
때가 되면 날고, 때가 지나면 돌아온다.
비행은 이들에게 사건이 아니라 생활의 리듬처럼 보인다.


포르투 공항에 착륙하자마자 박수가 터져 나온다.
포르투갈 사람들로 보이는 승객들이다.
환호라기보다는 안도에 가깝다.
무사히 도착했다는 사실을 함께 확인하는 짧은 의식처럼 느껴진다.


겨울의 포르투는 낮이 짧다.
오후 6시인데 벌써 밖이 어둡다.
남유럽이라 해가 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시계가 태양보다 먼저 퇴근하는 나라다.


다음 날 새벽 4시에 일어나 도우루 강 근처를 30분 정도 뛰었다.
선선한 바람 덕분에 뛰는 맛이 좋다.
갈매기들은 새벽잠이 없는 모양이다.
떼를 지어 울어댄다.
무엇 때문일까. 영역일까, 먹이일까.


새벽 쓰레기를 수거하는 트럭과 환경미화원들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수거 시간은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새벽에 일어나 보니, 한국이나 포르투갈이나 풍경은 비슷하다.
도시는 관광객이 아니라, 새벽에 움직이는 사람들로 유지된다.


호텔 창가에서 도우루 강을 바라본다.
스페인에서부터 흘러온 강이다.
잔잔해 보이지만 유속은 생각보다 강하다.
계곡에서 물놀이를 하다 몸이 순식간에 쓸려 내려가듯,
나의 몸과 마음도 강줄기를 따라 어디론가 흘러가는 느낌이 든다.
달의 인력이 우리 몸의 수분을 당기듯,
도우루 강 역시 유속으로 나를 끌어당기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이유 없이 조금 우울해진다.




출장은 업무지만, 동시에 개인의 시야를 넓히는 계기이기도 하다.
일을 하러 왔지만 생각은 자꾸 일 바깥으로 흐른다.
아무도 보지 않는 새벽,
그냥 지나쳤을 풍경,
사라져 버릴 뻔한 생각들.


이번 출장에서 내가 붙잡고 싶은 건 성과보다 이런 순간들이다.
흘러가 버리기 전에,
조용히 적어 두는 것.
포르투갈의 첫 페이지는 그렇게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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