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

한강 2014 창비

by 페튜니아 화분
소년이 온다 | 한강 | 창비 2014

1.

이 책을 읽어보자고 마음 먹은 순간이 기억난다.


겨울이지만 따뜻하고 습한 날씨때문에 무거운 옷을 입었다 벗기를 반복하면서, 잃어버린 무선 이어폰 케이스를 찾기위해, 같은 길을 두번 째 거슬러 올라가던 중이었다. 무척 산만한 상태에서 소리만 듣고 있던 유튜브를 통해 소년이 온다의 한 구절을 듣게 되었다.


썩어가는 내 옆구리를 생각해.

거길 관통한 총알을 생각해.

처음엔 차디찬 몽둥이 같았던 그것.

순식간에 뱃속을 휘젓는 불덩어리가 된 그것.

그게 반대편 옆구리에 만들어놓은. 내 모든 따뜻한 피를 흘러나가게 한 구멍을 생각해.

차디찬 방아쇠를 생각해.

그걸 당긴 따뜻한 손가락을 생각해.

나를 조준한 눈을 생각해.

쏘라고 명령한 사람의 눈을 생각해.


대화면 극장에서 영화를 보듯 눈 앞에 장면이 펼쳐졌다. 무엇인가 내 옆구리를 스쳐 지나가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책 전체가 이렇게 생생한 감각을 전달하는지 확인하고 싶어졌다.



2.

중학생 때 사람 뜸한 5호선 안에서 광주 피해자의 사진이 담긴 책자를 보았다.

일행 중 누군가가 대학생 친척에게 얻은 것인데, 글은 없고 한 페이지에 한 명의 사진이 담겨있었다.

대학생, 중학생-교련복을 입고 있었다.-, 중년 남성, 여학생, 임산부의 사진이 있었다.

책자 전체가 흑백 사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컬러 사진이었다면 사진을 바라보기 더 어려웠을 것이다.


희생자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옮기기 힘들다.

자세하게 기억나는 부분도 있지만 감히 그걸 말과 글로 전달할 자격이 나에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말로 전할 때 어떤 표정이 적당한지 또는 어떤 표정을 지으면 안될지 망설여진다.

당시 내 주변의 어른 중에는 광주와 광주의 희생자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3.

‘소년이 온다’는 등장 인물이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범위에서 사건이 전개된다.

진압군과 시민이 배치한 현장의 한 가운데로 독자를 데려가지만 지도를 펼쳐 상황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입체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등장인물의 사후 영혼의 시점까지 이야기를 확장하지만 가해자의 관점에서 생각하거나 행동하는 묘사는 나오지 않는다.

장소와 시간을 넘나들며 이야기가 전개되어고 오직 인물의 시점에서 말하고 생각하고 움직인다.


소년의 어머니가 이야기를 전달하는 챕터는, 손 잡을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서 이야기를 하는 듯한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아주 사적인 다큐멘터리 영화 같은 연출이라고 생각했다.

지금까지의 형식을 잠시 벗어나더라도 어머니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전달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 같다.



4.

소설을 읽고서 광주와 광주 희생자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생각해 보았다.

당시 어른들처럼 무시하거나 외곡하고 매도하지 않는다.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소년’은 왜 도청을 떠나지 않았는지, 희생자의 가족과 살아남은 피해자들에게 어떤 삶이 이어지고 있는지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비겁하게 시선을 돌리지 않는다.


인물의 시선과 생각을 따라가는 문장과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는 구성으로 인해, 소설을 읽는 동안 인물은 말하고 행동하는 살아있는 존재가 된다.

소설을 읽는 독자를 통해 광주 희생자를 현재로 불러내어 그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고있다.

그들을 어떻게 맞이하는 것이 좋은가 생각하는 독자들의 마음이 이 사회의 미래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