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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Jan 02. 2024

엄마도, 처음이었는데

새해 건강하고요. 사랑합니다.

1월 1일이다.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됐다. 매일 비슷한 것 같은 일상도 괜스레 '1'이라는 숫자를 달면 새로워지는 것 같다. 뭔가 리셋하고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그런 기분이다. 올해 내 나이 30대 중반을 훌쩍 넘었는데 기분이 묘하다. 우리 엄마가 나를 가졌을 때 나이가 20대 중반이다. 나를 낳아 기르던 엄마보다 지금의 나는 무려 10살 정도는 많다. 근데 여전히 갈팡질팡하는 마음을 가지고 산다. 한편에는 아이 같은 마음을 간직한 채로. 늘 아이 같지는 않다는 점이 위안이라면 위안일까. 한 치 앞이라도 보고 살면 좋으련만 신념을 가지고 단단하게 해 왔다고 생각했던 일들도 마음속에 일어나는 자잘 자잘한 번뇌들로 흔들흔들하는 걸 보면 내 앞가림이나 제대로 하고 사는지 가끔은 내가 나를 믿지 못하겠다는 생각도 든다. 이렇게 센치해지는 새해다. 하지만 내가 나를 믿지 못하면 누가 나를 믿으랴!

어쨌든... 근데 이런 나보다 훨씬 더 어렸던 엄마는 어떤 확신을 가지고 나를 낳고 기를 수 있었을까. 지금 나는 나 이외의 누군가를 감당할 자신이 별로 없다.

뭘 잘 모르던 시절엔 내가 나를 제일 잘 알고 사는 줄 알았다. 근데 그건 나의 크나큰 착각이었음을 오래지 않아 알게 됐다. 내가 생각했던 나는 내 감정이 어떤 지 정도는 알고 사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나에 대해 고려해 보고 곱씹어 볼수록 나는 내 마음을 잘 알고 사는 사람이 아니었다. 마음을 잘 알고 사는 사람이 아니니 표현하는 것이 미숙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닐까.

30대 중반을 넘도록 자기가 어떤 마음인지 모르고 살아가는 딸. 그런 딸을 20대 중반에 낳아 키워낸 엄마는 그때 어떤 마음이었을까. 때때로 인생에서 큰 상처를 입고 여전히 힘들어하고 있는 이들의 모습을 볼 때면 기억에 남을만한 잊지 못하는 상처 없이 자랄 수 있었던 건 사랑의 힘이었음을 생각한다. 그건 지금 현재 내가 내 삶을 만족스러워 하든 그렇지 않든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여름철 뙤약볕을 피할 수 있게 그 자리에 서서 버팀목이 되어주는 나무처럼, 엄마는 나에게 존재 자체로 든든하고 편안한 사람이다.

하지만 이런 엄마에게 이중적 마음을 가지고 있단 게 아이러니다. 원래 좋아하고 사랑하고 소중하게 생각할수록 더 아껴줘야 할 것 같고 존중해줘야 할 것 같지만 그 반대가 되는 것 같다. 남들한테 들으면 아무것도 아닐 소리도 나에게 중요한 존재에게 듣게 되면 상처가 되는 것처럼 나의 바라는 마음들이 괜스레 잔흠집처럼 상처들을 만들었다. 나는 내가 엄마에 대해서 어떠한 부채감이나 부담감을 가지고 있거나 엄마의 인정을 갈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지 못했다.

언젠가부터 찬찬히 살펴본 내 맘 한편에는 엄마와 함께하고 싶으면서 엄마로부터 독립하고 싶은 양가적인 감정들이 있었다. 이게 참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생각했는데 짜증 내는 듯 말하는 엄마의 모습이 힘들었고, 엄마가 나를 걱정하는 잔소리가 참 듣기 싫었다. 그런 모습들을 외면하고 싶은데도 엄마의 말대로 하지 않으면 불안해지는 내 심리를 봤다. 엄마에게 많이 의지되어 있는 이 마음이 버릇없는 딸을 만들고 인생에 주체적이지 못 한 한 인간을 만들었다. 이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그냥 으레 그렇게 해왔던 습관의 결과였다. 엄마는 나에게 언제나 늘 엄마였던 존재여서 그리고 어른이어서 모든 것들이 익숙하고 척척이고 다 알고 하시는 줄 알았다. 실수도 생각할 수 없었다. 어떤 말을 쏟아내도 상처받지 않으며 괜찮아야 하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근데 엄마가 나를 가졌을 때 나이 고작 20대 중반, 내가 한창 말 안 듣고 사춘기로 몸무림 치고 있을 때에도 엄마는 고작해야 지금의 내 나이대 30대 중반이었을 뿐이었다. 세상에. 나를 동일 선상에 놓고 생각해 보면 도대체 뭘 알긴 했을까 싶은 애송이인데.  

누구나 처음은 서투르고 잘 모르고 어떻게 해야 될지 시행착오도 겪고 실수도 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왜 엄마와 나와의 관계는 그런 설정값이 빠져 있었던 건지.

올해 내가 내 나이를 처음 살아내고 있듯이 엄마도 또한 올해 새로운 나이를 맞아 그 나이대를 처음 살아내고 있다. 오늘 시작될 하루는 나에게 처음으로 주어지는 하루이듯 엄마에게도 그러하다.

2024년 갑진년 청룡의 해라는데. 나를 가졌을 때 용이 하늘을 승천하는 태몽을 꾸고 기뻐했다던 엄마. 내가 세상의 빛을 볼 수 있게 해 주신 엄마 생각이 난다. 엄마가 아니었다면 세상에 이 재미난 것들, 즐거운 것들 있는 줄도 몰랐겠지.

엄마한테 줄 새 옷에 엽서 한 장 가볍게 적어서 택배로 부쳤다. 요즘 주변에 갑작스레 아픈 이들이 늘어나는 일들이 많아지다 보니 생각이 부쩍 많아져 엽서에 이런저런 말들을 적었다. 일상을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새삼 느낀다고. 건강이 최고라고. 감사하다고. 사랑한다고.

언젠가 엄마와 함께 봤던 일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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