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없다

놓친 순간들에 대한 고백

by 진아

그리 길지도 짧지도 않은 세월을 살아오는 동안 갈수록 확실해지는 인생의 교훈이 있다.

바로 '다음은 없다'라는 것이다.

인생의 찰나의 한 순간은 지나가고 나면 이미 과거가 되어버린다. '다음에도 이런 기회가 생기겠지?' 하며 망설이다가 놓친 순간들이 있다.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갈 수 있다면 모를까, 결국 다음은 없었다. 그다음을 만들기 위해서는 더 많은 기회비용을 지불해야 하거나 혹은 기회비용을 지불하더라도 기회를 만들지 못했다.

나는 몸이 찌뿌둥해 기지개를 켤 때 요가를 배울 수 있었던 그 기회가 가끔 생각난다. 콘텐츠가 넘쳐나는 이 시대, 영상을 틀 수 있는 기기만 있으면 된다.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숙달된 요가 선생님들의 안내를 받으며 동작을 따라 할 수 있다. 나도 일주일에 3번은 집에서 홈트를 하며 이런 환경에 감사하고 있다. 하지만 운동이란 게 몸으로 직접 하는 것인데 실제 점검을 받을 수 없다는 점은 매우 취약한 부분이다. 내가 동작을 정확하게 하고 있는지, 사용해야 할 근육을 제대로 쓰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다만 정해진 시간에 같은 동작을 따라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뿐이다.

20대 중반에 당시 취준생이었던 나는 요가 학원 데스크 아르바이트를 했다. 오전에 스터디 하나를 마친 뒤에 오후 시간대에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크게 피곤할 만한 일 없이 내게 유독 다정하게 대해 주시는 실장님과 잘 지냈다. 모든 학원이 그렇지는 않을 텐데 그 요가 학원은 아르바이트생에게 무려 무료로 수강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줬다. 시간 맞을 때 얘기만 하면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제안이었다. 그 시기에는 플라잉 요가가 막 시작되던 시기여서 새로운 것을 접해볼 기회도 있었다.

운동을 나름 좋아하는 나로서는 한 번 들어가 볼까 생각했지만 애매한 시간대와 강사 선생님에 대한 호불호 등이 걸려 쉽게 무료 수강의 기회를 포기했다. 아마 배워둬야지 혹은 운동을 해야지 하는 의지가 강했다면 애매한 시간대와 호불호 따위는 가뿐히 넘어갈 수 있었을 텐데... 지금 이제는 그런 기회는 없다. 플라잉 요가를 마음먹고 배우려고 생각하면 지금도 나로서는 애매한 시간에 고민해야 하는데 이젠 적지 않은 수강료를 지불해야 한다.

운동만큼이나 타이밍이 중요한 것이 사랑이다. 한 번쯤은 머뭇거리거나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다가 순간을 놓친 경험이 있지 않은가?(나만 그런 건가?) 자연스럽게 소개받은 사람이 있었다. 일단 외적인 부분이 내 스타일이라 엄청 호감이 갔는데 내가 워낙 기본 태도가 철벽적이다 보니 상대방은 내가 본인에게 관심이 없는 줄 알았던 모양이다.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셈이다. 그렇지만 느낌이 좋았던 나는 평소 나라면 하지 않았을 행동을 했다. 먼저 연락하며 관심을 표현한 거다. 상대의 반응도 나쁘지 않았다. 연락도 계속 주고받게 되고 전화도 계속하고 서로 일상을 공유하면서 차츰차츰 친밀도를 쌓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두 번째 만남이 성사되지 못했다. 서로 시간이 계속 어긋났다. 아마 어느 쪽도 일정을 조정해 가며 만날 정도로 간절하지는 않았나 보다. 그렇게 되다 보니 나도 점점 초반과는 다르게 마음이 식어서 나중엔 내가 왜 상대방을 좋아했었지?라고 생각할 정도가 됐다. 그렇게 서로 연락이 끊기고 있던 어느 날, 그에게 뜬금없이 연락이 왔다. 거의 반년 만이었다. 이번에는 어쩐 일로 그가 적극적으로 나와 만나고 싶다는 의사를 피력했지만 나는 흥미가 가지 않았다. 이미 타이밍이 떠난 것이다. 불씨가 살아있을 때 불을 지폈어야 하는 것인데... 이렇게 서로 마음의 타이밍이 맞지 않아서 안녕히 보낸 인연이 꽤나 된다.

그런데 타이밍을 놓치는 것은 비단 감정적인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나는 영어를 사용해야 할 순간이 되면 그게 여행을 하는 순간이든 아니면 일로 필요한 순간이든 20대 초반의 나를 생각한다. 당시 친하게 지내던 남사친은 영어 공부에 굉장히 열을 올리고 있었는데 친절하게도 자신이 하고 있는 영어 공부법을 알려주며 하루에 30분 아니 10분이라도 투자해서 계속 영어 공부를 하라고 권했다. 앞으로는 말하는 게 더더욱 중요해질 테니 듣고 쓰고 읽고 말하기가 중요하다고. 나라고 말하기가 점점 더 중요해질 것을 왜 몰랐겠는가. 다만 머리로는 아는 것이 마음으로 와닿지 않았을 뿐이다. 그가 추천하는 영어공부 방식은 CNN 같은 방송을 듣고 쉐도잉 하는 방식이었는데 영어공부에 흥미가 없던 나는 하루에 10분을 꾸준히 하기가 어려웠다. 데이트하랴 학점 챙기랴 과동기들과 술 마시기에도 시간이 늘 빠듯했던 대학 생활이었다. 그땐 몰랐다. 하루 10분이 일주일이면 70분, 한 달이면 약 5시간, 일 년이면 56시간이 된다. 가랑비에 옷 젖듯 실력이 향상될 것임을 무지한 나는 몰랐다. 반복의 중요성. 세월이 쌓이니까 그 친구는 점점 실력이 향상되고 나는 제자리걸음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하는 자와 하지 않는 자의 차이는 극명한 법이니까.

이런 미련한 패턴은 아직도 반복되곤 한다. 최근엔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추석에 일본으로 여행을 가자는데 뜻이 모아져 얼른 비행기 티켓을 알아봤다. 비행기 가격은 40만 원 정도였는데 추석 연휴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괜찮은지 아닌지 바로 판단이 서지 않아서 내일 다시 봐야지 하는 심산으로 가격만 확인하고 말았다. 그런데 바로 다음 날부터 티켓 가격이 60만 원으로 뛰어 내려올 생각을 안 했다. 타이밍을 정말 놓쳐버린 거다.

여러 시행착오들을 반복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든다. 인생의 타이밍이라는 게 지금 그 순간이라는 걸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결국은 적절한 타이밍이라는 건 지나고 나서 살펴봐야 '아, 그때가 타이밍이었구나.'라고 깨닫게 되는 것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타이밍이 언제일까 기다리기보다는, 지금 이 순간 핑계 대며 미루지 말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 돌아봐도 후회가 남지 않는다.

결국 '다음은 없다'는 걸 알았다는 건 현재를 더 소중히 여길 수 있는 출발선에 섰다는 것이다. 앞으로도 완벽하게 모든 순간을 붙잡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놓치는 순간들을 의식적으로 선택할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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