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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덩구 Oct 03. 2022

양 많은 나시고랭과 게이샤의 추억

발리 2

 호스텔에 도착하니 열 시였다. 택시를 한 시간 넘게 탔다. 4만 원 정도 나왔다. 바가지인지 아닌지 알 수없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다. 기사는 커피 한잔 마시게 팁을 좀 달라고 했다. 가지고 있던 지폐 중 가장 작은 단위로 한 장 주었다. 나중에 계산하니 겨우 몇백 원 값이었다. 잘못 준 것 같다.


 호스텔은 번듯했다. 가운데 수영장을 두고 식당과 객실이 둘러싸고 있었다. 사람들은 옷을 벗고 누워있거나 맥주를 마셨다. 몇 명은 비어퐁을 하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나는 잘못 착륙한 외계인처럼 생경하게 서있었다. 동양인은 없었다. 직원은 화장실과 샤워실을 알려주고 커다란 수건을 쥐어준 뒤 방으로 안내했다. 여기를 쓰면 됩니다. 그 말엔 자신감이 묻어있었다. 8인실인데도 침대는 컸다. 예약을 잘했다고 생각했다.


 씻으러 갔더니 샤워실 문이 반투명했다. 똥을 싸며 앉아있는 모습과 몸에 비누를 문지르는 실루엣이 훤하게 보였다. 남녀공용인데도 그랬다. 여행이 실감 났다. 사실 여행은 노출 민감도가 다른 문화에 작은 충격을 반복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뭐 겨우 한낱 살갗 아니겠는가.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뒤로 돌아 벽에 바싹 붙어 씻었다. 검게 수북한 털이 혹시 비추는 건 아닐까 부끄러웠다. 누가 보나 싶겠지만 반투명한 욕실 문이란 그런 것이다.


 수영장 옆에 앉아 빈땅과 나시고랭을 시켰다. 이샤와 매뤼올랭(마요라고 부르기로 했다)을 알게 됐다.


 이샤는 인도에서 왔는데 기둥에 기대앉아 게이샤의 추억을 읽고 있었다. 다리를 꼬고 한 손엔 책을 쥐고 다른 한 손에 담배를 들고 있었다. 모르지만 담배를 거의 한 갑째 피는 듯했다. 내 앞에 놓인 나시고랭의 양은 무척 많았다. 볶음밥은 양만 많아도 만족스럽다.


 마요는 그런 내 볶음밥과 이샤 사이로 들어와 이샤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이렇게 시끄러운데 뭘 읽는 거야? 그렇게 들렸다. 그건 내 생각도 그렇다. 비어퐁은 끝날 기미가 없었으니까. 나는 멀리서 마요를 보고 한국인이 아닌가 생각했었는데, 이샤에게 말을 거는 걸 보고 서양에서 왔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는 붙임성이 좋았다. 목소리가 걸걸해서 영지가 생각났다. 자연스레 나까지 말을 섞게 됐다.


“어디서 왔어?” 마요에게 물었다.

“네덜란드” 그녀가 답했다.

내가 조금 놀란 기색이었나 보다. 그녀가 이어서 말했다.

“네가 왜 놀라는지 알아, 다들 그런 반응이거든. 내가 네덜란드 사람처럼 생기진 않았지”

“난 네가 한국사람인 줄 알았어” 뭐 조금 그랬을 뿐이다.

“중국인이고 입양됐어. 사실 아시아는 발리가 처음이야” 머리칼을 넘기는 그녀의 왼손엔 엄지와 새끼손가락만 있었다.


마요는 대화를 즐기는 사람들이 보통 그렇듯이 주제를 넘나들기를 꺼리지 않았다. 그녀와 이샤는 게이샤의 추억이 어땠는지를 이야기하고, 네덜란드의 재패니즈를, 뭄바이의 차이니즈를 거치더니 나에게 북한이냐 남한이냐 묻고 당연히 남한이겠지 라며 자기들이 대답했다. 그녀들은 모두 영어를 나보다 잘 썼기 때문에 대화를 가로채기가 어려웠다. 사실 끼어들기 어려운 대화가 그렇지 않은 대화보다 낫다. 그녀들이 한국말이라도 했다면 나는 너무 많은 말을 했을지도 모르니까. 나는 원래 말이 적은 셈 치며 그녀들의 대화를 귀 기울여 들었다. 어떤 행세는 실로 그런 사람을 만들기도 하리라 믿었다.



이걸 누가 읽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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