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7.23.
간만에 푹 잤다. 오늘은 LA 한 달 살이 와 있는 지아 친구네를 Newport Beach에서 만나기로 한 날이다. 우리 딸, 10살도 안 돼서 미국에서 약속 잡네. 그 집이 엄마랑만 온다고 해서, 우리 집도 난 라이드만 해주고 빠지기로 했다. 양가 밸런스 맞춰야지. 라이드도 내가 할 필요가 없지. 동권아 가자!
미국 전역을 트럭으로 돌아다니는 동권이에게 Newport Beach는 바로 집 앞인 느낌이었다. 눈 깜짝할 거리라더니 traffic까지 겹쳐 30분이 걸렸다. 이 거리가 집 앞이면, 구리 우리 집 바로 앞이 강남역이다.
Newport Beach, 미국의 다대포를 예상하고 갔더니 고급스러운 동네였다. 지영, 지우, 지아를 약속 장소에 내려주고 동권이랑 둘이 남겨졌다. 자유시간이네. 점심 뭐 먹고 싶냐 묻더니, 한식만 쭈욱 나열한다. 역시 촌놈이다. 내가 아메리칸 스타일로 쭈욱 대답했더니, 이 녀석 토하려고 한다. 사하구 하구둑 조개구이집 전전하던 손창우 아니다. 적응해라. 내 의견 근처로 절충하여 UC Irvine 학교 내 In-N-Out으로 갔다. 여기서 이 녀석 영어 하는 것 처음으로 들어봤다. 어쭈. “This, this, this, please”할 줄 알았는데, 그래도 15년 살더니 영어로 주문은 하며 살구나. 굶어 죽진 않겠네.
그렇게 기다리던 In-N-Out 첫 끼. 일단 미관상 완벽하다. 맛없기 힘든 비주얼. 과거를 소환하며 한 입 베어 물었다. 흠~ 나이스? 그래, 나이스~ 흠~ 맛있긴 한데 예전에 눈물 찔끔 흘리며 한 입 한 입 소중히 베어 먹던 감동은 아니었다. 자극적인 양념들의 세상에서 흑화 되어버린 나의 구강세포들이여, 어쩌면 좋냐.
햄버거 뜯으며 동권이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지난 20년의 업데이트. 그동안 너도 스토리가 많았구나. 내가 동권이 결혼식 때 피아노 반주랑 축가까지 불렀는데, 이 녀석은 강원도 프로축구팀 매니저로 떠난 후, 가끔 축구경기 때 선수가 쓰러지면 의료박스 들고 그라운드로 뛰어 들어가던 이 녀석을 보곤 했는데, 훌쩍 미국으로 떠나버렸고 어이없게 20년이 흐른 것이다. 이 녀석 연락하려고 국정원 요원처럼 여기저기 수소문해서 겨우 찾아냈다. 만나면 몇 대 야무지게 때리고 시작하려고 했는데, 아픈 데 없이 살아 있으니 됐다. 그래도 나 떠나기 전, 진짜 몇 대 맞자.
서로 누가 잘생겼느니, 누가 싸움 잘하느니, 따위의 대화를 더 나누다가, 동권이는 코스트코로 오늘 저녁 파티를 위한 장을 보러 갔고, 나만 다시 Newport Beach로 가서 세 여인을 데리고 왔다. 저녁은 아파트 단지 내 풀사이드에서 고기, 새우, 소시지, 고구마 파티를 벌였다. 양이 작은 나 같은 사람이 보면 숨이 턱 막힐 정도로 어마어마한 양을 준비했다. 나중에 코끼리 한 마리 오기로 했냐. 아, 몰라. 먹다 남으면 본인이 푸드파이터로 변신하겠지.
이 녀석 제법 불 질 좀 하네. 지글지글 구워서 접시 위로 옮겨 주는 음식들 맛있게 한 점 한 점 먹다 보니, 코끼리가 오기도 전에 거의 다 해치웠다. 우리 가족도 할 수 있구나. 지아야, 빨리 수영장에 들어가서 Newport Beach의 모래 다 털고 와라. 이제 집에 가자.
주변 자리를 동네 다람쥐들과 함께 정리하고 있었는데, 살짝 불안감이 몰려왔다. 저녁을 먹을 때부터 갑자기 잔기침이 나오기 시작했다. 기침이 나오면 안 되는 시기쟎아. 지난 2년 간 기침 한 번도 안 했는데, 이 타이밍에 갑자기? 내일 되면 낫겠지. 그래도 느낌이 쎄했다. 기침 안 하려고 물을 계속 홀짝홀짝 마셨는데도, 굳게 다문 입을 열어젖히며 한 방씩 터져 나왔다. 제발, 살려줘. 아주 안 좋은 타이밍이야.
동권이 집으로 돌아와, 밤새 잡담 좀 나누려 했는데, 이 집 샴푸에 수면제를 탔나. 샤워만 하고 나면 눈이 감긴다. 눈에 힘! 친구랑 좀 놀자. 그럼 뭐 해, 난 이미 잠든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