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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우 Jun 05. 2023

미국 여행 15일차 - San Diego(3)

2022.07.26.


오늘도 전력화되지 않은 나를 대신해서, 방실이가 찾아왔다. 실명 맞습니다. 친구 진철이 동생으로, 한국에서 약사 생활을 하다 15년 전 샌디에이고에 정착하고 아이 둘을 키우고 있다. 고향 친구 동생은 내 동생이나 마찬가지지. 지영이도 실이 언니를 엄청 좋아한다. 그 넓은 미국 땅덩어리에서 실이 집은 은영이 누나 집에서 7~8분 거리였다. 미국에서 이 거리면 한 동네나 마찬가지지 뭐. 그동안 마트에서 여러 번 마주쳤겠네. 실이 차가 도착해서 세 모녀를 데리고 떠나는 장면을, 창문 너머로 고양이처럼 지켜봤다. 부러워라. 방실이 약사님, 나 약처방 좀 해주고 가지.


홀로 남겨졌지만 숙제가 있었다. 지영이가 다운타운에 있는 코로나 검사소에 PCR 검사를 예약해 놨다. 기왕 코로나 걸린 거면 빨리 확진받고 하루라도 빨리 털어내자. 코로나 호소인 신분 지겹다.


조금 일찍 집에서 나와, 2001년에 머물렀던 동네를 갔다. 거리명 주소는 San Diego State University 근처 Dorothy Drive. 길 이름이 예뻐 아직 기억이 났다. 1년을 살 던 동네라 손바닥 안일 줄 알았는데, 내 머릿속 나침반에 누가 자꾸 자석을 갖다 대는지 동서남북이 계속 헷갈렸다. Dorothy에서 나와서 좌회전 우회전하면 Montezuma Road가 나오고 거기 누나 집이 있었는데, 내 기억과 매칭이 안 되는 동네 풍경이 이어졌다. 이 집 같기도 하고 저 집 같기도 하고. 동네가 그 사이 재개발된 것도 아닐 텐데 내가 너무 자신만만했나. PCR 시간이 다가와서 오늘은 여기까지. 내일 다시 와서 제대로 찾아봐야겠다.


Dorothy에서 다운타운까지 가는 길은 꽤 익숙했다. 6개월의 인턴 기간 동안 매일 아침 출근하던 길이라. 나의 첫 일터, 다운타운 A street에 있는 San Diego Marriott Suites. 오늘의 목적지는 그곳이 아닌데 계속 익숙한 도로들이 이어져서 신기했는데, PCR 검사소가 예전 일터 근처였다. 길 건너에 보이는 호텔의 늠름한 모습, tv는 사랑의 싣고에서 옛 친구를 발견한 것만큼 반가웠다. 안 무너지고 잘 있었구나. 


역시 다운타운은 느낌이 달랐다. 상큼 발랄 샌디에이고도 다운타운은 더러웠다. public parking장에 주차를 하고, 노숙자 두 명을 지나 검사소에 들어갔다. 할머니 한 분이 외롭게 앉아 계셨고, 내가 오랜만에 본 생명체인지 반갑게 맞아 주셨다. 


예약을 rapid antigen test로 해놨는데, 방실이의 권유로 PCR로 바꿨다. 이 둘이 무슨 차이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약사가 하라는 대로 해야지. 컴퓨터와 친하지 않아 보이는 할머니는 본인이 PCR로 바꿔 보겠다며 독수리 타법으로 한참을 똑딱똑딱 키보드를 누르시더니, 결국 해내셨다. 고객만족도 조사 전화가 오면 무조건 매우 만족으로 해드릴게요. 


셀트리온 검사 키트였다. 이국땅에서 보니 더 반갑네, K방역. 나보고 직접 코를 쑤시라고 하셨다. 이런 횡재가. 순한 맛으로 찔러도 되겠지. 으흐흐. 하지만 면봉 꼬챙이가 내 손에 쥐어지는 순간, 해리포터 지팡이로 변신해서 내게 마법을 걸었다. ‘빨리 양성 떠야지. 제대로 쑤셔’


마법은 통했고, 난 코 양쪽을 모두 지영이가 하는 것처럼 깊숙하게 넣었고, 양 콧구멍에서 모두 사자후를 토하며 기침을 했다. 멀찌감치 도망가 있던 할머니도 기침 나왔으니 아주 잘한 거라고 칭찬해 주셨다. 네, 정말 최선 다했습니다. 머리 쓰담쓰담해 주세요. 이제 양성이건 음성이건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내일 오전에 나온다는 이번 결과는 그대로 받아들여야겠다. 


숙제를 치렀으니 혼자 좀 놀아보자.


이 시간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드디어 추억의 San Diego Marriott Suites로 향했다. 건물은 그대로인데 이름은 바뀌었다. Marriott Vacation Club, pulse. 왜 바꿨어. 예전 이름이 더 럭셔리한데. 여긴 front desk가 13층이다. 지금도 그대로였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두둥, 드디어 올라갔다. 하, 그토록 와보고 싶던 곳, 애들아 형이 왔다. 드디어 13층 로비가 눈앞에 펼쳐졌다. 짜잔~


눈물이 핑 돌거나, 로비 바닥을 손바닥으로 쓸며 오열하거나 하진 않았지만, 20년 만에 동권이 봤을 때 정도로 반가웠다. 사람이 공간을 보고 받을 수 있는 감동의 최대치까진 울컥했다. 호텔 이름 바꾸며 리모델링까지 한 듯 내부가 세련되게 바뀌어 있었지만, 나의 주무대 Front Desk와 Concierge Desk의 위치는 그대로였다. 


Front Desk로 가서 물을 하나 샀다. 잔돈을 챙기고 있는 직원에게, 잔돈 괜찮다고 했다. 나 좀 멋지나. 그러곤 나 20년 전 여기서 일했던 사람이라고 했더니, 별 감동 없이 “Really?”라고만 했다. 에이, 그렇게 기계적으로 대답하고 끝내면 안 되지. “Oh, My god!”을 외치며 뛰쳐나와 허그 한 번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선배님, 그토록 많이 듣던 Front Desk계의 레전드 선배님, 몇 년을 기다렸습니다. 오늘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까지는 아니더라도, 반갑게 인사는 좀 합시다. 무정한 사람 같으니라고. 


나의 눈은 내가 커버하던 호텔 대표전화로 향했고, 그때의 멘트가 자동반사되어 나왔다. "Thank you for calling San Diego Marriott Suite. This is Changwoo. How can I help you" 이런 사람을 안 반겨준다고? 하긴 20년 만에 찾아왔단 사람이, 우중충한 예전 로고의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모자에 세탁 실패로 얼룩져버린 티셔츠 노숙자 룩으로 나타났으니, 나에게 그들의 미래가 보였던 걸까. 무수히 짐을 올려드리고 팁을 받았던 객실도 가보고 싶었으나, “Really?” 정도의 반응으론 무리였다. 다음엔 기회 되면 하루 묵어야겠다. 그때 벨보이에게 팁 10불 주면서 나도 여기서 짐 좀 날랐었다 이야기하며 허그 다시 시도해 보자. 오늘은 나만 감동받고 이쯤에서 물러가겠습니다.


당시 오전 7시부터 오후 3시까지 일이 끝나면 2,700불짜리 빨간색 Toyota Corolla를 몰고 La Jolla 해변으로 가서, 바다를 바라보며 누웠다. 책도 보고, 음악도 듣고, 멍도 때리고 아무튼 자주 갔었다. 시간대도 비슷하네. 퇴근하는 기분으로 라호야 비치로 향했다. 


생각보다 멀었다. 그땐 금방 갔던 것 같은데, 30분이나 걸렸다. 도착한 동네도 조금 낯설었다. 그래, 부산도 내려갈 때마다 핫플레이스 해운대 근처는 변하더라. 


La Jolla도 넓어서 어느 쪽으로 가볼까 하다가, 아이들을 데리고 올 때를 대비해서 Children’s beach로 사전 답사를 갔다. 아, 하와이 카우아이의 Poipu Beach를 다녀온 가족에겐 조금 아쉬운 해변 실루엣이었다. 굳이 아이들 데리고 오진 않는 걸로. 


La Jolla 거리를 산책했다. 아직 완전한 컨디션이 아니라 엉덩이 붙일 곳이 필요했고, Living Room Cafe란 커피숍에 들어갔다. 코로나 환자일 수 있으니, 야외 테이블 구석에 혼자 앉았다. 커피는 내 몸속에 들어왔을 때보다 컵에 담겨 있는 상태를 좋아한다. 자릿세라 한 잔은 시켜놓고 항상 반을 남긴다. 게다가 이 더운 날,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시키다니. 영어가 짧아서는 아니다. 아이스 정도는 붙일 수 있지. 그냥 안 묻길래 대답 안 했더니 이걸 주네. 푹푹 찌는 날, 변태처럼 뜨거운 커피를 마시며 30분 정도 지나가는 사람들 구경했다.


늦은 점심인지 이른 저녁인지 허기짐을 해결하려 누나 집 근처 Mira Mesa로 향했다. 식당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그중 가장 만만해 보이는 Panda Express로 갔다. 벌써 몇 번째 Panda냐. 그래도 여긴 항상 기본은 한다. 환자일 수도 있으니 매장에서 먹지 않고 차로 가져왔다. 혼자 차에서 중국 음식 담아와 먹고 있으니, 오디오에선 조정석이 “니가 좋아, 너무 좋아~”를 반복했지만, 살짝 처량했다. 한 접시를 가득 담았더니, 내겐 너무 많은 양이다. 이것도 거의 반을 남겼다. 음식물 쓰레기에 양심의 가책을 느꼈지만, 애초에 아담한 내 사이즈를 보고도 이렇게 많이 담아 준 사람이 잘못인 걸로. 


집에 다시 돌아오니, 고양이가 세 마리다. 씨씨랑 삐삐랑 지아. 셋이 뒹굴고 놀고 있다. 좋겠다, 고양이 털 알레르기가 없어서. 나도 네 번째 고양이가 돼서 캣타워도 긁고 뒹굴고 싶다. 빨리 검사 결과나 나와라. 오늘은 이 정도로 만족하자. 난 다시 격리 방으로. 철커덕.



날 혼자 두고 떠나는 집사들 몰래 바라보는 고양이


San Diego State University. 여기서 좌회전인가 우회전인가. 


나의 첫 일터. San Diego Marriott Suite


front desk


라호야 해변 산책


Panda Express 내겐 벤티 사이즈


고양이 세 마리 - 씨씨, 삐삐, 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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