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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우 Jun 05. 2023

미국 여행 23일차 - Los Angeles

2022.08.03.


느지막이 일어나 김치찌개로 아점을 먹었다. 아, 여긴 미국이니 브런치인가. 손 큰 누님께서 거의 10인분을 해 놓으셨다. 우리 가족의 위 크기를 모르시군요. 그래도 아이들은 김치찌개 앞에선 위가 늘어났다. 1인분씩 거뜬히 비웠다. 이 정도면 차려 준 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지킨 거겠지? 양 작은 사람들은 이런 것도 항상 스트레스다. 진짜 맛있는데, 우린 한 그릇씩만 먹으니 괜히 미안해진다. 누나, 진짜 맛있었어요. 남은 6인분은 뚱뚱한 동권이가 다 먹을 겁니다. 


렌터카를 반납하는 날이라, 이 차로 마지막 불꽃을 태워야 해서 12시쯤 누나 집을 나섰다. 동권이랑 누님, 덕분에 잘 놀다 갑니다. 


오늘의 숙소는 코리아타운 근처 노르망디 호텔로 잡았다. 오늘 여기서 묶고, 호텔에 짐을 맡기고 2박 3일 그랜드캐년 투어를 다녀온 후, 마지막 날도 이 호텔로 돌아와 눈물로 밤을 지새운 후 한국으로 떠나는 일정이다. 노르망디 호텔은 겉에서 보면 성수동에 어울릴 법한 힙하면서도 고풍스러운 외관이었는데, 그건 건축 컨셉이 아니라, 그냥 오래된 호텔이었다. 아이들은 호텔에 들어서자마자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킁킁거렸는데, 호텔이 오히려 힘을 준 향 같은데? 상쾌한 섬유유연제 냄새가 전부는 아니란다. 점심시간에 갔음에도 짐만 맡아주는 것이 아니라 아예 체크인을 해줬다. 정말 손님이 없는 호텔이군.  


마지막 드라이브를 어디로 갈까 하다가, 여러 사람들로부터 추천을 받은 getty center로 갔다. Getty에 관한 스토리는 영화 ‘all the money’를 봐서 알고 있었다. 세계 최고의 부자인 폴 게티의 손자가 납치되는데, 게티는 손자의 몸값을 거절한다. 결국 그 손자는 귀가 잘리고, 구출된 이후에도 평생을 트라우마와 중독자로 살다가 이른 나이에 사망을 하게 된다. 그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영화를 봤을 때도 많은 생각이 들었다. 과연 무엇이 현명한 선택이었을까. 게티 본인에게는 15명의 손주들이 있으니, 이렇게 거금을 지불했다는 소문이 퍼지면, 나머지 손주들은 더 큰 위험에 처하게 된다는 논리도 이해는 갔으나, 감독 ‘리들리 스콧’의 의도였는지 난 납치된 손자에게 감정 이입해서 영화를 보다 보니, ‘게티 영감, 너무 매정하네’ 싶었다. 그런 사람이 지금은 평생을 모은 미술품을 이렇게 모든 사람들이 감상할 수 있게 한다는 것도 아이러니긴 했다.


Getty center도 예약을 하고 가야 하는 곳이었다. 우린 방문 예약 없이 이마트에 장 보러 가는 기분으로 그냥 갔고, 지영이의 품격 있는 영어와 나의 불쌍한 얼굴 콤보가 다시 한번 힘을 발휘하여, 다음에는 예약하고 오라는 주의만 듣고 들어갈 수 있었다. 구리에서 여긴 제법 멀어서 다음에 언제 다시 올진 모르겠지만, 예약 꼭 명심하겠습니다.


관람실을 옮겨 다니며 몇 시간 작품들을 감상했다. 하지만 난 작품 감상보다 문어처럼 흐느적거리며 걷는 아이들이 행여나 부주의하게 다니다 부딪쳐 조각이나 그림을 파손하진 않을까 걱정이 되어, 대통령 경호원처럼 사주를 경계하며 아이들을 따라다녔다. 저 조각 하나 깨면, 아빠 여기 식당에서 그릇 500년 닦아야 해. 


우리 문어들을 위한 Cookie time. 무더위에 5,000보 이상 걸었을 땐 의자에 철퍼덕 앉기만 해도 세상이 아름답게 보인다. 주위를 둘러봤다. 내일 만날 지우 친구 예진이네도 동부를 여행하다 넘어와서 오늘 LA 시내를 다니고 있을 텐데, 높은 확률로 Getty에 오지 않을까? 저 쪽에서 갑자기 등장하면 너무 반가울 것 같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진짜 만날 뻔. 예진이네도 같은 시간 Getty에 있었다. 다만 여기가 아닌 Getty Villa에. Getty 아저씨가 하나만 만들어 놓으신 게 아니었네.


게티센터에 오니 초등학교 때 이티를 닮아서 별명이 개티인 친구가 생각났다. 개티, 잘 살고 있겠지? 멀리서 개창이 안부 전한다. 그래, 나도 한 때 개창이라 불렸다. ‘개구진 창우’ ‘개성 넘치는 창우’ ‘개념 충만한 창우’의 줄임말로 개창이었겠지. 설마 Dog였겠어.


당 보충 후 Getty를 조금 더 돌아다녔는데, 여기서 조금만 더 지체하면 흐느적 문어 자매가 호적 파버리고 나갈 것 같았다. 그래, Getty는 여기까지. 이 정도 다녀준 것만 해도 감사하지. 상전들.


저녁은 김치 된장 전쟁의 종결을 위해 park’s bbq로 다시 가기로 했다. 가는 길에 비버리힐스를 지나갈 거니 눈호강도 시켜주고, 마지막 드라이빙으론 괜찮은 코스다. 지난번 방문 때를 다시 복기하면, 된장찌개의 지아가 통 크게 양보하여 언니가 요구한 김치찌개를 시켰다. 그때, 한 번 더 가서 된장찌개를 후식으로 시키기로 협상한 후 휴전에 들어갔었다. 오늘 평화로운 딜 종결만 남았다.


그런데 지우가 갑자기 폭주했다. 김치찌개를 또 먹고 싶다고. 약속은 약속이니 이번엔 된장찌개를 시킬 거라고 하자, 된장찌개는 된장찌개대로 먹고, 김치찌게만 하나 더 시켜주면 안 되겠냐고. 그러면 둘 다 좋은 거 아니냐고 했다. 말은 맞지. 하지만 지난번에 양보한 지아가 이번엔 완강했다. 약속은 약속이니 지켜야 한다고. 본인이 된장찌개 먹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렇게 되면 언니는 김치찌개 두 번 먹고 자기는 된장찌개 한 번 먹는 거라 안된다고 했다. 아주 긴장감이 흐르고 팽팽한 설전이 이어졌다.


나랑 지영이는 이 문제는 둘이서 해결하라며 놔뒀는데, 갈수록 논쟁이 격화되었다. 된장찌개 김치찌개를 매 끼마다 100그릇씩 시켜 먹을 수 있는 사람들이 사는 비버리힐스를 지나며 이렇게 싸울 일인가. 인생을 걸고 논쟁을 벌이는 둘의 모습에 나중엔 웃음 참느라 힘들었다. 애들은 진지한데 내가 웃으면 안 되지. 된장과 김치, 이게 뭐라고. 


결국 솔로몬 아빠가 나섰다. “이번에 둘 다 시키자. 대신! 지우가 기존 약속을 어기는 것이니 지아가 충분히 억울할 만하다. 그러니 지아에게 favor를 하나 주자.” 그러면서 지아가 가장 솔깃할 만한 카드를 제시했다. 남은 5일 간 지아가 자는 위치를 정하기로. 


폭주하던 지아도 그 순간 멈칫했다. 지우도 멈칫했다. 반대급부로 너무 큰 걸 주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겠지. 난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게 둘 다에게 엄청나게 큰 카드인 걸 알고 있으니. 으흐흐. 둘 다 엄마 옆에서 자고 싶어 하고, 항상 선호하는 잠자리 위치가 있기 때문에, 지아는 이 제안을 받을 거고, 지우도 눈앞의 김치찌개를 포기하지 않을 걸 아니까. 


결국 Deal Done! 

김치찌개 하나로 잠자리 위치 카드 5개를 주다니, 지우에게 김치찌개는 도대체 어떤 의미일까. 


지난번에 3인분 고기가 6인분만큼 나와서 당황했기에, 이번엔 2인분에 된장 하나 김치 하나를 시켰다. 30분의 총성 없는 전쟁 후, 4명 모두가 만족한 두 번째 Park’s BBQ였다. 


이제, 렌터카를 반납하러 가자. 마음속에선 이미 눈물 줄줄이었다. 여행이 진짜 끝나가구나. 이번 여행 내내 함께 했던 인피니티, 차가 정말 마음에 들었다. 수고 많았다. 인티야. 다음에 개티가 미국 오면 꼭 손님으로 모시거라. 고급 휘발유 먹으며 건강도 잘 챙기고.


차 반납 장소에 들어갈 때, 렌터카 입구 바닥에 무시무시한 악어 이빨들이 우릴 위협하고 있었다. 찾아보니 스파이크란 놈이었다. 역주행이나 무단진입 방지를 위해, 순방향일 땐 타이어에 의해 스파이크가 내려가지만, 역방향이면 죽여버릴 듯이 무시무시한 칼날들이 타이어를 터뜨려버린다. 워낙 험한 동네라 무인 차단기로 안 되겠지. 분명 들어가는 방향으론 괜찮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래도 생긴 게 등골이 오싹하여, 촌스럽게 내려서 발로 꾹꾹 눌어보았다. 미국이여, 사람 겁 좀 주지 맙시다. 


인티와 작별을 하고 uber를 불렀다. 기사님은 소싯적 역도나 레슬링을 했을 것 같은 아르메니아 출신 이민자였는데, 어라! 한국말을 잘하는 게 아닌가. 아들이 군인 스나이퍼인데 아프간 파병도 다녀오고, 한국에서도 휴전선 근처에서 근무를 했다고 한다. 지금은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에 폴란드에 거주하고 있다고. 근데 아무리 아들이 한국에서 근무를 했어도, 본인이 이 정도 한국말을 하는 게 말이 돼? 지금 당장 한국어 어학당 레벨테스트를 쳐도 고급반 나올 듯.


오는 내내 스나이퍼 아들 자랑에 여념이 없었다. 돈도 많이 벌어서, 아들이 차랑 얼바인에 집을 사줬다고 했다. 네네, 우리 딸들도 그럴 겁니다.


기사님이 워낙 말을 많이 해서, 앞자리에 앉은 나도 몇 마디 했는데, 지우가 아빠 영어 해서 놀랐다고 엄마한테 말했다. 에이, 나도 수능 영어 만점 출신인데 요 정도 대화는 하지. 하긴 이번 여행 내내 엄마 뒤에 숨어서 영어는 거의 한 썼으니, 지우가 놀랄 만했다.


호텔방에 들어오니 물이 없었다. 쪼잔하네. 프런트 데스크에 가서 물 4개만 달라고 했더니, 방 당 하나씩밖에 못 준단다. 에이, 물 그거 얼마 한다고. 물을 팔지도 않는다. 그래서 늦은 밤, 우범지대 두 블록을 걸어가 편의점으로 향했다. 가는 동안 노숙자 세 명을 지나쳤다. 빼빼 마른 동양인이라고 덤빌까 봐 몸집 불리는 아기 고양이들처럼 등빨 있는 폼으로 힘을 주고 걸었다. 여차하면 소리 꽥 지르려고 목청도 가다듬고. 다행히 무시무시한 편의점으로부터 물들을 구출 하여 방으로 돌아왔다.


지아는 역시 엄마 옆에서 잠들었고, 난 구석 자리에 누웠다. 내 옆에는 김치찌개 지우가 누워 있고. 이렇게 또 하루가 흘렀다. 마지막 투어 잘 다녀오자.



Getty Center 코스 짜기


작품 사이에서 흐느적거리지 말았으면.


저 땅이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우리 집안의... 네네.


아빠도 같이 찍자고 좀 하자.


이하 동문.


빨리 가자고 얼굴로 말하는 중


된장 vs 김치 전쟁 중


기분 좋은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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