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ano & 'Carpe Diem'

15년 만에 너를 다시 만났네. 나 사실 네가 너무 보고 싶었어.

by 너굴이

피아노 치는 여자, 시카고 미술관의 어느 공간에서.


어느덧 피아노 학원을 다닌지 9개월째다.

더위에 약해서 항상 여름을 너무도 싫어했건만,

작년에는 여름을 싫어할 기력도 없이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즉흥적이고도 신속한 발걸음으로

동네 피아노 학원을 찾아갔다.

막연히 떠올리는 피아노 학원 원장의 이미지와

사뭇 다른, 젊고 예쁜 선생님이

나를 맞이해주셨다.

정확히 뭐라고 말했는지 잘 기억나진 않지만 분명, 스트레스를 해소할 무언가가 필요해서 이 곳을 찾았노라고 말씀드린 기억이 난다.

'대학에 입학하면 다시 피아노를 쳐야겠다'고 막연히 생각만 하던 소원 중 하나를,

매번 시간과 여유가 없다는 핑계로 10년 가까이 미루다가 어느 날 갑자기 실행에 옮기게 된 데에는 불과 1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슬며시 웃음이 났다.

하고 싶으면 언제든 할 수 있었는데, 하지 못하게 막은 사람도 나였고 실행에 옮긴 사람도 나 자신이었구나.

왜 항상 미래만을 보고 살았을까. 현재가 더 중요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왜 못했을까.

예상치 못했던 깨달음을 안고, 다음 시간 첫 레슨을 받을 생각에 약간은 들떠서 신난 채로,

그렇지만 여전히 더워서 짜증을 좀 내면서 집으로 가는 발걸음을 재촉했었다. 아, 그게 벌써 9개월 전이구나.




나는 6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다.

5살 때 처음 동네 피아노 학원에 갔을 때, 손가락이 작아 피아노를 칠 수 없으니 1년 뒤에 오라는 조언 아닌

조언을 들었다고 했다. 5살이나 6살이나 손가락 길이에는 큰 차이가 없었을 것 같긴 하지만,

그 이후 내 손가락 길이와 피아노 레슨의 상관관계는 꽤 컸던 것 같다.

실제로 마지막 레슨을 마친 이후로 내 손가락과 손바닥은 성장을 멈추었기 때문이다.


그 시절 피아노를 좀 친다 하는 아이들이 흔히 가졌던 장래희망인 '피아니스트'는

내게도 자연스러운 장래희망이 되었다. 개인 레슨을 받았기 때문에, 나이에 비해 빨리 진도를 나갈 수 있었지만 결국 나에게서 그다지 큰 예술성과 비전을 발견할 수 없었던 부모님은 나의 아쉬움을 무시한 채,

레슨을 그만두고 공부에 전념하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렇게 내가 가졌던 첫 번째 꿈인 '피아니스트'는 현실의 벽에 부딪혀 내 인생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피아노를 손에서 놓은 지 10여 년이 훨씬 지나고 나서야,

부모님께 피아노를 배우게 해달라고 부탁드리지 않아도 되는 상태에서 피아노를 배울 수 있게 되었다.

손가락이 많이 굳었을 것이라는 내 걱정과 달리,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모토를 몸소 실천하시는 원장 선생님과 스트레스 해소를 핑계 삼아 해야 되는 공부는 덜하고 매일 같이 학원에서 연습을 해댄 덕분에,

내 피아노 실력은 예상보다 빨리 왕년의 수준으로 (혹은 그 이상으로) 회복되었던 것 같다.

학업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피아노를 치며 풀겠다는 내 발상이 꽤 신선하게 다가왔는지,

원장 선생님은 나를 엄청 열성적으로 가르쳐주셨다.


레퍼토리도 점차 다양해졌다.

베토벤 소나타 14번 1악장과 3악장, 리스트의 '사랑의 꿈', 쇼팽 에튀드 10-4, 쇼팽 프렐류드 28-4,

지금 치고 있는 리스트의 '라 캄파넬라', 그리고 쇼팽 발라드 1번까지.

정기 연주회에도 참석하고 콩쿠르도 나가고, 누가 들으면 전공이 정치학인지 피아노인지 다시 물어볼 정도로

즐겁게, 그리고 열심히 피아노를 쳤다.

너를 다시 만나서 정말 반가웠고, 사실 너무 보고 싶었고,

연습하면서 손가락에서 피를 봐도 그 연습이 즐거웠고,

늘 불만족스럽지만 만족스러운 상태가 될 때까지 소리를 만들어내는 그 과정이 좋았다. 진심으로.

'즐기는 자는 이길 수 없다'는 말을 나 자신을 통해 증명해 보이면서

그 당시 삶을 즐기지 못해 너무나도 힘들었던 내 마음을 내가 어루만져줄 수 있었다.

해야 할 일들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받을수록, 나는 더 자주 연습실을 찾았고,

내 손가락은 건반 위를 빠르게 움직여 주었으며,

그 결과 내 피아노 실력은 일취월장하여 논문 쓰는 실력을 능가할지도 모른다는 농담을

원장 선생님과 자주 주고받았었다.


그렇게 지나갈 것 같지 않던 여름이 지나갔고, 바람이 불었고, 내 마음은 점차 안정을 되찾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

학원에서 누군가가 나와 같은 곡을 치는 것을 들었다.

문득, '같은 곡을 쳐도 사람에 따라 다른 느낌이 나지 않을까' 하는 하나마나한 생각이 들었고,

원장 선생님께 여쭤보았다.

레슨 하시다 보면 같은 곡도 많이 가르치실 텐데 사람마다 연주하는 스타일이 다 다르지 않냐고.

당연하지.

스타일은 물론이고 피아노 연주하는 모습을 보면 성격까지 금방 파악된다고 하셨다.

저는 어떤 성격인 것 같냐고 여쭤보았더니

악으로 깡으로 해내는 성격일 것 같다고 대답하시더라.


그냥 웃었다.

그 성격 덕분에 이룰 수 있었던 것도 많았지만,

그 성격 때문에 스스로를 괴롭히게 되어 피아노 학원을 안식처 삼아 찾아왔으면서,

결국 사람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런 성격이 자랑스럽다거나 (한국에서는 유난히 '악바리 근성'을 일종의 장점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큰데

반드시 긍정적으로만 보기는 힘들다), 씁쓸하다거나 혹은 성격을 고쳐야 되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아니다.

다만,

즐거우니까 악으로 깡으로 버텨도 힘들지 않았다는 것,

즐거웠으니까 또 연습하게 되고 그렇게 발전하는 나를 보며

다시 즐거워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었다는 것,

타고난 내 성격으로 잘할 수 있는 일이 있고 하기 힘든 일이 있을 텐데

잘할 수 있는 일인 경우에는 잘한 스스로를 인정해주면 될 것이고

하기 힘든 일이라면 즐기면서 하든가

그것도 힘들다면 그냥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

오늘을 버티면서 내일을 기대하는 삶의 태도도 나쁘지 않지만

가능하다면 오늘도 즐기면서 내일을 기대하는 자세를 가져보라는 것,

제발 좀 즐거움이 뭔지 기억해냈으면 좋겠다는 것,

등을 피아노를 치면서 깨달았다.

개개인의 작품 해석과 감정상태와 성격이 고스란히 건반에 전해지는데

사람마다 연주 스타일이 다른 것은 어찌 보면 너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모순적이게도 나는

내 성격으로 인해 더 힘들어하고 있었을지도 모를 그 해 여름에,

그 힘듦을 조금이라도 중화시켜보려고 찾아간 곳에서

내 성격의 핵심을 더 명확하게 바라보게 된 것이다.

내가 너무도 다시 만나고 싶어 했던 흑색과 백색의 건반은

나로 하여금 내가 하는 일을 '즐기는 태도'가 무엇인지 깨닫게 해주었고

삶을 즐기는 태도가 가져다 줄 시너지 효과와 마음의 안정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었다.



그 해 가을과 겨울,

나는 큰 산을 하나 넘었다.

3일에 10시간씩 자며 주어진 일을 해내기도 했고

새벽 늦게까지 공부를 하다가 뜨는 해를 보는 날도 부지기수였다.

이러한 삶의 양상을 보면 삶을 즐기는 것과 거리가 멀었다고 할 수 있겠지만,

나는 힘든 가운데에도 즐거웠다.

이미 지난 과거라서 고통은 완화되고 기억이 미화된 것일지도 모르겠으나

최선을 다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만으로도 나는 감사했고,

그 여건 하에서는 최선을 다했고,

그래서 미련이 없었다.

악으로 깡으로 해내는 성격은 대부분 어느 정도 마조히스트적 성향을 지니고 있다고 본다.

고통스러운데 그 고통이 낳은 결과를 보면서 찰나의 희열을 느끼고

그 희열을 잊지 못해 또 그 고통의 과정을 반복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즐겁다면야

문제 될 것 없지 않을까.

해야 할 일에 몰두하는 내 모습이 좋았고,

열심히 한다고 해서 반드시 결과가 좋으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열심히 할 수 있는 마음가짐과 여건이 주어졌다는 사실에 감사했고,

'즐기는 태도'의 중요성을 깨닫는 하루하루였다.


사람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변화의 필요성을 느낀다면 이성의 힘을 빌어 부분적으로나마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작년 여름을 기점으로 나는

미래를 위해 오늘을 희생해야 한다고 믿었던 신념을 일부 내려놓고

오늘도 즐길 수 있어야 미래가 있다는 생각을 조금씩 체화하기 시작했다.


어느 여름날,

즉흥적이고도 신속하게 다시 피아노를 쳐야겠다고 결심했기에 가능했던

변화였고

결국, 내가 만들어 낸 변화가 나를 바꾼 셈이다.

Amor Fati & Carpe Die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