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o, again.
꼭 1년 만에 내가 가장 사랑하는 도시로 다시 갑니다.
한참 더울 시기, 우리나라에서 가장 덥다는 지방에서 여름을 보내다가
내 몸 보다 더 큰 가방을 끌고 비행기를 타겠지요.
점점 더워지는 날씨를 느끼며, 소중한 사람들에게 하나씩 작별 인사를 합니다.
4-5년 만에 만난 사람들이 허다하네요.
그 사람들도 어렴풋이 알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남몰래 마음속으로 안부 인사라기보다 작별인사를 건넸습니다.
한 동안은 만나기 어려울 것 같아서요.
나의 벗이자 스승이 되어 주었던 사람들에게 좋은 소식을 전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했고,
인사를 나눌 사람들이 많아서 감사했습니다.
본격적으로 다음 단계를 시작하기 전에, 완벽한 휴식 시간을 가지러 뉴욕으로 갑니다.
사실, 지금껏 살면서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은 채 아무것도 하지 않아본 시간이 거의 없습니다.
휴식을 빙자하여 여행을 떠났을 때도, 말이 '휴식'이었지 늘 서울로 돌아가서 해야 할 다음 일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무언가를 하지 않는 상태를 견디지 못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이제 나는 압니다.
정말로 훌륭한 결과물은 충분히 쉰 다음에 낼 수 있다는 것을요.
작년 여름에서야 비로소 깨달았어요.
나는 미련한 구석이 있어서 내 몸으로 겪은 바가 아니면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머리로는 휴식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깨달았으면서도, 현실 도피에 가까운 그 길을 떠난 후에야 휴식의 중요성을 제대로 이해했습니다. 이제라도 알아서 다행이에요.
이번에는 깨달은 바를 실천에 옮기러 다시 한 번 뉴욕으로 갑니다.
다시 만나는 뉴욕은 나에게 낯익은 얼굴을 보여줄 거예요.
JFK에 내려서 느꼈던 묘한 설렘이 이번에는 묘한 익숙함으로 바뀌어 있을 거고요.
이번엔 도시 한복판에 머무르진 않겠지만, 조금 떨어진 채 맨해튼을 조망할 수 있는 곳에서 지낼 겁니다.
집이 참 예뻐 보였어요. 애써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충만함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은 곳이에요.
열흘 남짓한 기간이지만 그렇게 짧게 느껴지진 않을 것 같습니다.
링컨 센터에서 하는 클래식 공연 1-2편 정도 감상할 생각이에요.
모차르트 협주곡에 푹 빠져있었던 그 순간이 떠올라서요.
뮤지컬은 나랑 별로 안 맞는 것 같아요.
발레에도 그다지 흥미가 없네요.
사실 여름은 뉴욕에서 공연을 관람하기에 좋은 시기는 아니에요.
일종의 비성수기라서 좋은 공연들은 대부분 봄, 가을에 열린다고 하더라고요.
그래도 괜찮아요. 선뜻 공연장을 갈 여유를 가진다는 것만 해도 나에겐 큰 의미라서요.
작년에 살던 동네도 한 번 가보려고요.
이번엔 좋은 카메라를 들고 가서 매 순간을 다 담아오려고 해요.
소중한 기억을 선물해 준 그 집에 다시 들어가지 못한다는 사실이 아쉽긴 하지만,
집 근처 East Riverside에서 자전거라도 타면 아쉬움이 조금 해소되지 않을까요.
매일 출근하던 길도 다시 걸어볼 거고요.
Wholefood에서 체리도 한 가득 사 올 거예요.
출근길에 있던 카페에서 매일 망고 스무디를 사서 회사에 들어가곤 했는데, 다시 먹어볼 수 있겠어요.
친구가 추천해준 블루베리 스무디도 꼭 먹어야겠어요.
작년에 일했던 회사는 올해 다른 곳으로 사무실을 옮겼다고 해요.
신세 진 분들을 직접 뵙고 식사라도 같이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 중이에요.
이번엔 열흘 내내 노트북 한 번 열지 않는 게 목표예요.
늘 손에서 떼 질 못했는데, 이번만큼은 카메라만 갖고 다니려고요. 휴대폰은 길 찾는 데에만 쓸 거예요.
아니, 길을 잃기도 쉽지 않은 곳이니까 그냥 맨 몸으로 다녀볼래요.
버거조인트를 갔다가 센트럴파크 저수지에서 멍 때리고 있을 거에요.
해 질 녘에 브루클린 브릿지를 건넜다가 공원에서 한숨 자고 해가 지면 다시 다리를 건널 계획이예요.
지난번에 가지 못했던 휘트니 뮤지엄은 이번에 꼭 가야겠어요. 하이라인 파크는 덤이고요.
이번엔, 뉴저지에서 맨해튼을 바라보는 호사를 누릴 수 있겠어요.
필요한 물건은 뉴저지에서 사서 밴쿠버로 넘어가면 되겠죠?
어떤 장소가 특별한 의미를 갖는 이유는, 그 장소에서 그 때 만났던 사람 때문 아닐까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만나는 뉴욕은 나에게 그렇게 특별한 기억으로 남지 않을지도 몰라요.
작년에 만났던 사람들은 대부분 뉴욕에 없거든요.
하지만, 작년에 내가 그 사람들을 만나리라고 생각지 못한 것처럼, 이번에도 생각하지 못한 인연을 만날 수 있을 거라 믿어요. 뭐 꼭 그런 인연이 아니더라도, 새로운 시작을 하기 전 나를 위한 선물로는 완벽한 곳이니까 다시 간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요.
이 글은 분명 뉴욕 프리뷰인데, 작년의 기억에 기반해서 쓰다 보니 여행기 같은 느낌이 드네요.
지금 내가 예상치 못한 멋진 일들이 가득 펼쳐지길 바라면서, 초여름을 정리해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