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단어 시리즈 8
부산역에서 도보 10분 거리에 낡은 건물 하나가 있다. '브라운핸즈백제'라고 쓰인 이곳은 부산최초 병원인 백제병원 건물에 자리를 잡은 카페다. 이야기가 느껴지는 장소를 좋아하는 편인데 나에겐 바로 이곳이 그런 장소였다. 낡고 부서진 붉은 벽돌 사이로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차곡차곡 쌓여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면 자연스럽게 겸허해진다.
아이스크림과 커피.
나이 차이가 극명히 돋보이는 선택일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맛있는지 연신 음~ 소리를 내며 먹었고, 나는 부산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안도감에 휴~ 소리를 내며 커피를 마셨다. 하지만 아직 안심하기엔 이르다. 최종 목적지인 해운대역으로 다시 향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이스크림과 커피를 만족스럽게 먹은 모녀는 손을 잡고 발걸음을 옮겼다.
부산 지하철에선 열차가 오면 '끼룩끼룩' 갈매기 소리가 들린다. 부산역에서 해운대역까지는 50분 정도 걸리는 꽤 긴 거리이기에 우린 이동 내내 졸음과 씨름을 했다. 끼룩끼룩 빠른 날갯짓으로 얼른 도착하기를 기다리며 고개를 꾸벅꾸벅 떨궜다.
"이번 역은 해운대입니다. 내리실 곳은 오른쪽입니다."
드디어 알람이 울렸고 금방 역을 빠져나왔다. 해운대 근처는 바다가 가까워 바람이 꽤 찼는데 너무 오랜시간 기차를 타서 그런지 유난히 상쾌하게 느껴졌다. 예전엔 높은 건물이 많지 않았던 것 같은데 이제는 고층 건물이 빽빽하게 들어선 걸 보니 참으로 생경했다. 거리 곳곳엔 사람들이 따뜻한 식사를 하고 있었으며 그 모습을 바라보니 나도 이내 배가 고파졌다. 저녁엔 돈가스를 먹을까? 장어구이를 먹을까? 아니면 유명한 전복죽을 먹을까? 행복한 고민들이 머릿 속을 채웠다.
우와!
혹독한 일정 탓에 아이는 하얀 시트가 덮인 더블침대와 아늑한 조명에 매료된 것 같았다. 하지만 나의 감탄은 완전히 달랐다. 엄마로서 아이를 데리고 안전하게 목적지에 다다랐다는 안도감의 의미가 분명 컸으리라. 이렇게 '우와'의 의미는 달랐지만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대신 같은 행동을 할 뿐. 우린 수영장에 몸을 던지듯 하얀 이불을 향해 있는 힘껏 달렸다. 풍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