찍먹도 괜찮잖아요?

삼겹살과 소스

by 소박

삼겹살을 먹다가 진통이와 병원으로 달려갔다는 엄마의 말처럼 태생이 육식동물로 태어난 나는 고기를 아주 좋아한다. 어릴때도 고기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났고, 기운이 빠지면 삼겹살을 찾는 ‘본투비’ 육식동물인 것이다.


요 며칠 피곤했는지 입이 바싹 마르고 정신이 흐려졌다. 아마도 더운 여름에 땀을 쭉쭉빼며 버티다가 갑자기 스며드는 서늘함에 놀랐는지 몸에서 삐용삐용 레드 플러그를 켜고있었다. 이럴 땐 어김없이 삼겹살이다.


대패삼겹살, 오겹살도 물론 맛있지만 역시 힘나는데는 두껍게 썰어서 누군가가 구워주는(중요) 삼겹살 만한 것이 없다. 삼겹살은 그 자체로도 맛있지만 소스를 찍어먹을 때 더 매력적이다.


기본적으로 쌈장, 고추장, 기름장, 소금 등이 있겠고 요즘은 콩가루, 멜젓, 와사비 등등 다양한 조합이 나오는 식당들이 많아졌다. 이렇게 찍어먹는 소스가 많아진 것은 아마 기름지고 슴슴한 고가의 맛을 보완하고 소스에 따라 변화무쌍하게 바뀌는 맛 때문일 것이다. ‘찍먹충’(찍어 먹는데 충실한 사람)인 나는 아주 반가운 변화다.


거기에 겉들여 먹는 마늘, 고추, 쌈채소들까지 한 가득 차려지는 상을 보자면 삼겹살이 정말 다양한 곳에 어울린다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또한 그냥 구워 먹는 것이 아닌 찐다면 수육, 양념에 조린다면 갈비맛이 나기도 하는 동파육이라는 이국적인 요리가 되기도 한다. 이렇게 다양하고 변화무쌍한 삼겹살의 변신은 서민적이고 대중적인 그리고 호불호 없는 맛에서 생겨났을 것이다.


고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친구를 설득해서 삼겹살 집으로 향했다. 소스가 한 가득 나오는 고기집으로! 자리에 앉아 주문을 하고 삼겹살을 불판 위에 올려놓고 소스를 고른다. 참기름장, 쌈장, 고추장, 와사비… 작은 접시 각각 담겨져 마치 작은 섬처럼 자리 잡은 소스들이 내 앞에 놓인다.


누구는 한 가지만 찍어 먹지만, 나는 늘 여러 개의 소스를. 한 점씩 찍어 맛을 본다. 각각 다른 매력이 있는 소스들을 하나씩 먹으며 생각한다 인생도 찍먹이 아닐까?


오늘은 쌈장을 내일은 톡 쏘는 와사비를 또 어떤 날은 버겁게 들어오는 쌈같은 하루가 지나가고 배가 터질 것 같아 "진절머리 난다. 이제 보기도 싫다" 해도 또 다른 소스로 콕 찍어 먹으면 다른 맛이 나는 하루하루들.


나의 인생도 그렇다. 디자이너에서 마케터로, 책상 앞에서 일본어 단어를 외우고, 노트에 글을 쓰고, 자격증 책을 펼치는 나날. 누군가는 너무 여러 가지를 한다고 하지만, 나는 그냥 찍어보고 싶다. 한 번의 선택이 전부가 아니니까. 맛을 알아가듯, 나를 알아가는 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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